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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납치
제2장 - 감금, 그리고 작아지기 계속 제3장 - 움켜쥐기, 그리고 반죽하기 계속 제4장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서문 제5장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제6장 - 매혹, 그리고 젊음을 향해 끌려가기 계속 제7장 - 사랑 제8장 - 스큐요리 제9장 - 정탐, 그리고 현대성 속으로 빠져 들기 계속 제10장 - 날뛰는 다리들, 그리고 또다시 움켜쥐기 제11장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베르」 서문 제12장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베르」 제13장 - 머슴, 혹은 다시 붙잡히기 제14장 - 날뛰는 낯짝들, 그리고 또다시 움켜쥐기 작품해설 / 수전 손택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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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을 써요." 그녀가 말했다. "욕실은 옆에 있어요. 저녁은 7시에 먹을 겁니다. 짐은 가져다 놓았어요."
그라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신생아 보호와 수도 내의 어린이 구걸 행위 방지를 위한 위원회에 가 버렸다. 나는 혼자 남았다. 의자 위에 앉았다. 침묵. 머릿속이 윙윙 거렸다. 나는 지금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집에 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이제 다시 고독에 빠진 것이다. 물론 아주 가까운 곳에, 거실에 여고생이 몸을 돌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짜 고독은 아니다. 여고생과 함꼐 하는 고독이다. ---p. 180 |
『페르디두르케』는 총 열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화자이자 주인공이 유죠 코발스키는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인생을 절반쯤 살고 난” 인물이다. 서른 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실 적응력이 모자라고 언제나 우왕좌왕한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면서 어린아이로 변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고(물론 겉의 ‘형식’만이다. 내용은 여전히 서른 살이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황당무계한 모험에 빠져 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1장)
이어지는 두 장(2~3장)은 ‘순진함’을 주입시켜 모두를 어린애로 만드는 것을 교육 철학으로 삼고 있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저급한 ‘건달’ 미엔투스와 ‘청년’의 가치를 수호하는 시폰의 ‘인상 쓰기’ 대결로 마무리된다. 그 다음 두 장(4~5장)에서는 돌연 지금까지 이어지던 사건을 떠나, 말도 안 되는―정말, 말도 안 되는―얘기가 등장한다. 총합론자 필리도르 박사와 분석론자 안티-필리도르 박사의 ‘진검 승부’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어 네 장(6~10장)에 걸쳐 주인공이 머무는 또 다른 공간인 므워드지아코프 씨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그려지는데, ‘현대적 여고생’ 주트카와 주인공의 대립, ‘구닥다리 훈장’ 핌코와 주인공의 대립, 그리고 주트카의 현대성과 핌코가 구현하는 낭만적 과거성의 대립, 이 세 가지가 뒤엉켜 전개된다. 이어(11~12장) 앞의 필리도르 이야기와 대칭을 이루어 다시 필리베르의 이야기가 황당한 내용만큼이나 황당무계한 방식으로 삽입된다. 마지막 두 장(13~14장)은 ‘현대적 여고생’의 집을 떠나 미엔투스와 함께 ‘진정한 머슴’을 향해 떠난 주인공이 유년시절을 보낸 시골 이모의 집에 우연히 머물게 되는 이야기다. 미엔투스의 등장으로 인해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시골 귀족과 하인들의 관계, “주인의 손은 하인의 낯짝과 같은 높이에” 있는 것으로 규정되는 관계가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방식으로 무너지고, 주인공은 역시 얼떨결에 사촌 누이 조시아를 데리고 다시 바르샤바로 떠난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나를 따라 달리라. 낯짝을 두 손으로 감싸고 도망가는 내 뒤를 따라 달리라. 이제 끝이다. 트랄랄라. 이 책을 읽을 사람한테 한마디 하자. 제기랄!” |
곰브로비치는 슐츠, 비트케비치와 함께 조국 폴란드에서 ‘모더니즘 문학 3총사’로 처음 등장한 뒤 지금은 명실 공히 세계적인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타임스》는 “곰브로비치는 폴란드인으로서의 고뇌보다 인간이 되는 것 자체의 희비극을 중요시한 최초의 폴란드 작가이다.”라는 표현으로 세계 문학사 속에서의 위치를 표현하고 있으며, 수전 손택과 존 업다이크, 질 들뢰즈 같은 세계적인 작가와 학자들 역시 우리 시대의 알려지지 않은 거장으로서 곰브로비치를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청년사, 1994) 등의 에세이적 저작을 통해 중부 유럽의 문학을 알리는 데 주력해 온 밀란 쿤데라는 곰브로비치를 “조이스와 프루스트 사이에 위치하며”, “카프카보다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작가”로 꼽는다. 그리고 사르트르가 곰브로비치의 자리를 빼앗으면서 20세기 소설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간과되었음을 지적한다. 『페르디두르케』가 『구토』보다 일 년 먼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실존 철학과 소설을 결합시킨 모델이 잘못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쿤데라는 이를 두고 “철학과 소설의 신혼 초야가 서로 따분해하는 가운데 지나가버리고 만, 대단히 유감스러운 결말”이라고 평한다. 곰브로비치는 풍자적인 서술로 철학적·심리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인간 본성의 그로테스크하고 불합리한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현대인의 삶과 문화의 상투성을 폭로하고 있다. 곰브로비치의 도발적인 글쓰기는 문학의 전통적인 가치와 사회의 통념에 저항한다. 그러나 그로테스크하고 풍자적인 유머의 가면 뒤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다. 1904년 8월 4일 태어난 곰브로비치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이에 발맞추어 폴란드 하원에서는 2004년을 곰브로비치의 해로 정하고 연극제와 음악회, 사진전을 비롯한 행사를 기획하고 기념 포스터와 우표를 제작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폴란드의 문화부 장관이 회장을 임명하는 ‘곰브로비치 위원회’에는 작가의 미망인인 리타 곰브로비치를 비롯하여 198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Czesław Miłosz) 등이 명예 위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