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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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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사과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 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사람의 마음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을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마을만큼 큰 사고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믈오믈 잘도 잡수시네요 --- p.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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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 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을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 「잘 익은 사과」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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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그 시리게 섧던 시인의 이름으로
나는 한동안 내 시가 소월과 같은 우리 나라의 서정시와는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소월 시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놀랐다. 내 시도 소월의 식민지 의식과 다를 바 없는 분열의 의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성이며, 한국 사람이다. 나의 시에도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타자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나는 그 타자성으로 시 안에서 울고 웃는다. 나는 한동안 한국의 일제 시대 선배 시인들의 시를 의식적으로 읽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을 읽지 않는 것이 나에게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식민지 근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어떤 계기가 찾아와서 소월서부터 연대를 따라 시들을 읽어 내려 오면서 한없는 역설적 행복감을 느꼈다. 그들에게서 나에게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동질감, 공통의 정서를 발견한 것이다. 시 한 편 한 편의 독립성을 세우고, 자신들의 존재를 시대와 비벼 넓히며 우리말의 결에 몸 부비던 찬란한 시인들의 고독, 그 중에서도 여성시인인 나를 가장 몸둘 바 모르게 했던, 가장 징그러운 이름, 그 젊고 시리고 섧던 소월의 이름으로 상을 받는다니.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문학적 자서전―2000년 4월 17일, 태양지우개님이 싹싹 지워주실 나의 하루 병(病)은 답장이다. 상대방은 보내지 않았는데 나는 답장을 받는다. 학교에 가지 않고 내가 책을 읽고 있다. 책 말고도 종이에 글씨가 씌어진 것은 모조리 갖다 놓고 읽는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글자만 있으면 나는 모조리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고기를 싸온 종이도 읽고, 창 밖을 내다보며 간판도 읽는다. 아파서 학교에도 못 가고 책만 읽는다. 친구네 집에서 정음사,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을 빌어다 놓고 모조리 읽는다. 얼마나 번역이 잘못되었는지, 좋은 작품인지, 그렇지 않은지, 그런 것은 따져 보지 않고도 모조리 읽는다. 전후 세계문학전집도 읽고, 백과사전도 읽는다. 아픈 내 몸은 읽지 않고, 책만 읽는다. 내 병실의 옆 침대에서 처녀가 죽는다. 그녀는 남의 집살이를 하던 중에 2층 유리를 닦다 떨어져 병원에 실려온 고아 처녀였다. 처녀가 죽은 날도 나는 책을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