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착장이 된 방파제”(「방파제」) 끝에서 배편을 기다리는 저 승객은 누굴까. 오래전에 선표를 잃어버리고서도 다음 세상으로 환승하려는 그의 환(幻)은 벌써 몇 년째 거기 그렇게 서 있다.
박해람의 첫 시집을 읽어가노라면 건조한 문체가 전부가 아니라는 듯 새겨 읽는 독자들을 어느새 “스스로 한 생이 되어 지나가는 메마른 것들의 소란함”(「구름나무」)에 흥건하게 젖어들게 만든다. 살아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이 순정한 청춘은 환(幻)의 구름이 어서 흘러가기를 바라지만, 허무가 그렇듯이 그곳 또한 채워질 빈자리가 아니다. 그리하여 “지상의 몸을 조금씩만 헐어내어” “넓고 푸른 하늘 묘지에 옮겨” 심으려고 선회하는 ‘영혼의 새’가 내려 꽂히는 장소는 거울로 되비치는 수면이며, 천장(天葬)이 바쳐지는 허공 속이기도 하다. 유희 정신으로 화려한 젊은 시편들 속에서 박해람의 세계가 유독 우뚝해 보이는 것은 그런 원죄의 징검돌을 안은 채 징검돌을 딛고 가는 실존의 처연함 때문일 것이다._김명인(시인)
‘실종’된 말을 찾아 나선 사내가 있으니, 세상 곡절을 더듬는 그의 ‘잎’은 전방위적 교감의 도구다. 박해람에게 죽음은 어둡고 습한 땅속의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들” 속에 있고, “생(生)의 나날”은 재방송 없는 쇼핑 ‘채널 38’에도 갈마들어 있다. 그는 말과 연대하는 사물의 진면목에서 존재의 시원(始原)을 엿보는, 우리 삶에 삼투(?透)된 소외된 깊이를 발굴하는 ‘독경(獨經)’의 삼매, 그 순정한 잎의 감각을 가진 속가승(俗家僧)이다. 설사 그가 허공에 든 갱부(坑夫)일 때도 검은 석탄의 언어는 반짝이며 ‘전설’의 보자기에 떨어져 이승의 현실을 감내한다. 훗날 그 보자길 털면 눈물 얼룩이 서늘한 만다라(曼茶羅)가 웃을 것이다. 여름조차 가꾸는 잎의 구레나룻, 夏耕*에겐 그런 생기의 상운(祥運)이 가득하다. <*夏耕: 하경, 박해람 시인 아호(雅號)>_유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