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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매미 소리 좋은 날에 우는 사람 뒤뜰 정담 쑥꽃 가만 있자 그러니까 그게 거, 할 때의 그 가만 있자에 대하여 날마다 새로워지는 중 무서운 말 제2부 자라 그 집 아버지의 책 보리밥 은산 국수집 민요의 발전 유물론 제3부 두렁을 깎다 눈사람 세한도 최소 어떤 공모 문장대 맑은 얼룩 다시 읽는 시 동자꽃 비의 맛 관계 제4부 독일어 공부 무엇인가 새로 결심한 소년처럼 둥근 원의 길 고요의 힘 고요히, 쿵 집 칠판 아름다운 시절 제5부 나무를 심은 사람 11월의 단풍나무 일기 단상 기원 군락 게릴라 사랑 누구나 도망친다 빙벽 대추리 빈 의자 등나무 꽃 봄비 발문│손세실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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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있자 그러니까 그게 거, 할 때의 그 가만 있자에 대하여
어떤 말이 저렇게 깨달음의 등불을 오롯이 드러낼까 어떤 말이 저렇게 강물처럼 흘러 순간마다 빛날까 어떤 말이 늘 서서 걸으며 달려가는 우릴 멈추게 하겠는가 그 자리에 멈추어, 앉아, 되돌아보게 하겠는가 가만 있자의 그 순간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소주 집에 앉아 씩둑거리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날아오를 자리 가늠하며 대가리 까댁이는 미루나무 꼭대기의 저 까치에게도 주춤대며 개천 다리 건너오는 오늘 아침 샛강의 자욱한 안개에도 그러니까 그 자세 가만 있자의 낮은 걸음 자세는 깃들어 있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 순간 불티처럼 튀어나온 그 깨달음에 극(極)으로 치닫던 마음이 돌아앉는다 제 몸 진저리치며 세우는 그 자리에 고양이 쥐의 일에 슬퍼도 하고 밭에서 돌아온 소가 부어오른 제 발등을 핥기도 한다 어느 말이 저렇게 어두운 골방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담뱃불이겠는가 --- p.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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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적 세계관에 기초한 진중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온 조재도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을 냈다. 1985년 ‘민중교육’지에 등단과 함께 필화라는, 상처를 안고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되는 수난을 겪으며 줄곧 인간 본성의 건강함을 회복시키는 문제에 천착해 왔던 그는 이번 시집에 『백제시편』(실천문학사, 2004) 이후 최근까지 쓴 시 가운데 45편을 선별하여 묶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하나같이 우리네 엄혹한 현실 세계를 쓰다듬고 다독이며 삶의 생령을 불어넣는 숨결이 깊게 느껴진다.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들의 공통된 주제는 한마디로 ‘슬픔’과 ‘고요’이다. “막힌 칠정 한꺼번에 터져 나와 목젖이 다 갈라지는/ 크나큰 울음, 통곡”(「매미 소리」)이기도 하고, 좋은 날에도 “뒤꼍 감나무 밑에서/ 장광 옆에서/ 씀벅씀벅 젖은 눈 깜작거리며” “오줌방울처럼 찔끔찔끔”(「좋은 날에 우는 사람」) 우는 눈물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족, 이웃, 혹은 영원한 존재 등 그가 몸으로 마음으로 만났거나 만나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단한 삶에서 고여 온 슬픔의 원형들이다. 그러한 슬픔의 자리에 그는 항상 ‘고요’를 불러들인다. “극(極)으로 치닫던 마음이 돌아앉는” 곳, 분노와 흥분이 가라앉고 얼핏 신성(神性)이 머물기도 하는, “가만 있자의/ 낮은 걸음 자세” 속에 고요는 깃들어 있는 것이다. 자기 응시의 시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얻게 되는 ‘고요의 힘’이 끊임없이 비틀거리게 하는 슬픔을 견디는 힘이며,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아름다움 물고” “둥근 원의 길을”(「둥근 원의 길」) 가게 된다는, 메세기자 그가 세상을 향해 건네는 사랑법이다. 그러기에 ‘나’와 ‘우리’의 일상사를 어루만지며 마치 간곡한 제의를 올리는 듯한 시선 속에, 고요한 서정의 울림을 깊이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