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본래부터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들도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있고 너무나 이른 나이에 가난해졌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았던 때의 일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유했던 시절의 일을 글로 써두었거나 그 시절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기억하기가 용이합니다. 가난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굶주리는 가난입니다. 이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최근에 들어서는 자주 간과되기는 하지만, 가난이란 근본적으로 굶주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허기, 현기증, 두통, 구역질, 무기력증, 공허한 눈동자로 표현됩니다. 또한 반대로 뚜렷한 이유 없는 공격성이나 과도한 자기 집착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곧 가난의 성격은 더도 덜도 아닌 굶주림의 성격입니다. 설사 끼니를 거를 정도가 아니라 해도 역시 가난은 굶주림인 것입니다. 나에게는 긍정적인 의미의 가난이란 이미 순수한 가난이 아닙니다. 그런 가난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단순한 불편과 수치를 넘어선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정서적으로 지배합니다. 인간과 그 아들과 그 아들을. 그러므로 굶주린 가난의 기억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부유하던 시절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입에 빵을 처넣어주어도 역시 게걸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괴로워하겠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테니까요...... 그렇습니다. 나, 나는 지금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도저히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없습니다.
--- pp. 199∼200
그날, 스키야키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마(馬)의 아내는 입술을 깨물고 서 있다가 흑 하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마는 침대 곁의 쓰레기통에 담뱃재를 천천히 털면서 일어나기도 귀찮고 해서 고약한 냄새나는 재가 허공에서 부스러져 날리는 것만 바라보았다. 고양이 오줌 자국이 침대보에 얼룩덜룩했다.
"뭐야?"
훌쩍이는 꼴이 지겨워진 마가 한마디 했다.
"그게 울 일이야? 젠장."
마의 아내 돈경숙은 70킬로그램이 넘는, 그러나 살이 쪘다기보다는 건장하다고 하는 편이 어울리는 몸집으로 일부러 느릿느릿 세탁기 속의 빨래를 꺼냈다.
"그게 울 일이야? 젠장."
마는 다시 한 번 더 같은 대사를 중얼거렸다.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는 몸무게 55킬로그램의 빈약한 몸을 허덕거리며 돌아누웠다. 머릿속으로는 달콤한 가쓰오부시 국물에 잠긴 표고버섯의 숨 막히는 향기를 상상했다. 젠장, 그런데 돈이 없단 말이지.
"그리고 우리는 오늘 외출할 수 없어."
돈경숙이 번질번질한 콧물을 손바닥으로 쓱 닦으며 말했다.
"그건 왜?"
"내 유일한 외출복은 세탁소에 가 있고 구두는 밑창이 떨어진 것 뿐이야. 머리는 오랫동안 미장원에 못 가서. 봐, 미친년이 쑤셔놓은 실타래 같지. 이 꼴로 어떻게 외출하란 말이야?"
돈경숙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녀의 젖가슴이 낡아서 너덜너덜 해어진 면 속옷 아래 비좁게 들어앉은 것이 보였다. 축 처진 아랫배의 살덩어리와 거기에 반해서 무서울 정도로 단단하고 탄력있어 보이는 불그스름한 허벅지가 속치마 아래로 언뜻언뜻했다. 그녀의 종아리는 그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짧고 가느다래서 우스꽝스러운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는 다리로 좁은 방안을 이리저리 어정거리며 마의 입에 물린 담배를 쓱 뽑아서 자기의 입술 사이에 끼웠다. 마는 불쾌해져서 한번 걷어차줄까 생각도 했지만 귀찮아서 생각을 바꿨다. 지금 돈경숙은 마에게 돈이 없다는 것을 시위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또 오늘 손님이 오기로 했어."
"손님이라니."
마는 좀 놀랐다. 누가 이따위 집구석에 손님으로 방문할 일이 있단 말인가.
"그러니 당신 옷이나 좀 입어. 그렇게 개구리 좆만 한 거 달고 어슬렁대지 말고."
"흠. 도대체 누군데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답지 않게."
마는 겨드랑이를 슥슥 긁으며 귀찮아 죽겠다는 포즈로 일어나 앉았다. 돈경숙의 말대로 마는 알몸이었고 돈경숙은 속옷 바람이었다. 마의 겨드랑이에서는 돈경숙의 사타구니 지린내가 풍겼다.
"당신 전처야."
"뭐야?"
"귀먹었어? 당신 전처가 오늘 방문하겠다고 전화했었단 말야."
"씨발년. 그걸 오라고 그랬단 말이야?"
드물게 마는 욕을 하고 화를 냈다. 마의 머리 속에서 긴장이 팽팽해졌다.
--- pp.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