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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을 비질하면 꽃이 핀다
최석균
한국문연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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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기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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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바람의 언덕엔 소금꽃

만남 12
입동 13
구절초가 피었었지 14
사랑 15
너의 계절 16
바람의 언덕엔 소금꽃 18
금산 미인 19
홍매 20
분식집 사월의 바보 21
서산 22
소나무 24
밀양 도호요 도공의 말씀 25
장군바위 26
연심 28
감이 떨어지다 29
무리수 두는 길 30
잠수 32

제2부 그늘을 비질하면 꽃이 핀다

범람 34
나무 옷장 35
재미없는 직진 36
벌 38
고요한 착점 40
그늘을 비질하면 꽃이 핀다 42
단감나무 그루터기 44
날개 46
빛나는 걸음 47
동백꽃 피는 길 48
골목 50
강산의 돌 52
물의 눈물 54
극과 극 56
피날레 57
신발의 유전 58
죽순 59

제3부 낮달과 별이 뜨는 집

리어카 62
자백 63
산이 64
죽지 않는 나무 66
겨울 굴뚝새 68
눈치챈 아버지 69
밥이 오는 길 70
미로 72
토종벌 74
낮달과 별이 뜨는 집 76
자연스러운 일 78
멈춘 리어카 79
영암 폐사지의 사계 80
모산재 82
모산재 주점의 내력 83
평촌의 봄 84

제4부 동그라미 그리는 땅

둥근 풍경 86
동그라미 그리는 땅 88
입구 89
선크림 90
매미 92
휴일의 꽃길 94
어시장에 갔다 나오는 이유 95
소리 올가미 96
강력한 사춘기 97
탈출기 100
도깨비 102
허공중에 피는 꽃 103
물음표의 무게에 끙끙대네 104
해담정사(海潭精舍) 105
별천 106
세심(洗心) 107

최석균의 시세계 | 박다솜 109

저자 소개 1

경남 합천에서 출생했다. 2004년 『시사사』로 등단했다. 시집 『배롱나무 근처』 『手談』 『유리창 한 장의 햇살』이 있다. 현재 경남문인협회, 창원문인협회, 곰솔문학회, 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제16회 김달진창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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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36*216*20mm
ISBN13
9788961043632

책 속으로

시간이 확장되고 공간이 연속되는 그곳은
해 뜨고 달 지는 일과는 무관합니다

멀어진 길만큼 시간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대를 오래 그리워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없습니다

늘어나는 시간만큼 좁아진 길을 마주하면서
들찔레 개망초 번지는 바람 속으로
나는 날마다 그대와 나란히 걷는 일을 생각합니다

빛과 어둠을 넘어 나이와 황금과 무관
세상에서 가장 길고 향기로운 그곳은
내가 멀리 가고 싶어 높이 둔 곳입니다
---「사랑」중에서

뒤란 감잎을 쓸자
흙투성이가 된 그늘이 딸려 나온다

달아날 수 없는 거리를 두고
떨림이 있던 자리 반경엔
감미롭고 환한 증거들이 뒹굴기 마련

밟힐수록 단단히 박히는 씨앗부터
물러터진 흔적의 꼭지까지
한 그루 감나무의 기록이 수북하다

감잎 그늘을 비질하는 걸음 위로 무지개가 뜬다
촉촉한 계단을 디디고 가면
풋감 담가둔 항아리가 열리고 감꽃이 필 거라는 예감

별을 품다가 천둥을 새긴 파란 그늘에서
마른 울음을 흘리다가 홀연 정신을 놓은 주홍 그늘까지
빗자루가 쓸지 못한 그늘을 바람이 쓸어 담아
가지가지 끝에 매단다

뒤란엔 숨죽인 그늘의 역사가 살고
그늘을 비질하면 수북수북 감꽃이 핀다
---「그늘을 비질하면 꽃이 핀다」중에서

빛이 그리운 대낮에 불쑥 찾아간다. 촌집은 비어 있고 고작 여물통을 채워놓거나 비질 외엔 할 게 없는 나는,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달과 별이 뜨기를 기다린다.

낮달은 들녘에서 별은 다방에서 따로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어쩐 일로 한번은 반짝반짝 네발 오토바이에 앉아 나란히 귀가한다. 그 장면을 본 후로,

하늘에는 수시로 달과 별이 뜬다. 별의 허리를 꽉 붙든 낮달과 헬멧을 눌러쓴 별이 빛난다. 네발 오토바이 탈탈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고사리를 꺾어와 삶고 말리는 냄새가 난다.

빈집에 앉아 낮달과 별의 고무줄 같았을 거리를 잰다. 집 나가는 낮달 꿈과 돌아오지 않는 별 꿈에서 아직 깨지 못한 아이를 위해 긴 착각의 시간을 끊어낸다.

고스톱이나 내기바둑마저 시시해진 낮달과 별이 나란히 네발 오토바이에 앉아 귀가하는 해거름, 그 장면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집에서 멀어지고 있는 반짝반짝 작은 별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낮달과 별이 뜨는 집」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 권의 시집에는 시인이 보낸 한 시절이 담겨 있다. 한 명의 시인이 출간한 여러 권의 시집이 있다고 할 때, 그것들은 외형상 완결된 각각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사람이 보낸 일련의 시간이라는 점에서 매끄럽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어떤 시집의 도입부는 같은 시인이 출판한 이전 시집의 종결부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데, 최석균의 이번 시집과 지난 시집이 그렇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유리창 한 장의 햇살』(천년의시작, 2019)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낙화」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낙화」는 세 번째 시집을 닫는 시편이면서, 네 번째 시집 『그늘을 비질하면 꽃이 핀다』의 예고편처럼 기능하는 작품이다.

「낙화」의 화자는 삶은 축제가 아니며 너와 나는 곧 흩어질 것이고 환희의 불꽃은 이내 꺼질 것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또한 이 시는 꽃의 ‘떨어짐’에 주목해 처연해하기보다는, 떨어진 꽃잎들이 만들어 내는 꽃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편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그늘을 비질하면 꽃이 핀다』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생김새별 색깔별로 갈피에 끼워”(「시인의 말」)두는 것은 바로 「낙화」의 꽃잎이 아니겠는가. 낱낱의 꽃잎을 주워 생김새별 색깔별로 갈피에 끼워두는 일이 “인연 닿은 입과 눈, 내게로 와서 머물다 간 소리와 빛”이 “어떻게 굴절되고 착색됐을지” 기억하는 일인 것은 이 때문이다. 갈피에 끼워둔 꽃잎들마저 바스러지고 나의 기억도 희미해지면 이 모든 것은 “언젠가는 소멸이 되겠지만” 우리가 함께 나눴던 “그 아슬한 순간을 귀히 여기고 높이 받”드는 일이 『그늘을 비질하면 꽃이 핀다』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 시인의 말 ]

생김새별 색깔별로 갈피에 끼워 둔다.

인연 닿은 입과 눈,
내게로 와서 머물다 간 소리와 빛,
어떻게 굴절되고 착색됐을지.

언젠가는 소멸이 되겠지만,
그 아슬한 순간을 귀히 여기고 높이 받들며.

2024년
최석균

추천평

어떤 관계가 종료된 후 함께 했던 추억을 회상하면서 사랑의 “떨림이 있던 자리”를 나뒹구는 “감미롭고 환한 증거들”을 발견하는 사람, 그 사람이 최석균의 시적 화자다. 지나간 시간에 서로를 향한 원망이 왜 없겠냐마는 그는 “감잎 그늘”에서 “감미롭고 환한 증거들”만을 음미한다. 그래서 그는 안다. 감나무가 보낸 어느 한 시절의 흔적이 가득한 그늘, 그 “그늘을 비질하면 수북수북 감꽃이 핀다”는 사실을. 아무렴 어떨까. 감꽃은 분명 다시 필 테다. - 박다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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