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3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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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8쪽 | 274g | 140*200*14mm |
ISBN13 | 9788954670920 |
ISBN10 | 895467092X |
발행일 | 2020년 03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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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8쪽 | 274g | 140*200*14mm |
ISBN13 | 9788954670920 |
ISBN10 | 895467092X |
MD 한마디
삶의 일 퍼센트의 찬란이 아닌 구십구 퍼센트의 평범을 사랑하기로 한 박연준 시인이 평범하지만 특별한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겨울 밤 말린 곶감과 봄이 오는 사월의 창, 한 여름의 더위 속에서 발견한 하루는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 큰 힘과 위로가 된다. - 에세이 MD 김태희
서문│ 모월모일, 모과 겨울 고양이 밤이 하도 깊어 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 그의 머플러는 여전히 이상하지만 김밥 예찬 얼지 않은 동태 있나요? 옷, 내가 머무는 작은 공간 밤과 고양이 개의 마음 스무 살 때 만난 택시 기사 어른 여자를 보면?김언희 시인께 시 창작 수업에서 우리가 나누는 말들 하루치 봄 사월 맹추라는 말 하루치 봄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전 진딧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작은 그릇 G의 얼굴이 좋았다 카페에서 [로망스] 듣기 봄바람도 구설수에 오를 때가 있다 조용필과 위대한 청춘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지 않기 호두 세 알, 초코쿠키 한 개 여름비 목숨 걸고 구경하지 않을 자유 비 오는 날 발레하기 여름엔 감자, 여름엔 옥수수 선생님도 모른단다 그때 내가 낭독한 여름 아는 것 말고 알아주는 것 당신의 귀를 믿어요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여름비 하하하, 오해입니다 웃고 웃고 또 웃네 살 수 없는 것들의 목록 식탁 위에 놓이는 것 시간이 내게 주는 것 오래된 가을 날마다 카페에 간다 책 읽는 자가 누리는 산책 몽당이라는 말 찬란하고 소소한 취미인생 피로가 뭐냐고 묻지 마세요 모든 인간은 자라서 노인이 된다 엄살쟁이를 위한 변명 보통과 특별 사이 오래된 것이 도착했다 내 앞에는 당신의 등이 있다 눈 감고 지나는 가을밤 파주의 기러기들 |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다. 잃을 것과 얻을 것 사이에서 시소를 타며, 이 시소에서 내려오기를 겁내기 때문이다.’(109쪽) 책을 읽어가다 만난 한 구절에 눈길이 멎는다.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아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때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 일을 나는 왜 이렇게 끈질기게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곤 한다. 흔히 은퇴를 하고서 그동안 자신이 못했던 것들을 한다는 생각아래 한 3년 마음대로 하다보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고들 말한다. 처음에 생각했던 일상의 여유로움도 사라지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회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다시 찾아 나서기도 한다는 말을 선배들에게 들었을 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뜬금없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일을 그만둔 지 3년이 다되어간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비록 잃을 것과 얻을 것 사이에서 시소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본다는 것은 결코 마음 편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몸과 마음에 수십 년 동안 각인되어 있던 ‘일’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러한 잡념이 생각나지 않도록 무엇이 되었든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할 일이 없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박연준 시인의 글은 일전에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로 만난 적이 있다. 시인의 시집을 읽어본 적은 없고, 시인이 남편과 함께 쓴 수필집을 통해서 알게 되었기에 시인에 대한 호불호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책은 [모월모일]이라는 산문집의 제목에 마음이 끌려 읽게 되었다. 모월모일이란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특별함이 없는 일상의 나날들을 의미하기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흔히 살아가면서 많은 날들에 의미두기를 한다. 자신만의 특별했던 날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또는 잊지 않기 위하여 마음속에 새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미를 부여한 날들보다도 더 많은 평범한 날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런 평범한 날들을 기리며 쓴 산문이라고 한다. 빛나고 싶은 적 많았으나 빛나지 못한 순간들, 그 시간에 깃든 범상한 일들과 마음의 무늬를 관찰했다고 한다.
시인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을 소재로 삼아 그 계절의 풍경과 소리, 맛, 감정 들이 소환하는 기억과 지금의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적고 있다. 그녀의 글을 읽어가면서 나 또한 아련하거나 혹은 서글펐던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해본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어떤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저 평범한 날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평범함’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청명한 봄날의 아침 하늘을 바라보면서, 혹은 한낮의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이러한 것들 모두가 봄날의 평범함이라 생각하기도 하다가 봄날만이 가지는 특별함이란 느낌을 갖기도 한다. 그래보았자 어차피 기억 속에서는 수많은 모월모일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시인은 이 글들을 쓰는 내내 모과를 생각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모과하면 생각나는 특별한 기억이 있기에 반가웠다. 예전에 마지막 근무지였던 공장의 정원에 공장의 나이와 같은 수십 년 된 모과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어느 것도 같지 않은 저마다의 울퉁불퉁한 모습을 가지고서 가을이 되면 오직 노랗다는 것 하나만을 공통으로 가졌던 모과를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라,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마당 한쪽에도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심은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공장에 모과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 나는 풋풋한 신입사원이었다. 공장을 준공하고 정원을 조성하면서 심었다는 그 나무가 모과나무인줄은 몰랐었다. 세월이 흐르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공장근무를 위해 부임해 간 시기가 가을이었다. 정원의 오래된 나무에 달려있던 노란 모과를 처음 본 순간 알 수 없는 감흥을 느꼈었다. 한동안 아침에 출근하면서 모과나무 아래에서 모과를 바라보는 것이 일과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이번에는 집 마당의 모과나무에 달린 모과를 보면서 그 감흥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한 알, 한 알 각기 다른 모과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모든 모과가 노랗듯 똑같은 날들이지만, 서로 같은 것이 없듯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일상을 생각했던 것 같다. 시인이 쓴 모월모일의 모과를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이 왜 [모월모일]이었는지, 내 기억 속의 모과가 무엇을 뜻했는지를 비로소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인의 글들은 이처럼 평범함 속의 특별함, 특별함 속의 평범함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오늘 또한 수많은 모월모일 중의 하루이지만 삶은 결코 녹록치 않다. 이제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 모과나무 앞에서 노란 모과를 상상하며 오늘 하루도 견뎌내야겠다.
모월모일: 어느 달, 어느 날. 제목이 참 예쁘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서문을 읽자마자 이건 대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은 작고 가볍고 공평하다. 해와 달이 하나씩 있고, 내가 나로 오롯이 서 있는 하루. 대작이다. 이건 내 인생책이 될 것이다. 이걸 바로 감이라고 하는 걸까. 대작의 향이 솔솔 났다. 서문에서부터 감동을 받으면 열에 아홉은 정말 내 취향이었는데, 오, <모월모일>. 기대됐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빛나고 싶은 적 많았으나 빛나지 못한 순간들, 그 안에 깃든 범상한 일들과 마음의 무늬를 관찰했다. 내가 지금 빛나고 싶은데 빛나지 못하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 더 공감되었던 부분. 평범함 속 깃든 범상한 일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며.
삶이 일 퍼센트의 찬란과 구십구 퍼센트의 평범으로 이루어진 거라면, 나는 구십구 퍼센트의 평범을 사랑하기로 했다. 작은 신비가 숨어 있는 아무 날이 내 것이란 것을, 모과가 알려주었다. 내 평생의 모월모일은 모과라는 것을. 아, 박연준 시인의 사인 앞에 그려져 있던 그 작은 과일, 그게 모과였구나. 기억을 좀 더듬고 나서야 모과를 기억할 수 있었다. 언젠가 식탁 한구석에 놓여 향기를 내뿜은, 그 모과를. 평범함은 특별하다. 우리가 그 속에서 숨은 모과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평범이 특별함이다. 이 책을 통해서 각자만의 모과를 찾을 수 있게 되길.
시간을 보냈죠. 일도 없이. 밤이 흐르는 것을 보았어요. 어떤 시간은 그저 ‘흘러보내는 것’이 최선임을, 나무 아래에서 알았죠.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되는, 깨달음을 주는 나무, 그리고 자연. 이번 봄에는 그러질 못해 매주 꽃을 샀었다. 아, 삶에도 자연 총량의 법칙, 뭐 이런 비슷한 게 존재하는구나. 청춘은 별안간 끝난다. 그게 누구의 봄이든 봄날은 간다. 그리고 이따금 노래에 실려, 돌아온다. 내 청춘이 담긴 장소는, 책은, 노래는 무엇일까? 그게 <모월모일>이었으면. 박연준 시인의 글이었으면.
숲을 베어 작은 종이 묶음으로 만든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서 다시 숲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생각났다. 내가 <모월모일>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숲이 되었다. ‘숲’은 포근하다. ‘숲’은 숨을 돌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숲’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에 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마음의 산책, 방구석 세계여행.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내 기준 타임머신. 나에게 ‘숲’이 되어주는 책들 목록에 <모월모일>을 넣어야지. 당신에게 ‘숲’이 되어준 책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박연준 시인을 스토킹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던 <소란>과 달리 <모월모일>은 정말 좋았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읽다 멈추고 가만히 생각해봤다. 둘의 큰 차이는 형식과 자유로움, 이 둘이라고 생각되는데 난 아무래도 도전보다는 안주를 선택하는 편이라-최애 프로그램은 <무한도전>- 좀 더 내 눈에 익숙한, 많이 읽어온 형식의 <모월모일>에 끌리지 않았을까 싶다. <소란>은 정말 일기장처럼 자유로워서. 가리는 것도, 숨기는 것도 없이. 박연준 시인의 민낯을 보는 것처럼. 그것도 초면에!
<모월모일>을 읽고 <소란>을 읽었더라면, 박연준 시인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자유로운,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그대로를 읽을 수 있었을까. 그릇이 넓어진 걸 느낀다. 아, 이 책 한 권이 나를 이렇게도 바꿀 수 있구나. 이게 글의 힘이구나. 포용하고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는데, 그 영역이 넓어졌음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내 그릇은 탄성력이 있어서)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박연준 시인의 글만큼은 포용할 수 있었으면. 그의 일기도 소장할 수 있을 만큼!
박연준 시인의 <모월모일>에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느낄 수 있었다. 반기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이번 봄이 너무나도 아쉬워 봄 글만 계속 반복해서 읽었다. 왜 시인이 자신의 모월모일을 모과에 비유했을까 생각해봤다. 이중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탁자 위의 모과가 건조한 집에 향기를 불어넣듯, 그의 <모월모일>은 내 삶에 싱싱함을 더해줬다. 그래서 나의 모월모일은 향기롭다. <모월모일>과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