어린 시절, 나는 네 번이나 죽을 뻔했다. 그중 두 번은 자살 기도라는 오해를 받았고, 한 번은 ‘행운의 소년들’이라는 제목으로 지역신문에 실렸다. 내가 죽으려고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았을 때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깨어나 보니 이미 소문이 퍼졌고, 뒤늦게 그게 아니었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고. 그땐 어렸다고. 단지 겁이 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아내가 떠나간 집에서 낮잠을 자던 토요일 오후에, 나는 내가 그 오해를 방패 삼아 사춘기 시절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9~10
할머니가 먹기 좋게 파김치를 말아서 두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미워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동화책에 보면 많이 나오잖아요. 구박받는 남의 자식들요.” 내가 말했다. 할머니가 내게 술을 한 잔 따르라고 했다. 한 잔을 들이켜더니 그거 참 우스운 말이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비행기를 타고 달도 가는 세상에 말이다.” 그 말을 하고는 할머니는 뜬금없이 달아 달아 밝은 달아 하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게 웃겨서 나는 웃었다. 내가 웃자 할머니도 따라 웃었다. 웃다 말고 할머니가 갑자기 운동화는 하얗게, 하고 말했다. “네?” 내가 되물었다. “남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운동화는 하얗게 빨고 구두는 반짝반짝 닦아라. 알았지?” 할머니가 말했다. “네 알겠어요. 운동화는 하얗게, 구두는 반짝반짝.”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소식을 전해 듣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구둣방에 가서 구두를 닦은 일이었다.
--- p.26~27
아내는 막달에 임신중독증을 앓아서 딸을 낳고 오래 고생을 했다.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천안에 사는 장모님에게 아이를 맡겨야 했다. 그때 천안까지 가는 기차에서 나는 아내에게 어렸을 때 네 번이나 죽을 뻔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내는 왜 그 이야기를 연애할 때 해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재수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그러면 결혼을 해주지 않을까봐 그랬다고 대답했다. “재수가 없긴. 교실에서 떨어졌을 때 마침 아래층에 화단을 꾸미려고 흙이 담긴 자루들을 쌓아두었다며. 거기로 떨어졌으니 행운의 남자네. 특히, 코앞에서 간판이 떨어진 일은 라디오에 보내도 될 만한 일 아냐?”
--- p.32~33
“오늘이 마지막이군요. 그런 거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이 아무 도움은 안 되겠지만,” 경비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더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잘려봤어요. 그때마다 회사 정문에 서서 욕을 했어요. 부장님도 이따 그렇게 하세요. 제가 봐드릴게요.” 나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 p.43
차는 아내가 가지고 갔다. 복숭아 농장을 하는 처형네로 갔는데, 원래는 몇 년 후 우리도 귀촌을 할 계획이었다. 처형네 동네에 괜찮은 시골집이 매물로 나왔다고 해서 사두기도 했다. 딸이 스무 살이 되면 회사를 그만둘 계획이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 딸 앞으로 오피스텔을 한 채 사주고 나머지 돈으로 시골에 정착할 예정이었다. 처형네로 내려간 뒤 아내는 내게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 p.49~50
자서전을 쓰는 동안 즐거운 순간도 있었다. 내 마음대로 거짓말을 지어낼 때. 회장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좋아했다. 자서전을 끝내고 나는 한동안 나만의 자서전을 상상해보곤 했다. 30년 후, 나는 나를 뭐라고 부를까? 어떤 첫 문장으로 시작할까? 그런 상상을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지금 이곳이 현실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내는 자서전의 첫 문장을 뭐라 적을까? 그리고, 딸은, 만약 살아 있다면 딸은 뭐라고 했을까? 어떤 첫 문장을 생각해냈을까?
--- p.57~58
한 달 전, 누나가 조카의 결혼 소식을 알리려 전화를 했을 때 말해주었다. 로마인가 파리인가 암튼 어느 박물관에 가려고 줄을 섰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그때 뒤에 선 여자가 준형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고. 그러고는 헤어졌는데 글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다시 만났다고 했다. 그것도 옆자리에. “운명이네.” 내가 누나에게 말했다. “너도 그랬어. 니 부인 데리고 왔을 때. 운명이라고.” 누나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누나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올 때 같이 와. 혼자 오지 말고.” 누나의 말에 나도 거짓말을 했다. 꼭 같이 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 p.66~67
나는 양복 주머니에서 핑크색 수첩과 열기구 모양의 볼펜을 꺼냈다. 수첩 맨 앞장에 딸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한 장을 넘겼다. 딸은, 이라고 썼다가 두 줄을 그었다. 어릴 적 정연은, 이라고 썼다가 또 지웠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나는……. 그다음 문장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암기 식빵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감나무 잎에 그림을 그려보았다.’ ‘나는 우울할 때면 엄마에게 발바닥을 간지럽혀달라고 말하곤 했다.’ 아무 문장이나 생각나는 대로 중얼거려보았다. 딸이 살아 있다면 어떤 첫 문장을 생각했을까? 멋 부리는 문장으로 시작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쓴 주례사를 보면서 딸은 잘난 척하는 말 좀 적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나는 열일곱 살.’ 딸이라면 그렇게 담백하게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열일곱 살.’ 그렇게 적은 다음 나는 수첩을 덮었다.
--- p.81~82
그날 술을 마시면서 형은 감옥에서 만났던 어떤 아저씨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는 게 많아서 이 박사라고 부르던 아저씨였는데 사기꾼에 속아 전 재산을 날린 뒤 죽으려고 수면제를 먹었대. 눈을 떠보니 병원 응급실. 그것도 사흘이나 지난 다음이었어. 아저씨는 수액 주사를 놔주던 간호사를 보자마자 죽으려 했던 일을 바로 후회했대. 간호사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거든.” 형은 이 박사 아저씨가 그 후 간호사의 마음을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처가의 반대를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연년생인 두 아들을 두었고, 결혼 7년 만에 방 두 개짜리 연립을 샀고,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일본 온천 여행도 다녀왔다고. “그러다 말이야, 우연히 그 사기꾼을 본 거야. 버스 안에서. 그 아저씨가 그러더라고. 그냥 멱살을 잡고 소리만 지르려 했다고. 죽을 줄은 몰랐다고. 참 재수도 없지?” 망만 봤다니까요, 하고 소리치던 형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 그 아저씨는 정말 재수가 없던 걸까?” 나는 형에게 재수가 없던 거라고 말해주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이 달을 보더니 내게 물었다. “초생달이 맞는 말이니 초승달이 맞는 말이니?” 나는 초승달이 맞는 말이라고 알려주었다. “초라해.” 형이 중얼거렸다. “초라해서 못 살겠다.” 나는 형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형은 사라지고 없었다. 식탁 위에 아내에게 남긴 쪽지가 놓여 있었다. ‘제수씨, 귀찮았죠? 잘 자고 갑니다.
--- p.105~107
“버스가 왔네요.” 나는 들고 있던 요구르트를 의자에 내려놓고 승차장으로 걸어갔다. 버스는 통영에 도착하기 전에 거제에 들렀다. “거제 내리세요.” 기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은 통영 간다면서요?” 버스에서 내리려는 나를 기사가 붙잡았다. “어디나 상관없어요.”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 p.114
어느 터미널에서 꼬마 아이가 내게 사탕을 하나 주었다. 손잡이가 달린 막대사탕이었다. 나는 고맙다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옆에 있던 아이 엄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나도 놀라고 아이도 놀랐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아이 엄마에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노숙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루에 세 번씩 이를 닦았고, 사흘에 한 번씩 머리를 감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구두를 닦았다. 집이 없어서 터미널에 있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었다. 나라는 작고, 버스는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시간이 많았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정말로 그게 이유의 전부였다.
--- p.120
굿 잡. 개실망! 딸은 그 말을 자주 썼다. 내가 문자를 보내면 개실망이라는 답을 보냈다. 캭, 하고 답을 보낼 때도 있었다. 캭은 오케이를 뜻하고 개실망은 노를 뜻했다. ‘지금 퇴근길인데 만두 사 갈까?’ ‘캭!!’ ‘주말에 등산 갈까?’ ‘개실망!’ 그런 식이었다. 캭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느낌표를 두 개씩 붙였다. 아내한테 그렇게 보냈다가 혼난 뒤 딸은 나한테만 그 말을 썼다. 나는 혼내지 않았다. 그런 메시지를 받고 나면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 인생은 개실망. 사춘기를 앓던 시절의 딸에게 자서전을 써보라고 하면 아마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 p.124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딸은 아내와 터키로 여행을 갔었다. 딸은 시차를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 때나 내게 사진을 보냈다. 잠을 자다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을 받으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구분이 잘 안 되었다. (……) 그때 내가 왜 같이 여행을 못 갔는지. 후회가 되었다. 로터리를 돌다 보니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거리였다. 그 말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다섯 개란 뜻이었다. 나는 열일곱 살. 나는 열일곱 살. 나는 열일곱 살. 로터리를 뱅글뱅글 돌면서 나는 계속 그 말만 중얼거렸다.
--- p.133~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