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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1부 시 4월 화가 장씨가 그림을 그릴 때 화가 장씨가 먼길을 떠날 때 옛사랑 무덤 연기 쌍봉사를 그리며 사람을 묻는 뜻은 백담계곡을 내려오며 환생 눈먼 사랑노래 가벼운 안녕 가을날의 점심 홍등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겨울 아침, 장룡 겨울 아침, 청령포 후략 |
윤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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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는 길이 맞느냐 묻고 싶은 듯
길 복판에 멈춰 섰다가, 아주 가기는 싫은 듯 은행잎 단풍잎 함께 차에도 밟혔다가 구둣발에도 눌렸다가, 아무나 붙잡고 달려보다가 엎어졌다가, 뒹굴다가 납작해졌다가, 봉긋해졌다가 집 나온 강아지모양 쭈뼛거리다가 부르르르 떨다가 결심한 듯 차고 일어나는 검은 비닐 봉다리. 가벼운 안녕 --- p.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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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신간안내문
나라 안 청령포를 비롯한 여러 명소부터 나라 밖 티베트나 천축까지 그의 폭넓은 공간상의 떠돎은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나타난다. 그러나 그 이동은 옛날과는 달리 늙음 내지 나이 든 뒤의 떠돎으로 보여진다. 이 나이 듦에서 오는 관조와 여유는 죽음에 관한 담론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죽음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운명 같은 것이어서 체념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죽음에 대하여 인간은 공포를 느끼고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잊고 지우고자 한다. 윤제림의 경우 죽음 떳떳한 것도 남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느 날 돌연스럽게 무뢰배나 불한당처럼 닥쳐오고 모든 삶을 파괴하는 폭력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 죽음을 덤덤하게 바라보고 또 진술한다. 이문재(시인) 윤제림의 시들은 시간과 공간의 주름에서 태어난다.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을 압축하거나 확장하는 능력이 빼어나다. 죽음 너머를 바라보거나, 사랑 이후를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은 웅숭하다. 그 웅숭깊음이 주름이어서 멀고 가까운 것, 높거나 낮은 것들을 다 품어낸다. 주름을 펼치거나 줄이며 그의 시들은 찌푸린 하늘을 씻고 언 땅을 덥힌다. 그러나 그의 시가 어찌 삶의 전모에 대한 지지가 아닐 수 있으랴. 신경림(시인) 그가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작고 하찮은 것들이다. 목소리도 거세고 높지가 않고 조용하고 차분하다. 느릿느릿 혹은 가만가만 그는 그 작고 하찮은 것들 속에서 사람이 사는 참다운 뜻과 기쁨을 찾아내고 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잘 익은 석류나 조그만 보석 주머니를 연상하곤 했다. 보기에도 탐스러운 껍질을 벗기면 그 속에 맛있는 알들이 촘촘히 박혀 있기도 하고, 예쁜 주머니 끈을 끄르면 그 속에서 아름다운 보석들이 쏟이져나오는 것이다. 시의 틀도 내용에 알맞게 단아하고 아름다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시를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홍신선(시인, 동국대 교수) 윤제림 시의 문장은 대체로 짧고 간결하다. 그리고 힘이 있다. 그 힘은 주로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그것도 전혀 유사성이 없는 것들로 폭력적으로 치환하는 은유 형식에서 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문장의 행간을 대폭 넓힐 대로 넓혀놓는다. 곧 생략과 비약을 통한 공간을 문장과 문장 사이에 두드러지게 마련해놓고 있는 것이다. 때로 과감하기조차 한 그 생략과 비약은, 독자가 능동적인 참여로 상상을 작동시켜야 하는 넓은 공간을 만든다. 말하자면 동양 시학의 특수장치인 여백이 텍스트 속에 확보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