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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1부 쌍둥이 면류관 홍조 口 6 흰 버티컬을 올리면 하얀 동물원 수은등 촛농 측백나무 나선형의 사람들은 저울 위에서 사라진다 긍휼 독주회 2부 어항 수선화 그림자 노을 걷는 야자수 나의 투우사-식사 기도 페르산친 라일락 모래시계를 뒤집는 심경 사순절 거인의 잔디밭 그 방에선 물이 자란다 비치발리볼 유기 마임 등대 코르사주 3부 여름 정원 반도네온 리시안셔스 바람 종이를 찢는 너의 자세 1226456 발라드 석회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건 얼지 않는 모스끄바 숲 숲2 나 너희 옆집 살아 식빵 그녀가 죽고 새벽이 십 센티미터 정도 자랐다 나는 왜 고궁을 주인처럼 걸었는가 퇴원 매립지 자명악 창백한 화전민 붉은 광장 노를 젓자 4부 6 2 종유석 서커스 수컷 팔레트나이프 기억하는 악몽-라넌큘러스 망루 붉은 염전 血 백야 메니에르 횡단 기둥 안에서 성에 꽃 화환-대신하여 움직이는 작은 천국 쌍둥이 작품 해설/ 김행숙 통각(痛覺)의 가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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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수선화」, 「라일락」, 「리시안셔스」, 「라넌큘러스」……. 그중에서도 단 한 줄로 이루어진 시「꽃」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언 강 위에서 춤을 추는 나의 할머니 “언 강 위에서 춤을 추는 나의 할머니”의 몸짓으로 돌아오는 성동혁의 「꽃」. 그리고 여기, 아름다운 한 청년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어떤 철학자는 진정한 선물, 아무런 대가(교환)도 기대하지 않는 선물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선물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주체의 바람을 상정하지 않는 이 선물은 불가능의 가능성인가. 이 시집은 당신에게 온 희귀한 선물이다. 눈을 기다리고 있다 서랍을 열고 정말 눈을 기다리고 있다 내게도 미래가 주어진 것이라면 그건 온전히 눈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왜 내가 잠든 후에 잠드는가 눈은 왜 내가 잠들어야 내리는 걸까 (중략)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내가 나중에 아주 희박해진다면 내가 나중에 아주 희미해진다면 화병에 단 한 번 꽃을 꽂아둘 수 있다면 -「리시안셔스」에서 ■ “그리워도 연필을 깎지 말고” 『6』에는 또, 시인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쓴 러브레터도 있다. 「숲」에 심겨진 나무 같은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시인이 아닌 독자 누구라도 마치 할아버지 앞에서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처럼 조그맣고 순정해질 것이다. 연필을 깎을 땐 숲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린다 촛불만 봐도 아이 현란해, 방으로 들어가는 촌스러운 아가씨를 밤은 쓰다듬어 준다 (중략) 나의 따뜻한 여인아 바쳐 드릴게요 이젠 잊고, 마시오 서로를 외롭게 바라보고 그리워도 연필을 깎지 말고 아이들과 누워 작과 희귀한 질문에 대답해 주시오 -「숲」에서 ■“거울을 보면. 숨이 차고” 시인의 약하고 여린 몸은 꽃을 키우는 마음을 주었지만, 당연하게도 고통과 슬픔과 끊임없는 한계의 상황마저 주었다. 거울을 보면. 숨이 차고 젖은 아스피린과 가 보지 않은 옥상이 보인다 오래 마주치기엔 서로 흐르고 대신 나는 이가 투명해. 표정을 잃을 때마다 사라지는 다리 골반까지 반복되는 거울 (중략) 스위치를 켜면. 물이 우르르 밝다 오늘이 짙고 밤이 숨차고 창문을 상상한다 방의 동공이 크다 -「그 방에선 물이 자란다」에서 물속에 있는 듯 못 견디게 숨이 차고 끊어질 듯한 감각을 성동혁의 폐와 몸은 수시로 느낀다. 방이 물속처럼 느껴진다. 방의 물이 자라면서 ‘나’는 물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간다. 해일이 끓어오르고, 화병이 깨지고, 종이가 찢어지는 물질적 폭동, 감각적 소동은 성동혁의 세계에서 ‘상처 받기 쉬운 존재’, ‘고통이 느끼는 몸’이 가진 강렬한 표현력이자 표현 그 자체다. “도자기는 자주 깨지는 가구다/ 고정된 가구는 없다”(「창백한 화전민」)라는 시의 문장이 ‘인간은 자주 깨지는 존재다. 고정된 인간은 없다.’라는 진술로 우리에게 옮겨질 때, 더 날카로워지고 더 아슬아슬해지는 촉각적 경험이 의미에 앞서 온다. 우리는 모두 아플 수 있는 존재이기에 타인의 상처를 둘러싸고 공통의 감각 지평이 마련되는 것이리라. 아픔과 고통은 몸을 가진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지만 그렇기에 어떤 능력이고 어떤 가능성인 것이다. 그 시적 가능성 속에서 한 사람의 몸이 인류의 알몸으로 벗겨져 나타나는 시간이 찾아온다. 성동혁이 썼듯이,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사랑의 선언은 “내가 네게 명명한 폭력”(「6」)이었다. 사랑은 존재를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만들며, 그래서 ‘더’ 상처 받고 ‘더’ 상처 입힌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상처 받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더’ 찢어지게 하여, 존재론적인 변이와 전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동혁이 그렇게 찢어지는 사랑의 통각 속에서 사랑을 지속하며 다시 계속하고자 한다는 것, 그것은 그의 존재론적 투쟁이고 시적 모험이다. 상처를 찢는다는 것, 그것은 한계를 찢는다는 것이다. ■ 시인의 말 이곳이 나의 예배당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