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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 출간을 기념하며
박완서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이동하 감나무가 있는 풍경 윤후명 모래의 시詩 김채원 등 뒤의 세상 양귀자 단절을 잇다 최수철 페스트에 걸린 남자 김인숙 해삼의 맛 박성원 어느 날, 낯선 곳 조경란 봉천동의 유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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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는 다섯 사람 중 맨 가운데가 아버지라는 걸 나에게 애타게 주입시키려 들었다. 내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는 게 불쌍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획 90도로 돌려서 그 사진을 주목하기를 거부했다. 눈여겨봤댔자 그 단체사진 중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모가 시집가고 내 키가 더 커진 후에도 나는 의식적으로 사진가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걸 쳐다본다는 건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일 테고 내가 청승을 떨면 식구들이 나를 불쌍해할 것 같아 싫었다. 나의 최초의 자의식이었다. --- 박완서,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중에서
그때부터 길 위의 삼이 시작된 셈이었다. 집과 고향 즉, 낯익은 세계를 등지고 길을 떠남으로써 그의 생애는 시작된 것이었다. 지난 긴 세월 동안 어떤 곳, 어떤 집을 두루 거쳐 왔던가? 지금 그것을 일일이 다 기억해낼 수는 없다. (……) 그가 만년에 엉뚱한 고장에 짐을 푼 것도 서울에서 멀어지는 것을 겁내서라기보다, 막상 돌아갈, 돌아가고 싶은, 그 고향이 없어졌기 때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만년의 삶이란, 귀향의지를 포기한 삶일 수밖에. 더러 까닭 없이 마음이 썰렁해지곤 하는 것도 어쩌면 그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 이동하, 「감나무가 있는 풍경」 중에서 여름이 시작되며 어머니는 더욱 병세가 깊어졌다. 어머니는 열아홉에 나를 낳았다. 나는 탄생했으며, 그동안 많은 고행의 길을 거쳐 이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예전에 그랬듯이 꽃 한 송이를 들고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니는 병상에서 내게 손을 뻗었다. 이미 시간을 다투는 생명임을 모두는 알고 있었다. 빨리 죽지 않으니, 어떡하느냐는 당신의 말을 나는 어떻게 새겨들어야 하는지 망연할 뿐이었다. 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살려낸 손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많은 말들이 그 손끝에서 묻어 나왔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실로 오랜만에 잡아보는 손이었다. --- 윤후명, 「모래의 시詩」 중에서 살아오는 동안 누구의 가슴속에도 들어가 남지 못했으며 누구도 나의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않은…… 불쑥 튀어나온 뒤이은 생각에 여자는 그것인가? 나의 핵심 갈망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곧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것은 아직 발굴되지 않고 묻혀 있는 인간감정의 진실처럼 여자에게 모호하다. 줄기차게 감지되는 이 쓰라림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괴물이 되었는가. 무엇인가 잔혹하고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 같아 여자는 두려움을 느낀다. --- 김채원, 「등 뒤의 세상」 중에서 밤새 마음이 출렁였던 까닭은 그 길이 한 번 선택하면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막무가내로 우리의 등을 밀어대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이어져도 되돌아가 수정할 길은 없다. 방법은 하나다. 무작정 걸으면서, 때론 무릎을 굽혀 벌레처럼 기어서라도 일단 전진하며 앞날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빠는 기어이 살아남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굴욕과 배신과 분노로 점철된 시간을 견디는 것이 곧 ‘예술적’ 인간의 길임을 알았을 것이다. 천재의 자리도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오빠가 알았어야 했다. 운명에 투신하는 것이 아닌. --- 양귀자, 「단절을 잇다」 중에서 소설은 아주 느린 진척을 보였고, 그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동안 자신이 그 병을 제대로 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치유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작품의 완성을 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 때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소설을 마칠 때까지 살아 있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 다짐은 자기 자신에게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이기도 했다. --- 최수철, 「페스트에 걸린 남자」 중에서 "소설은 말이지…… 내 인생이 소설책 열 권인데…… 개 같은 인생이 소설책 백 권도 더 되는데…… 그걸 그냥 쓰면 안 된다 이그요. 빌어먹을 기계로 우당탕탕 치는 것도 아니라 이그요. 소설이란 건 말이지, 이 해삼처럼, 있는 힘을 다해 딱딱 씹어 삼키는 거라 이그요. 이 해삼처럼……." --- 김인숙, 「해삼의 맛」 중에서 서늘한 공기가 나를 스쳐가고 있었다. 왜 일까. 이 방은 아무도 살지 않는 방 같아 보인다. 침대는 내가 자고 일어난 그대로다. 반쯤 접혀 있는 줄무늬 이불과 베개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손을 대보면 아직 내 체온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왜 곧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책들 대부분은 작업실로 옮겨놓기는 했다. 그래서 그런지 침대를 제외한다면 책장 하나와 책상 대신 써왔던 사인용 하이그로시 식탁이 놓여 있을 뿐이다. 벽지에 남아 있는 희누스름한 메모판 자국만 그 방에서 살았던 나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최소한만 움직이면서도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었던 방이었다. 내가 이 방에서 어떤 글을 썼는지 어떤 이와 심야통화를 하곤 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그런 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말해도 이 방은 나의 첫 번째 방으로 남을 것이다. 죽음에 관해 처음 생각했던 곳. 두려워했던 곳이다. 그것이 곧 다가올 거라고 예견하고 있었던, 나의 방. --- 조경란, 「봉천동의 유령」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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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소설이 되다!
박완서, 양귀자 등 우리 시대 대표작가 9인의 자전적 소설 우리 시대 대표작가 박완서, 이동하, 윤후명, 김채원, 양귀자, 최수철, 김인숙, 박성원, 조경란, 이상 9명의 작가가 풀어놓은 그들의 삶과 사랑, 진솔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데 묶었다. 현대문학 창간 55주년 기념도서로 상재된 이 책은 1970년 등단해, 10권의 소설집과 15편의 장편소설, 다수의 산문집을 내며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박완서와 2002년 『문학인』 여름호에 「어느 우둔한 자가 작성한, 어떤 사기사건에 관한 보고서」 이후 8년 만에 신작을 발표하는 양귀자, 2004년 『문학사상』 1월호에 「지붕 밑의 바이올린(4)-유쾌한 장난」 이후 6년 만에 새 작품을 선보이는 김채원 등 수록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한국문학의 대표성을 갖을 만한 기념비적인 도서이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와 그 빈자리를 늘 모자람 없이 채워주던 한학에 능하셨던 할아버지와 딸의 교육을 위한 투지와 신념으로 자신의 희생을 불사한 어머니, 그리고 먼저 떠나보낸 남편과 아들에 대한 담담한 고백을 한 박완서, 전쟁통에 홀로 떨어져 피난길을 가던 한 낯선 소년의 모습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떠올리며 자신 역시 늘 길 위의 삶을 살았다 고백하는 이동하, 병상에서 아들의 손 한 번 잡길 간절히 바랐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후 고향 바다에 뿌려드린 애련을 추억하는 윤후명, 누구의 가슴속에도 들어가 살아남지 못하고 오직 자신 안에 숨어사는 괴물이 되어버린 한 여인의 투명한 고백을 그린 김채원, 뜻을 못 이룬 예술에 대한 굴욕과 배신과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투신하고 만 천재 오빠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을 그려낸 양귀자, 『페스트』를 쓰는 동안 그 자신 역시 철저히 페스트를 앓으며 글을 마무리했다 고백하는 최수철, 찬물 담긴 솥에 빠진 아이가 뜨거운 물에 덴 줄 알고 순간 정신줄을 놓아버린 주인집 여자의 가족이 빚어내는 비극의 틈새에서 전동타자기를 두드리는 자취생 김인숙, 홀로 텐트 들고 여행하길 즐겨했으나 텐트를 도난당하고 정처 없이 떠돌다 낯선 곳에서 만난, 환영처럼 다가왔던 한 여인과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박성원, 새로운 작업실의 환상은 온 데 간 데 없이 여전히 가족들을 머리 위에 이고 집과, 유령과 함께 살아가는 조경란의 비밀스런 이야기 들이다. 조심스레 한 땀 한 땀 힘들게 고백하며 적어내려간 이 소설들은 양귀자 소설의 제목처럼 그들의 과거와 오늘을,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스스로 보듬으며 소설과, 세상과의 단절을 잇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