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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지하의 세계
2부 진눈깨비의 연상에서 작품 해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연보 |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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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간장이 나쁘기 때문인 것 같다. 하기는 내 병에 관해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내 몸의 어디가 나쁜지 그것조차 확실히 모른다.
--- p.9 하여튼 이러한 실천적 활동가를 나는 진짜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자비로운 어머니와도 같은 대자연이 고맙게도 우리를 이 지상에 낳아놓을 때, 그렇게 되기를 바라던 바로 그런 형의 인간이다. 나는 이런 형의 인간을 보면 밸이 뒤틀릴 만큼 부러워진다. 이런 작자들은 머리가 우둔하다. 이 점에 관해선 나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정상적인 인간이란 원래가 바보여야 할는지 모른다. 당신들은 그 까닭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은 아주 훌륭한 일일 수도 있다. --- p.22 만약에 인간의 이익이란 것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보다는 불리한 것을 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만일 그렇다면, 언제나 이 만약의 경우만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모든 법칙은 산산조각 나버리지 않겠는가? 과연 이런 경우가 자주 있을까?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웃고들 있군. 웃어도 좋다. 하지만 한 가지 물음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만은 듣고 싶다. 과연 인간의 이익이란 절대적으로 정확히 계산된 것일까, 여태까지 어떤 분류에도 해당하지 않았을뿐더러 해당될 수도 없는 그런 이익이 존재할 수는 없을까? --- p.41 “뭔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서도 너는 두려움 때문에 그 마지막 한마디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너는 그걸 감히 입 밖에 낼 만한 결단력이 없는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너는 자의식을 자랑하고 있으나 실은 갈팡질팡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너의 내부에는 이성이 작용하고는 있지만 마음은 음탕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순결성이 없으면 올바른 의식도 있을 수 없다. 너는 참으로 처치 곤란한 인간이다. 너는 남에게 귀찮게 들러붙어 광대 노릇을 하려 드는 인간이다! 허위, 허위, 모든 것이 허위다!” --- p.71 주위에는 수증기가 자욱해서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털이 부스스한 얼룩말도 하얗게 뒤집어쓰고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썰매에 한 발을 올려놓는 순간, 방금 시모노프한테서 6루블을 구걸하듯 받아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형언할 수 없는 굴욕감에 휩싸여 썰매 속으로 보릿자루처럼 굴러떨어졌다. “이 굴욕을 되갚으려면 한바탕 크게 활약해야 한다!” 하고 나는 외쳤다. “하여튼 반드시 되갚고야 말겠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이라도, 아니 오늘 밤중으로라도 당장 죽어버릴 테다. 자, 가자!” 썰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선 회오리바람이 일고 있었다. --- p.143 “음……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리자, 이런 걸 생각해보라구! 인간이란 자기의 행복한 점은 선반에 올려놔 두고 불행한 점만 자꾸 손꼽는 법이야. 만약에 정말로 그걸 계산해본다면 누구나 응분의 행복은 누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겠지. 첫째 집안이 모두 화목하면 어떨까? 하느님 덕분에 훌륭한 남편을 만나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귀염을 받고 산다면 말이야! 그런 가정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이지. 이따금 불행한 일이 거기 섞여든대도 상관없잖아? 너도 결혼을 하면 알게 되겠지만, 사실 불행이 전혀 없는 가정이란 없거든.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했을 경우를 상상해보라구. 그야말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 안겨지는 거야. 신혼 초에는 부부싸움도 그 행복의 양념 구실을 하지.” --- p.165 그뿐만 아니라, 그의 월급만 하더라도 약속된 날로부터 단 2, 3일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야말로 큰일이라도 난 듯이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형편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요즘 모든 인간에게 화가 나 있었으므로 이렇다 할 목적도 없이 아폴론에게 ‘벌을 주는’ 뜻에서 2주일쯤 월급 지불을 연기하기로 결심했다. 하기는 벌써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약 2년 전부터 계획해온 일이기는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그가 나한테 그토록 잘난 체할 수 있는 권리는 없으므로 나도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월급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이것을 그에게 예고하지 않기로 했다. 저쪽에서 먼저 월급 얘기를 꺼내게 함으로써 그의 오만한 콧대를 꺾기 위해서였다. --- p.195 그러나 불쌍한 여자다! 다른 일이라면 모르되 이런 얘기를, 그것도 하필이면 이런 어색한 순간에, 더욱이 나 같은 어리석은 인간에게 꺼낸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나 자신 그녀의 졸렬함과 부질없는 고지식함이 가엾게 여겨져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무언가 추악한 것이 내 마음속에서 이런 동정심을 짓눌러버리고 말았다. --- p.207 이번엔 내가 당신들한테 진지하게 한 가지 묻고 싶다. 값싼 행복과 고결한 고민 중에 과연 어느 쪽이 좋을까? 그날 밤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마음의 아픔에 몸부림치며 이런 걸 공상했다. 이때만큼 한없는 고통과 회한에 시달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집에서 달려나갈 때 결국은 도중에 되돌아오고 말 것이라는 걸 나 자신 느끼지 않았단 말인가? --- p.220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따금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변덕을 부리는 걸까? 대체 무엇이 소원일까? 자기 자신도 모른다. 만약에 우리의 변덕스런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오히려 곤란을 느낄 것이다. 시험 삼아 우리에게도 좀 독립성을 부여하고, 우리 손에서 밧줄을 풀어 활동 범위를 넓혀줘보라. 그렇게 하면 우리는 곧…… 그전처럼 다시 감독해주십사, 하고 애원할 게 틀림없다. 아마 당신들은 나의 이 말에 화를 내어 발을 구르며 호통을 칠 것이다. “너 자신의 얘기만 해라. 너 자신의 비참한 지하생활 얘기만 하면 되지 어째서 ‘우리는 모두들’이라고 남까지 끌고 들어가느냐?” --- p.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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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가?
도스토옙스키의 인간 탐구 출발점이자 인간 의식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드러낸 문제작 “이번엔 내가 당신들한테 진지하게 한 가지 묻고 싶다. 값싼 행복과 고결한 고민 중에 과연 어느 쪽이 좋을까?”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모든 예술적 모티프를 내포한 작품!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인간 의식의 가장 어두운 곳을 탐험한 선구적인 심리 소설이다. 유례가 없는 긴 독백 형식으로 쓰인 놀랄 만한 작품으로, 작가는 ‘지하생활자’라 불리는 이름 없는 화자를 통해 이성적 합리주의와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근본적 모순을 폭로한다. 단순한 소설을 넘어 근대 인간의 자의식 탄생을 보여주는 철학적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도스토옙스키가 이후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탐구하는 인간 구원의 문제의식이 바로 이 “지하”에서 시작한다. 즉, 도스토옙스키의 대작들에서 드러나는 예술적 모티프의 밑바탕을 모두 내포한 작품이 《지하생활자의 수기》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도 이 작품을 가리켜 “도스토옙스키의 전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고 평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그저 러시아 문단의 일류 작가였다면 1864년 이 작품이 발표된 후에는 세계문학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세계적 천재의 자리에 오른다. 인간 내부의 모순적인 요소의 대립과 투쟁을 기조로 하여 커다란 사회, 윤리, 철학의 문제로 독자적인 사색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소설의 영역을 개척한다. 이성의 그림자 속, 인간의 모순을 고백하다 작품의 주인공은 사회 어디에도 적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삶에 대한 은폐된 불안과 은밀한 증오에 시달리며 철저히 고립된 곳에 도피처를 마련한다. 뿌리가 박탈된 이 ‘지하실의 남자’는 시대를 적대함으로써 자신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적의에 찬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이 초라하고 고독한 공간에서 바깥세상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비웃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한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자신을 사회의 실패자이자 반사회적 인간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세상은 비합리적 욕망과 의지로 움직인다고 주장하며 세상의 이성적 질서에 강한 불신과 반감을 드러낸다. 2부에서는 젊은 시절의 한 사건을 회상하며 수치심과 자기연민의 감정들을 풀어낸다. 그리고 매춘부 리자의 순수한 사랑 앞에서도 끝내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상대를 모욕한 뒤 스스로 혐오와 고독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의 독백은 결국 자기 파괴적 자의식의 끝없는 고리로 마무리되고 만다. 실존주의 문학의 출발점이자 심리 소설의 혁신적 전환점 이 작품은 사르트르, 카뮈, 키르케고르, 니체 등 20세기 실존주의 작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근대 문학사에서 실존주의의 문을 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하생활자’는 인간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자유가 가져오는 고립과 불안을 함께 드러낸다. 그리고 ‘합리적 인간’이라는 근대의 신화를 해체하며 인간의 본질은 비이성, 모순, 자기파괴 욕망 속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합리적 이기주의’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인간은 결코 계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비합리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고 주장한다. 또한 도스토옙스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인칭 독백과 의식의 흐름 서술을 사용하여 심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개념은 훗날 조이스, 프루스트, 카프카 등 현대 소설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심리 소설의 혁신적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진정한 나로 살고 있는가?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지극히 반어적이고 신랄한 어투로 쓰인 이 작품은 19세기 소설이지만 21세기 디지털 세대의 초상을 예언한다. 먼저 자기 인식에 대한 역설이다. 자기 분석에 집착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지하생활자’는 오늘날의 자기혐오적 인간상과 닮았다. 또한 고립과 소통 불능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하생활자’의 고백은 온라인상에서 타인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가짜 자아’ 뒤에 숨어 내면적으로 고립된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지하생활자의 고백은 소통 불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증오하고 자신을 방어한다. 그의 언어는 진심과 냉소, 자기연민과 비난이 뒤섞인 모순의 언어다. 오늘날의 우리는 수많은 소통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대화와 이해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SNS에서의 ‘좋아요’와 댓글은 공감의 표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고립을 확인하는 행위일 때가 많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이런 시대의 진정성 위기를 꿰뚫어 본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타인 앞에서 가면을 쓰는 인간의 비극을 예리하게 포착했고, “나는 왜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 비로소 내가 대다수의 진짜 러시아 사람을 처음으로 끄집어내 그 추하고 비극적인 면모를 드러낸 것이 자랑스럽다. _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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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소설이다. - 앙드레 지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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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뭔가를 배운 유일한 심리학자다. 이 책은 핏속에서부터 진실을 토해낸다. -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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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남자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이자 대변인이다. 이 작품과 인물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한다. - 장 폴 사르트르 (작가,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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