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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태양은 악착같이 이글거리고
내 이름은 빨강 사막증후군 봉인된 방 인터뷰-붉은 치마의 소서노, 권련을 피우며 말하다 토르소 목련 초콜릿 얼음 바퀴 자전거 태양 중독자 당신의 정원은 환하다 긴 머리를 싹둑, 자르다 날마다 벗는다 제2부 밟으면 바스스 부서져버릴 그림자들 몽유병자 우는 여자 거울 층계 죽은 고양이를 보여줄까요? 안락사를 위한 안락의자 만월 빵이 있다 꽃잎 스물셋, 봄밤 미루나무 그루터기 새들;숨어 있기 좋은 방 지는 저녁 태양의 제국 서른 부근 내게 강 같은 평화 환하다 제3부 환하다, 내가 없는 저 곳 식탁 뱀머리카락 소녀, 메두사 악어를 그리는 동안 사거리 정육점 피안 화요일의 늦은 점심 식사 쌍두사몽( 새장이 놓인 국도 불길한 진단 비둘기 날아라, 바퀴벌레 코끼리 피아노 교습소 가족 담쟁이 그물에 갇힌 폐가 테레네, 테레네 하오 네시의 대릉원 레퀴엠 아프가니스탄 소년 일요일엔 아빠와 통화를 해요 서른둘 이상한 거울 봄날은 갔다 소금 사막 | 작품 해설 | 허윤진(문학평론가) 미친 태양들이 떠도는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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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섬기는 중이다 장엄한 빛들을 쏘아대며 돌고 도는 저것에게 환장하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는 태양에게
사육당하는 중이다 감염되는 중이다 엉겨 붙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호명한 적 없는 태양에게 부글부글 대드는 중이다 막무가내 달려드는 중이다 내 시야의 전부이지만 단 한 번도 응시한 적 없는 태양에게, 저 붉은 것에게 그러니, 이제는 말하자 왜 아직 나는 증발하지 못했는가 왜 아직 고여서 출렁이는가 갈증은 왜 내게 고통이 아닌가 데인 상처는 너무 쉽게 흉터가 된다 태양은 악착같이 이글거리고, 너는 또다시 증발되는 중이지만 --- 태양중독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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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2001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시인 이은림의 첫 시집을 펴낸다. 데뷔한지 근 10년 만에 펴내는 처녀시집인 만큼 시인이 공들인 흔적인 역력한 이번 시집은 차돌처럼 단단하면서도 만질만질한 감수성으로 빛나는 총 50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있다.
시집 출간을 서두르지 않고 오래 묵혀온 만큼 이은림, 그녀라는 시의 더께를 탈탈 털어보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먼지인가. 눈물인가. 세월임을 알겠다, 하고 굽어보는 순간 느릿느릿 뒤로 걸어가는 한 여인이 있다. 사막의 모래알갱이처럼 서걱서걱한 바람을 헤치고, 그래서 잠잠히 잠재우고, 그 뒤로 찾아오는 침묵을 산소삼아 여인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미래가 아닌 과거로 향하는 표지판을 따를 줄 안다. 여인은 “메마른 손 내밀며 잉카잉카” 울기도 하고, “조간신문 국제면, 직사각형 흑백 사진 누워 있던 소녀 미라”이기도 하고, “궐련을 피우며 말하는 붉은 치마의 소서노”이기도 하다. 반면 꿈에서 깨어나듯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표지판을 다시 따라 나오면 여인은 “읽다 만 『태양신의 후예들』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버스에” 올라 책장 속에서 사라진 고대 제국을 불러낼 줄 안다. 물론 현실에 덧입혀진 태양 제국은 “태양아파트, 태양슈퍼, 태양학원, 태양분식, 태양열쇠, 태양목욕탕, 태양비디오, 태양화원…” 등의 간판으로 애드벌룬처럼 떠 있는 태양들의 집합소이다. 태양, 태양, 태양… 여인이며 시인인 그녀는 왜 이렇게 태양에 집착하는 것일까. 시인은 태양에서 삶과 죽음의 양면을 읽는다. 삶이 뜨겁고 맹렬할수록 건조한 죽음의 얼굴은 노화가 빠르다는 걸 주름으로 확인한 탓이다. 태양은 풍요로우면서도 자애로운 얼굴빛과는 달리 삼키는 재주의 붉은 아가리를 감춘 두 얼굴의 가면, 이는 우리가 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도 살아가는 삶의 모순과도 같다.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 우리의 삶도 그러한 반복이며 이는 지금껏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거나 소멸되어온 우리 인류의 상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시인은 태양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는 터, “여기만 관통하면 여행은 끝난다.”라고 했지만 “소금 사막 한복판”을 관통하는 또 다른 화살, 태양이 있는 한 우리의 사랑이자 삶이자 노래이자 비명인 시는 늘 쏘여져 종이의 맨살을 아프게 지질 것이다. 자발적 중독, 시라는 굴레를 아름다운 문신으로 새기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