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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하고 싶다면
버터 좀 주시겠어요? * 이라영 오십 보는 오십 보고 백 보는 백 보다 * 김산하 어느 불량 비건의 고백 * 김사월 고기라는 질문 * 조지 몽비오 비겐의 식탁 * 신소윤 다르게 하고 싶다면 괜히 그 책을 번역해서 * 김성한 3분의 1 채식, 누워서 식은 죽 먹기 * 박규리 지속 가능하다, 건강하다면 * 이의철 연결성을 넘어 위치성으로 * 조한진희 그것은 하나의 문이었다 * 강하라 |
LEE Ra-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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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쉽게 경솔해지고 모순을 실천하는 신체다. 타인에게는 엄하면서 나 자신에게는 대충 관대해지는 신체가 입이다. 생태와 다양성, 종차별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나의 입으로 여전히 버터가 들락날락한다. 상대적으로 전보다는 확실히 버터 소비를 ‘줄였다’. 그러나 종종 실패한다는 고백을 안 할 수 없다. 이런 내가 비건 지향이 될 수 있을까.
---「버터 좀 주시겠어요?」중에서 환경에 영향을 전혀 주지 않는 것은 없기에, 엄밀히 말하면 모두 정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차이’라는 말의 해석이 결정적이다. ‘오십보백보’라는 속담의 영향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다 똑같다며, 소 한 마리 먹는 것과 깨 한 톨 먹는 것을 동률로 보려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선 더 일반적이다. 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넓고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시각은 의외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오십 보는 오십 보고 백 보는 백 보다」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매번 옳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삶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이기에 완전할 수도, 완벽할 수도 없다. 매번 옳지 못해서 포기하는 것보다는 틀릴 때가 많아도 계속 그 방향으로 향해 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지금도 어디론가 가고 있을 자신과 누군가를 위해, 속도가 다르지만 힘을 보태는 과정은 필요하다. 죄책감과 진입장벽이 낮아져서 부족해도 노력하는 비건들의 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느 불량 비건의 고백」중에서 답은 가축을 야외에 풀어 키우는 거라고, 유명 셰프나 음식 평론가들이 말한다. 배터리 케이지에 가둬 키운 돼지고기 말고, 방목한 쇠고기나 양고기를 먹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 가지 재앙을 또 다른 종류의 재앙과 맞바꾸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대규모 잔혹 행위 대신 대규모 파괴를 가져올 뿐이다. 축산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환경에 얼마간의 파괴를 일으키지만, 밖에서 기르는 것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다. 이유는 비효율성이다. 방목은 살짝 비효율적인 게 아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낭비적인 것이다 ---「고기라는 질문」중에서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는, 다시 고기를 먹지만 조금은 주저하게 되었고, 먹는 것부터 입고 쓰는 것까지 동물의 희생을 대체할 것이 있으면 비건을 선택하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 야식으로, 주말에 밥하기 귀찮으면, 영화 보면서 입이 즐거울 것을 찾는다는 이유로 심심하면 시키던 치킨은 우리 집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식재료를 다듬다 물컹하는 고기의 느낌에 돼지나 소의 눈빛을 상상하는 순간이, 아무렇지 않을 때보다 많아졌다. 매끄러운 가죽의 질감과 특유의 냄새가 더 이상 좋지만은 않다. ---「비겐의 식탁」중에서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나는 학생들이 어떤 정합적이고 정당한 논리를 통해 내가 육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좋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많은 채식주의자와 달리 나는 동물들의 고통에 분명 공감을 하면서도 고기를 여전히 유혹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든 육식을 피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육식이 역겨워서도 아니고, 건강에 해가 되어서도 아니며, 단지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게 동물해방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으며, 이는 아마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괜히 그 책을 번역해서」중에서 ‘회색 채식인’으로서 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일단 이번 끼니에 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는 결정은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어떤 타이틀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의 자유의지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내린다. 결과는 같더라도, 어디까지나 먹을 수 있지만 안 먹는 거라는 생각은 내 스스로에게 꽤나 자유와 변화의 여지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내린 결정에는 아무런 켕김이나 비굴함이 없게 행동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3분의 1 채식, 누워서 식은 죽 먹기」중에서 비건 활동가들이 건강하고 활기차야 비건 활동가들이 지향하는 가치들도 우리 사회에서 더욱 활기차게 확산될 수 있다. 혹시라도 ‘고기 흉내’ 음식을 먹다가 불편한 증상이 느껴진다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보다는 좀 더 건강한 채식을 고민해야 한다. 동물과 환경을 위해 본인의 건강을 무시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탈육식’ 고민과 함께 ‘고기 흉내’를 넘어설 고민도 해야 한다. ---「지속 가능하다, 건강하다면」중에서 채식은 개인에게 갇혀서 작동하는 영역이 아니다. 채식은 계급, 빈곤, 장애, 성별, 민족, 전쟁, 종교, 문화 등 사회의 여러 요소가 매우 복잡하게 작동하는 정치적 영역이다. 채식을 개인의 욕망과 선택만의 문제로 볼 때, 채식 앞에서 각자가 서 있는 불평등한 ‘위치성’은 지워진다! 나는 채식을 하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비인간 동물이나 지구와의 ‘연결성’을 고민하듯, 채식 앞에서 자신의 ‘위치성’을 더욱 다층적으로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연결성을 넘어 위치성으로」중에서 나를 어떤 정의된 존재로 구분하게 될 때 우리는 모두 실수하고 자만하기 쉽다. 내 범주에 속한 것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게 되며 그 범주 밖의 타자를 우리도 모르게 구분 짓게 된다. ‘비건’이라고 속단할 필요도, ‘비건’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한 번에 바꿀 필요도 없다. ‘비건’이라서 우월할 이유도 없으며 ‘비건’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 ‘비건’은 인생의 수많은 선택과 취향, 경험 중 하나다. 나는 슬프고 강제하는 비거니즘보다 즐겁고 자유로운 비거니즘이 좋다. ---「그것은 하나의 문이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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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채식이라는 대안을 피할 수 있을까?
“인류의 밥상을 위해 지구가 총동원되고 있다”(김산하)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조지 몽비오) 살던 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전염병과 마스크 풍경만이 아니다. 올해 있었던 유래 없는 폭우와 산불, 아찔한 속도로 녹아내리는 빙하는 인류를 향해 하나의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다. 그렇게 계속 살다가는 모든 게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거라고. 지구의 어떤 것도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지금, 이 모든 위기의 원인들에는 교집합이 하나 있다. 바로 육식이다. 매년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에서 발생되는 배출량을 훌쩍 넘는다. 사육 과정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와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또 가축을 기르고 사료를 재배할 땅을 확보하기 위해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산림을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따라서 채식은 무엇보다 인류의 생존을 좌우할 키워드다. 그러니 뭐라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관심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실패하는 쪽이 아예 시도조차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 책은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만 비건 방향으로 옮겨가보자고 말한다. 야생영장류학자 김산하는 지구에 사는 870만여 생물 종 중에서 단 하나의 종, 즉 인간의 식사를 감당하는 데 지구가 통째로 이용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짚어준다. 그중에서도 육식이 지구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 앞에서, 이제는 채식을 흑백논리로 접근하거나 ‘오십보백보’라는 말 뒤에 숨지 말고, ‘생태적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옵션’을 검토해보자고 이야기한다. 영국의 환경운동가 조지 몽비오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공장식 축산의 대안으로 풀어놓고 기르는 방목 축산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대규모 잔혹 행위 대신 대규모 파괴를 가져올 뿐”이라고 단언한다. 배출되는 탄소량과 에너지의 생산 측면에서는 여전히 비효율적이며, 토지 황폐화 등의 문제를 따져봤을 때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육식이 지속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최소한 지금보다 덜 먹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어딘가 애매해서 더 리얼한 ‘회색 채식’ 이야기 “버터에 대한 내 혀의 욕망은 끈질기게 남아 있다”(이라영) “비건 라면 한 상자를 사고 나서는 스스로 조금 실망했다”(김사월) “아무리 애를 써도 채식의 윤리적 정당성을 반박할 수 없었다”(김성한) “그때의 나는, 처음 연애하는 이의 태도와 비슷했다”(신소윤) 다행히 채식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주목받는 중이다. SNS에는 감각적인 비건 음식 사진과 글이 넘쳐나고, 동물권에 대한 인식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공공 급식의 채식 선택권 이슈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육식 소비량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방송 등에서는 육식 예찬이 여전히 인간미와 털털함의 징표처럼 소비된다. 무엇이 진짜일까? 어쩌면 현실은 둘 다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놓치는 또 다른 현실도 있다. 극과 극으로 나뉜 채식 논쟁 사이에는 채식에 관심은 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고 있는 사람,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은근히 지향하는 사람, 몇 차례 시도했고 실패도 했지만 여전히 채식을 마음속 과제로 느끼는 사람, 즉 ‘회색 채식인’들이 있다. 어쩌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할지도 모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하는 ‘회색 채식인’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채식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버터’가 어떻게 채식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는지 유쾌하게 소개한다. 완벽하지 않은 채식에 대해서도 비난할 것이 아니라 “흉내내기도 반복하면 습관”이 되는 측면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완벽한 소수가 투쟁하고 희생하는 사회보다는 불완전한 다수가 연대하는 사회가 구조를 바꾸기 더 쉽다”며, 실패하면 또 작심하자고 이야기한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많은 비건 지향인들이 일상에서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고민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트위터를 통해 비건에 입문하게 된 과정, 비건 기내식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당황스러움, 다이어트를 할 때의 딜레마, 비건 집밥에 신나게 몰두하다 어느 순간 비건 라면을 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등은 채식을 시도하고 실패했던 많은 사람들이 차마 말하지 못했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순간들일 것이다. ‘우연히’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번역하는 바람에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철학자 김성한은 사실은 채식을 외면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공리주의 관점에서 도저히 채식의 정당성을 반박할 수 없었고, 그럼에도 “반박할 논리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만큼 여전히 고기에 유혹되는 자신을 돌아보며 이런 현실이기에 더 많은 ‘작은 물방울’과 회색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자로서 취재를 하다가 비건에 입문한 신소윤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처럼 몰두했던 비건 ‘시절’을 회고한다, 지금은 ‘10초 비건’이 되었지만 분명 이전보다 “조금은 주저하게 되었고, 대체할 것이 있으면 비건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처럼 “알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수많은 채식 지향인들의 ‘실패’를 단지 실패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가늘고 길게’ 채식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자유의지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한다”(박규리) “나는 즐겁고 자유로운 비거니즘이 좋다”(강하라) 그렇다면 ‘회색 채식’을 어떻게 시작해볼까? 채식이 옳다는 건 알겠는데, 잘할 엄두가 안 나거나 거듭되는 실패에 김이 새버린 기분이라면? 지속가능디자인을 연구해온 박규리가 “채식주의자라는 간판을 내건 순간 육류나 유제품 메뉴는 쳐다볼 수도 없다는 게 자유의지를 스스로 침해하는 듯 분하다”고 짚은 대목은 한 번쯤 비건을 결심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하다. “어디까지나 먹을 수 있지만 안 먹는 거라는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의지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한다는 그는 고기를 먹는 예외적인 세 가지 상황을 소개한다. 특히 완전채식을 하는 사람 1명의 1년치 채식과 일주일에 한 번 채식을 하는 사람 7명의 1년치 채식이 거의 비슷한 양이라는 진지한 계산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비건에 관한 책을 써온 작가 강하라도 스스로를 비건이라고 굳이 구분 짓지 말라고 당부한다. “스스로가 정해놓은 틀 때문에 오히려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건이라고 우월할 이유도 없고, 비건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는 대목은 양극단으로 나뉜 오늘날 채식 논쟁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슬프고 강제하는 비거니즘보다 즐겁고 자유로운 비거니즘이 좋다”고 말하는 그는, 비건이라고 정의하기보다 제철과일과 채소를 풍성하게 담아보는 쪽으로 생각해보면 어떤지 제안한다. 이러한 마음가짐들은 ‘가늘고 길게’ 채식하기 위한 심리적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채식 열풍을 넘어 ‘채식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고기 흉내’를 넘어설 고민도 해야 한다”(이의철) “어떻게 함께 채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조한진희) 이 책은 오늘날 채식 열풍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는, 한 번쯤 의문이 생기지만 선뜻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담겨 있다. 바로 ‘건강한 채식’과 ‘평등한 채식’의 문제다. 이는 개인의 ‘결심’과 ‘의지’ 못지않게 채식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사안이다. 환자의 건강을 고민하다가 채식에 입문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이의철은, 대체육이나 편의점 비건 식품 등 최근 주목받는 비건 음식들이 꾸준히 섭취해도 괜찮을 만큼 건강한 음식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지속 가능한 채식’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채식하는 사람이 건강해야 채식도 지속 가능한 사회운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비건 운동은 ‘고기 흉내’를 넘어 ‘고기 너머’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젠더, 질병, 장애 등의 이슈를 넘나드는 활동가 조한진희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채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주민, 쪽방에 사는 지인, 중증 장애가 있는 동료, 맥도날드 알바생의 사례를 통해 채식이 “단지 개인의 부지런함에 달린 문제”인지 묻는다. 채식이 “더 나은 선택지를 가진 이들의 고귀한 윤리적 액세서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채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는 채식이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것이 되기 위해, 사회에서 비건 운동이 더 많은 변화와 파급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채식의 본질적인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