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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 몰(沒)
조해진 / 조금씩, 행복해지기 위하여 김나영 / 술과 농담의 시간 한유주 / 단 한 번 본 이주란 / 서울의 저녁 이장욱 / 술과 농담과 장미의 나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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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종종 술 마시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떨리는 손을 감추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조금 더 마시려 애쓰고, 술 마시는 걸 자책하고 숨기려다 남몰래 마시며 불안한 안도감을 느끼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술 없이 부끄러움에 맞서기 싫을 때,세계가 짐짝 같은 무게로 업혀올 때, 오래된 관계를 내가 다 망쳤다 싶을 때, 아무리 달리 보려고 해도 내 마음이 하찮을 때, 가까운 사람에 대한 연민과 실망으로 마음이 그을릴 때, 한마디로 제정신인 걸 참을 수 없을 때 그런 생각을 한다.
--- p.26 나는 술에도 농담에도 재능이 없다. 주량은 평균 이하이고 내 농담은 대개 믿기지 않을 만큼 재미없다. 그래도 술은 자주 마시고 마시는 데 별다른 능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농담은 잘하는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다. 내게는 농담이 거짓말의 동의어가 아니라 진담의 다른 버전일 뿐이니까, 내 농담에는 코미디가 없고 대신 진담을 솔직하게 전할 수 없을 때의 얄궂은 가벼운 척만 있으므로. 술과 농담에 관한 내 작은 역사는 시시한지 모른다. --- p.39 술을 마시고 우리는 구겨진 마음을 괜히 펼쳐보고 안타깝게 매만진다. 수없이 주고받는 말들 중에서 한순간 우리가 함께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말이 있고, 그렇게 농담은 그 말의 내용보다는 그것이 나와 너를 통하게 했다는 이유로 값진 것이 된다. 스스로 밀어냈던 나의 한 부분을 마주하고 수많은 이유로 미뤄뒀던 관계의 회복을 마련하는 자리에 술과 농담이 있다. --- p.69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마신 기간이 십여 년 쯤 되는 것 같다. 날마다 취하거나 취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다. 자랑스럽게 하는 말이다. 진실로 자랑스럽나? 모르겠다. 그러나 예전처럼 글을 쓰지 못하게 된 것과 뇌가 썩어가고 있다는 기분을 제외하면 어떤 기록을 달성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물론 거짓말이다. --- p.124 시간이 흐른 것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이를테면 모든 것은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렇게 설명할 수 없다면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을 거라고. --- p.160 농담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그 말에 대해서 거리를 둘 때 발생한다. 거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농담 속에서 여유와 숨 쉴 공간을 갖게 된다. 웃기도 하고 릴랙스를 할 수도 있다. 농담은 거리감에 의해 발생하지만, 그래서 곧 잊히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진심을 말하는 사람은 거리감을 지우려 한다. 말과 진실 사이의 거리를, 자신의 말과 타인 사이의 거리를 없애기 위해 분투한다. 그는 자신의 진심 속에서 타인과 일치될 것을 목표로 말한다. 그래서 진심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지만, 동시에 여유와 빈 공간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진심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만, 진심만을 반복하는 사람이 때로 상대를 답답하고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 p.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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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없고 농담만 있다면 나는 농담을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이다. 나한테 농담을 걸어줘서. “토하고 나면 바로 착지하는 기분이 드는데, 그날은 어지간했는지 현기증이 가시지 않았다.” 편혜영 작가의 「몰沒」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살아 있음의 부력에 의해 헤엄칠 수밖에 없는 움푹한 공동을 얘기한다. 들키기 싫은 자가 되어, 가족의 일원으로서, 혹은 만화 속의 잉여가 되어. 작가는 마침내 ‘몰’을 부유하는 현기증을 거두고, 직면하는 이생으로 우리를 끌고 온다. ‘몰’의 자리는 디딜 수 있고, 웅숭깊다. “그러나 아직은, 그 말을 밝힐 수 없다.” 조해진 작가의 「조금씩, 행복해지기 위하여」는 내면의 목소리를 바꾸면서 농담한다. 목소리들은 조금씩 술에서 깨어나는 자의 분신으로서, 치기어린 목소리에서 성숙한 목소리, 지금의 목소리로 회복된다. 알코올의 농도를 덜어오며 했던 농담들은 이제, 나이에 위배되지 않는 방임을 위해, 새로운 말을 모색한다. “모든 술은 결국 둘이 아닌 하나의 마음을 낳게 하는 요술이지 않을까.” 김나영 작가의 「술과 농담의 시간」은 술자리의 현상학이다. 저자는 술자리에서 취한 표면들을 ‘덜 취한자’로서 섬세히 관찰하며, 보들레르의 ‘취하라’의 표면을 식구들이 놓인 현실의 영역으로 전환시킨다. 당신은 여기서 하나의 용기를 발견한다. 현실이 구태의연하고 당신을 피로하게 하더라도, 현실을 홀대하지 않는 용기를. “이것은 내가 마시지 못한 개의 이야기” 한유주 작가의 「단 한 번 본」에서, 작가는 ‘글록17’ 한 자루를 쥐고 꿈과 현실을 오간다. 현실은 미처 꿈꾸지 못한 여분의 꿈결 같다. 작가는 이동한다. 첩자처럼. 이국에서 이국으로. 저격을 위해, 저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감춰야 하는 꿈속의 실존은 굴종하는 ‘개’와 아직 야수성을 지닌 ‘개’를 동시에 겨누고 있다. 절실한 것이 있다면 “맥주를 마시지 못하고 깨어난 것이 다소 분할 뿐.” “시간순으로 할까, 사건순으로 할까?” 이주란 작가의 「서울의 저녁」는 취한 시간을 가누며 통과해내는 ‘서울의 거리’를 가물거리는 취기로 추적하고 있다. 2차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두서없이 쏘다니는 우리의 모습처럼. 기시감의 서울 야경들은 겹을 이루다, 이내 흩어지며, 더해지고 빠져나가는 간헐적인 존재들은 이제 출근을 준비하는 우리의 초상 같다. “유연해진 세계가 있고 접속하는 사물들이 있고 변주되는 위로가 있다.” 이장욱 작가의 「술과 농담과 장미의 나날」을 읽는 당신은 혼자만 웃을 수 있는 엉뚱한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당신은 미결된 범주 안에 엉뚱한 허구를 접속시켜가며, 농담을 직업 삼는 광대 안에 혼재된 지식인들과 차례로 독대할 것이다. 어느덧 당신은 ‘장미의 나날’을 통과했고, 낭만을 잃었다 해도, 다시, 애틋한 해후가 있을 거라는 미망을 일상에 견줄 것이다. 『술과 농담』을 통해 경험되는, 취했을 때의 감각, 혹은 숙취에서 깨어나는 감각, 그 오랜 마취에서 깨어나 평범함으로 회귀되는 감각들은, 단지 술자리부터 귀갓길에서, 휘발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연거푸 치러야 하는 일상 안에서, 유쾌한 술자리의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6인의 작가들은 ‘해석되지 않는 스타일’을 위해 술과 농담을 사용해서, 서로 다른 스타일로 갱신된 현실을 선사한다. ■ ‘말들의 흐름’ 열 권의 책으로 하는 끝말잇기 놀이입니다. 한 사람이 두 개의 낱말을 제시하면, 다음 사람은 앞사람의 두 번째 낱말을 이어받은 뒤, 또 다른 낱말을 새로 제시합니다. 하나의 낱말을 두 작가가 공유할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쓰여지지 않은 문학으로서 책과 책 사이에 존재하며, 오직 이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잠재합니다. 1. 커피와 담배 / 정은 2. 담배와 영화 / 금정연 3. 영화와 시 / 정지돈 4. 시와 산책 / 한정원 5. 산책과 연애 / 유진목 6. 연애와 술 / 김괜저 7. 술과 농담 / 편혜영, 조해진, 김나영, 한유주, 이주란, 이장욱 8. 농담과 그림자 / 김민영 9. 그림자와 새벽 / 윤경희 10. 새벽과 음악 / 이제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