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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이위발
시인동네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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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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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문은 시선이다 · 13
경계 · 14
겨울의 반전 · 15
너의 변명은 참이었다 · 16
익지 않고 사는 법 · 18
가능성 · 19
버틴다는 것은 · 20
소리 없이 기어드는 이방인 · 22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 23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 24
낙타와 고삐 · 26
기다린다는 것은 · 27
필론의 돼지 · 28
그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 30
치명적인 것은 어둠에 묻혀 있다 · 31
TV를 보면서 · 32


제2부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 35
선을 넘어서는 순간 · 36
지하철 2호선 · 37
오필리아 · 38
사라지지 않는 곳에서 · 40
사바세계 · 41
믿음에 대한 또 다른 편견 · 42
꽃의 세상 · 44
미안해, 미안해 · 45
기다리며, 싸우며, 잡는 법 · 46
사나이 눈물 · 48
당나귀가 바라보는 세상 · 49
꽃길 · 50
그저 그렇게 사는 · 52
그림자의 자세 · 53
있음과 없음의 사이 · 54


제3부

한 가지 시선에 대한 오류 · 57
달과 장미 · 58
그녀의 이름은 구름이었다 · 60
슬픔의 길 · 61
당신은 떠났지만 떠난 것이 아니었다 · 62
너를 바라보다 눈을 감는다 · 64
금낭화 · 65
그때 그 시간 · 66
그 길은 안개였다 · 68
그린다는 것은 · 69
그것이 알고 싶다 · 70
그 섬은 기억하고 있다 · 72
이것이 본질이다 · 74


제4부

경지에 오른 사내 · 77
축산 할배와 워낭 · 78
시간놀이 · 79
풍경 · 80
검정 고무신 · 81
문답 · 82
어쩔 수 없는 선택 · 83
봉선화 · 84
상사화 · 85
고백 · 86
제망매가 · 88
걸어가는 길 · 89
과대포장 · 90
빅뱅 · 91
우는 나무 · 92

해설 주병율(시인) · 93

저자 소개 1

195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지난밤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이 있다.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웹진 《엄브렐라》 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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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80g | 125*203*8mm
ISBN13
9791158965082

책 속으로

그는 기차를 타고 있다. 문 너머 퍼즐 조각 같은 자잘한 논과 밭이 보인다. 식칼 같은 햇볕이 문틈으로 깊숙이 찔러 들어온다. 햇볕이 땅을 밟고 있는 시선과 마주친다. 그는 문의 시선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서로 다른 문이 마주 보고 있는 길이 보인다. 문이 닫히면 문 뒤로 손 흔드는 사람 보이고, 열리면 보이질 않는다. 문이 열리자 회색빛이 너울대는 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 웃음을 참는 사람이 허그를 하고 있다. 문이 등을 보일 때는 우는 사람 내보내고, 가슴을 내밀 때 웃는 사람 내보낸다. 그는 문 등에 올라탄 것도 아닌데, 흙을 밟은 것도 아닌데, 그는 한번 열리면 영원히 닫히지 않는 문 앞에 서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처럼.
--- 「문은 시선이다」
――――――――――――――――――――――――――――

상처는 만질수록 커진다고 누가 말했다. 사물의 맨 끝이 아픔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번들거리는 요기로 벗은 몸을 할짝거리는 달빛은, 어릴 때 발에 채이던 돼지 불알처럼 팽팽하게 달려오고,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반복되는 일상에, 머리를 자른다고 슬픈 마음까지 자를 수 없기에, 고요한 쉴 곳을 가지고 싶어,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세상의 괴로움을 안아야 한다기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몸도 따라가지 않듯, 노을을 보며 꿈틀대는 뿌리를 의식하는 것이 필연이라면, 섹스는 잠시 밀려오는 아슬아슬한 허무감이겠지, 싱그러운 마음을 비추는 것이 부드러움에 스며들고, 굵은 눈발이 어깨에 앉을 때마다 꽃잎이 투?욱 하고 떨어지듯, 누리고자 품는 방식이 은유적이라면, 이 망할 놈의 햇빛 곱기도 해라!
--- 「겨울의 반전」
――――――――――――――――――――――――――――

필론의 돼지처럼
잠자고 있는 것을 흉내 내고 있는데
벌 한 마리 방 안에 들어와
머리 처박다 떨어졌다 다시 처박는데
열려 있는 문 보지 못하고 창호지만 두드리다
어느 사이 빠져나갔는지 모른다
의식이란 스스로 발라놓은 창호지 같아
진실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진실이
나의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하늘 높아 보일 때 사람들이 외로워 보여
높은 것을 싫어하듯
내일을 말하지 않는 사람 곁에서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듯
돼지는 뒷걸음질 치며 악을 쓰고 있다
용서할 거리가 없다고 우기는 사람에게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 「필론의 돼지」
――――――――――――――――――――――――――――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이긴 적이 없는 얼굴, 상대에게 의존하면 반드시 불행을 부른다는 직감을 믿는다. 우주가 이끈다는 자신감, 슬픈 꿈처럼 비가 내리고, 양파 같은 너의 맨발이 감자처럼 노란 발가락 사이를 열고, 반디의 무수한 불빛들이 이교도 무리처럼 은밀하게 명멸하고, 미확인된 비밀을 봐버린 것만 같이, 뒤집힌 배처럼 흰 속을 드러내는 잎사귀들, 장마 뒤의 비릿한 냄새가 마당에 가득하고, 한낮의 연약한 그늘 속에서 누구를 기다리거나, 요람 속의 아기거나, 거름 내 나는 보잘 것 없는 풀꽃들이거나, 그 현기증은 서늘하고 어두운데, 그 얼굴은 햇살을 받아 허공에서 설탕 녹아내리듯 가슴이 미끄러졌다. 상추로 싼 밥을 밀어 넣을 때 막막한 표정처럼, 함부로 뭉친 머리카락이 푹 젖고, 문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울타리, 달빛 아래 마주한 하얀 빨래에서 느끼는 전율, 밖을 나서기 전 내 몫이라고 손에 쥐어주는 한 움큼의 한숨, 그걸 한나절 시간 위에 올려놓고 데굴데굴 굴리면서 기다렸다. 그 얼굴은 어둠을 빨아들여 언덕을 굴러다니는 눈뭉치로 부풀어, 달팽이가 되어 껍질 속에서 잠만 자고 있는 그 얼굴을 지우고 싶다.
---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

푸른색이 오로라처럼 엉겨 있고
고개 숙여 밑을 보니 푸른 물이 발가락을 물고 있었다

순간, 감이 좋았다

푸른색이 말문을 튼 채 주고받는다
“색정이 뭔지 알아?”
“생사의 마음이잖아”

파란 불빛이 터지기 시작하자
숨어 살던 이끼들이
꽃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맞닿은 다리 위엔 푸른 경계의 흔적만이
참과 거짓을 구분하듯

저 너머엔 선도 아닌 것이
저 너머엔 길도 아닌 것이
의문의 꼬리를 물고 달려들고 있었다

여우의 눈빛을 닮은 푸른 그림자가
유성처럼 떨어지자 등 위에 타고 있던
아라한이 말문을 틀려고 하는

순간, 푸름은 바다 위로 떠올랐다
--- 「오필리아」
――――――――――――――――――――――――――――

당신에게 가기 위해선 당신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죽어야 문이 열린다는 것을
땅에서 바람으로 하늘에서 구름으로 만들어져 온 것
그 속에 당신의 무늬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에게서 연분홍 감정이 피어 나오는 것은
깊은 향기를 내는 제 뿌리입니다.
땅의 울림에서 깊숙이 박혀 있는 뿌리, 그것은 씨앗의 뿌리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깨달음의 울림이고, 그 울림은 맑습니다.
그 맑음은 향기입니다.
차를 서너 사람이 마시면 그저 맛을 보는 정도이고,
둘이 마시면 잘 마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마음이란 이렇듯 마주 보고, 앉으면 따뜻해지고,
넉넉해지고, 미소가 번집니다.
줄기에 달린 등을 뿌리가 보듬어 안고 있는 한
당신 같은 멋진 문장은 태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 「금낭화」

출판사 리뷰

이위발 시집 『지난밤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를 읽고 우선 사람이 사람으로서 비로소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사람과 인간이란 말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인간이란 말에는 ‘사이’와 ‘틈’이란 냉기가 먼저 느껴지고 사람이란 말 속에는 ‘체온’과 ‘따뜻함’이란 온기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시집에서 이위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일까.
그는 ‘시인의 말’에서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상징이다”라고 밝혔다. 그가 ‘느낀다’라고 하는 말에는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온기라는 의미와 반추라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아있음’이란 말 역시 사람이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 보고 있을 때 차오르는 충만 같은 것, 일테면 관용의 다른 표현이 살아있음의 상징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한다는 것은 감각이라는 것을 통해서 보거나 듣고 알아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감으로 체화되는 세상의 일이란 언제나 주관적이다. 그가 이번 시집에서 줄곧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바로 느낌=마음이라면 그의 마음에는 여유와 안정이 생겼음이 분명하고, ‘사유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방점으로 찍혀 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그가 과거보다 한층 더 안정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자기화 시킬 수 있는 사유의 기저에는 폭풍과 같은 부침으로 출렁거리던 지난 삶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는 당나귀가 이른 봄 흙을 뚫고 마중 나온 처녀치마꽃을 지나자, 현란한 몸 색깔로 치장한 채 구술 꿰듯 이어진 더듬이, 외계인 같은 겹눈, 옴폭옴폭 파인 점으로 멋을 부린 딱지날개를 가진 벌레를 만났다. 그 길을 왜 가느냐고, 벌레가 물었다. 이 길을 택한 것은 사람의 발자국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곤 계속해서 살을 붙여 나갔다.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한 것은,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뜀박질하면 나 자신만 보이고, 걷다가 서면 벌레 소리 들리고, 죽은 개구리 곁에 앉으면 작은 우주가 보이고, 당나귀 눈엔 뭐만 보인다고, 숲속엔 잎만 먹는 녀석, 즙만 빨아 먹는 녀석, 썩은 나무만 먹는 녀석, 꽃가루만 핥아 먹는 녀석, 입맛에 맞게 부위 바꿔가며 먹는 녀석, 당나귀가 한마디 던진다, “저렇게 먹는다는 것은 오늘을 볼 줄 아는 것들이고, 내일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 「당나귀가 바라보는 세상」 전문

하이데거가 후기 사유에서 생각한 인간의 의미는 인간이 존재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한에서, 존재의 본질로서의 ‘그것’의 부름에 귀의하는 순간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나 불교에서 바라보는 존재는 신도 아니고 ‘세계의 근거’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란 무엇인가? 색(色)으로부터 체득되거나 인지된 세계의 무상성을 깨닫는 앎이 바로 존재라고 하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 가치라면 위의 인용 시가 내포하는 의미가 그러하다. “걸어가는 당나귀가 이른 봄 흙을 뚫고 마중 나온 처녀치마꽃을 지나자, 현란한 몸 색깔로 치장한 채 구술 꿰듯 이어진 더듬이, 외계인 같은 겹눈, 옴폭옴폭 파인 점으로 멋을 부린 딱지날개를 가진 벌레를 만났다.” 과히 색(色)의 향연이다. 이것이 사바세계고 우리가 유/무라고 하는 물성적 인식으로 펼쳐진 세계다. ‘있다/없다’라고 말해지는 것, ‘아름답고/추하다’라고 생각되는 것, ‘좋다/나쁘다’로 분별 지우는 것 등이 모두 이 색(色)에 있다. 화자는 당나귀에게 묻는다. “그 길을 왜 가느냐고,” 당나귀가 대답한다. “이 길을 택한 것은 사람의 발자국이 없기 때문이라고” 색의 무상함을 아는 것이 존재의 앎을 체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 당나귀가 색의 길을 가는 것이 어찌하여 무상의 길을 앎이라고 하는 것으로 관통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나라고 하는 것은 너라고 하는 배경이 있을 때 나라고 하는 것이 성립된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유에서 무를 알게 된다는 것이고, 인용 시에서 화자가 색의 향연을 먼저 제시한 의도도 색의 허무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그는 다시 말한다. “그리곤 계속해서 살을 붙여 나갔다.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한 것은,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렇듯 화자는 색(色)의 덧없음을 경험을 통해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변화무상하다. 이 변화무상 속에서 나타나는 대상과의 끝없는 만남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사멸시키기도 한다. 그것들은 나의 마음에 의해 색(色)도 되고 공(空)이 되기도 한다. 이위발 시인은 젊음의 대부분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곳은 부재의 공간이다. 본인도 고백하거니와 그 시간 동안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풍찬노숙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동가식서가숙하며 몸과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아서 헤매고 괴로워하던 세월이었다. 그러던 그가 안동으로 이주한 지 벌써 이십여 년에 가깝다. 그동안 그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고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 많은 일과 변화를 통해 그 자신인 나[自性]를 알게 되고 존재의 드러냄을 알게 되고 사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난밤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라는 문장에는 공(空)과 색(色)이 함께 있다는 ‘앎’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을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내적 리(理)/사(事)의 이치와 통섭(統攝)에 대한 이해의 습입(濕入) 정도로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 「해설 주병율(시인)」 중에서


"남의 말을 들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 전후로 몸의 기운이 달라졌다. 통증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살아있음을 깨우쳐주었다. 한의원을 자주 들락거렸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몸의 울림이었다. 정신 또한 폭이 좁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살아온 지난 흔적에 대해 더듬기 시작했다. 먼저 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상처 준 사람들이었다. 곱씹어보면 내부자는 나 자신이었다. 가슴에 응어리진 그 인연을 끄집어내어 연락을 했다. 진심이 통했는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눈물이 났다."
- 시인의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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