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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 편지
2. 소식 3. 개화 4. 양수리에서 5. 백자진사매국문병 6. 슬픔의 힘 7. 빙어 8. 그 집 뜨락의 수국 9. 그 낯익은 담 모퉁이 은행나무 10. 첫눈 11. 내소사에서 12. 백제와당연화무늬 13. 겨울 금산사 14. 미소 15. 협곡 16. 규암 나루 17. 겨울 규암장 18. 흉가 19. 말무덤 20. 마산포 하루 (이하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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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르기까지 참 오래 꿈꾸었습니다. 참 많은 세상의 고샅과 모퉁이를 서성거리기도 했고, 그 불 켜진 어느 집엔가 그대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번번이 낙망하여 바닥을 헛짚는 것처럼 발 밑이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여기 이르기까지 참 오래 꿈꾸었습니다. 나는 지금 또하나의 고샅, 또 하나의 불켜진 집 담 모퉁이에 서 있습니다.
그대는 어디에 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이제 그것이 그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임을 알 것도 같습니다. 오래도록 찾아 헤매다 오래 전에 떠났던 집 앞에 이르러 기진하는 것이 목숨 있는 것들의 일임을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이 고샅과 불 켜진 담 모퉁이는 무척 낯이 익습니다. 담 모퉁이에 기진한 은행나무 한그루 노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 p.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