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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順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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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의 상상
시장 어귀에 함지박을 내려놓고 사내가 미꾸라지를 판다 싱싱한 놈들 가져가요 맛 좋고 몸에 좋은 놈들이요 미꾸라지는 철체 위에서 이리저리 꼬물거리다가 얼른 빠져나간다 함지박 속으로 미끄러진다 미꾸라지는 구름처럼 흐르고 싶었을까 함지박에서 요동치는 몸놀림이 곧 구름 사이로 들어갈 것 같다 부풀어 오르는 상상으로 삶의 경계를 넘어 무한의 허공으로 스며들 기세다 상처투성이 될지라도 기어코 오르고 말겠다고 함지박을 기어오르는 저 몸부림! 외로운 투지는 바닥을 드러낼지언정 이 상황을 변환시키겠다고 발버둥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홀홀히 가지는 않을 것이다 붉은 꽃보다 더 붉은 피를 흘리며 시간은 자신의 족적을 남길 것이다 미꾸라지를 파는 사내는 미꾸라지처럼 파닥거리는 자신을 본다 차디찬 섣달그믐 날 빈손으로 귀가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진동하는 빛이 되어 유한한 시간에 꺾이면서 밝아지는 연습을 한다 삶을 향한 욕구가 강할수록 피비린내 진해지는 함지박 세상, 자아, 미꾸라지 사가세요, 참 맛있어요.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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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보이는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 일상은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보여주며 온갖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시공간이다. 그러므로 시에서의 일상은 오히려 비일상에 가깝다. 한가로운 산책자의 시선으로 봐도 일상은 감동과 깨달음으로 만연되어 있다. 그와 함께 세심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일상은 항상 들끓고 있다. 이번 권순자 시인의 시집에 생생한 삶의 기록으로 담아놓은 일상 역시 평범한 일상은 아니다. 거기에는 자유에 대한 욕망이라는 본능적 담론이 표출될 수밖에 없는 걸쭉한 삶의 면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시집에는 특히 바다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시 제목만 보더라도 ‘갈치’, ‘고래’, ‘조개구이집’, ‘뱀장어’, ‘부두 어시장’, ‘홍어’ 등등 싱싱한 비린내 끼치는 바다의 풍경이 보이는 듯하다. 시인의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을 법한 이 소재들은 시집에 녹아들어 시인의 격정적인 서정과 지향점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자유’라는 두 글자를 강하게 떠오르게 하는 시편들이 다수 눈에 띈다. 어쩌면 이 ‘자유’에 대한 욕망이 권순자 시인의 시생(詩生)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기(元氣)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 시인에게 심겨진, 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전인자처럼 새겨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렇게 이번 권순자 시인의 시집에는 시인의 본질적인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듯이 보인다. [시인의 말] 모든 아름다운 것들, 생명이 짧아 더 강렬하게 빛나는 어린 것들, 언어 이전의 침묵으로 더 깊은 것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