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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1987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황금 연못』 『바퀴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와 동시집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가 있다. 김달진문학상, 일연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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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19쪽 | 17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25502342

책 속으로

이를테면 열매는 불알이다 노오란 개나리 보지가 만들어낸 소담스러운 소망,
지금까지 내 생활은 꽃만 보았다

꽃이 진 자리, 가만히 들여다보니
수줍게 익어가는 개나리 아기가 누워 있다 누에똥만한 게 꼭 풋감을 빼어 닮았다

이 한 알을 빚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오래 몸 비틀었을까

배 아프다며 학교도 안 가고 누워 있는 아이의 배꼽에 손을 얹으며 세세연년 낫지 않는 부스럼 딱지 같은 마른꽃,
한 아름 받아 안는다

-「꽃이 진 자리」전문

출판사 리뷰

그럴 즈음 잡티 하나 없는 고요의 대낮이 되어서는 꽃, 새, 바위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당신은 고요히 자신의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때 귀 먹먹하고 숨 갑갑하다면 남산 일대가
바다로 바뀐 탓일 게다
-「가오리 날아오르다」 부분

이렇듯 자신 속으로 깊게 침잠하면 하늘과 바다는 땅을 중심으로 반으로 접히고 반원이 되는 한 세계로 모인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보는 나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수많은 나로 합쳐져 숨 쉬는 터, 결국 시인의 상상력은 꽃이라는 건강한 생명력에 집중된다. “아무리 몽둥이 휘두르고 끓는 물 갖다 부어도 수분하지 않고서는 꽃잎 떨구지 않는다는 사실”(「꽃」)은 그러므로 시인이 시를 열고 닫음에 있어 큰 열쇠가 되어주는 말임에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참 집요한 섹스를 가졌어요
허긴 발정기의 동물들 생식기 그게 바로 꽃이 아닌가요?
짝짓기 하는 새소리 또한
공중에 흩뿌려지는 생리혈(?? 아닌가요?
꽃과 짐승은 한 배꼽에서 자란 형제들, 돌아다니고 안 돌아다니고 간에 이미 한 배꼽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섹스가 우주의 배꼽이라는 거죠
제가 곧 꽃이라는 거죠
-「꽃」부분

“오줌 담아놓은 묵은 페트병 들여다보니 허옇게 곰팡이 꽃이 피어 있다”(「오줌꽃」)라고 한 것이나 “세상 모든 짝 없는 것들 위해 속 깊은 나무는 한 번은 귀로 한 번은 눈으로 두 번 꽃을 피우는 것이다”(「곤충의 울음이 아니라」) 라는 말 외에도 시집 곳곳을 채우는 꽃의 자리는 그 다양성으로 충만하다. 말하자면 시인에게 꽃은 아주 작고 작게 오므라뜨려서 현시하게 한 우주의 본령과 다름 아닌 것이다. 해서 시인에게는 꽃의 피어남만큼이나 꽃의 지고 남 또한 동일하게 중요한 문제다. 이 때 시인의 어조는 강한 힘으로 다져져 있다. 이를 단순히 감상적으로 기록하는 자였다면 이렇듯 수많은 시가 다양한 이야기로 쓰일 수 있었을까.

등 긁을 때 아무리 용써도 손 닿지 않는 곳이 있다 경상도 사람인 내가 읽을 수는 있어도 발음할 수 없는 시니피앙 ‘어’와 ‘으’, 달의 뒤편이다 천수관음처럼 손바닥에 눈알 붙이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내 얼굴, 달의 뒤편이다 물고문 전기고문 꼬챙이에 꿰어 돌려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 더듬이 떼고 날개 떼어 구워 먹을 수는 있어도 빼앗을 수 없는 귀뚜라미 울음 같은 것, 내 눈동자의 뒤편이다
-「달의 뒤편」전문

리기다소나무에서 “겨드랑이 사타구니 가리지 않고 돋아나는 거웃”을 본다든가(「리기다소나무」), “거봉포도를 껍질째 씨앗째 우걱우걱 씹다가 문득 순하디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거나(「순하디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비닐하우스 같은 신생아실 노란 참외가 줄지어 누워 있다”며 갓난아기를 표현한다든가(「산부인과에서」) 하는 등 사소한 발견과 발상은 활주로에서 긴 이륙 준비를 마친 시인의 노련한 솜씨 덕분에 힘차게 구름 위로 우주로 날아오른다. 시인이 단순히 견자의 입장을 취했다면 시는 벽에 걸린 그림처럼 숨을 쉬지 못했을 터, 다행히도 겪어내는 생활인으로서의 시를 고집하는 까닭에 장옥관의 시는 타고난 마라토너의 폐처럼 건강하고 활기차다. 죽음이나 삶의 비애 같은 어두운 침묵도 대낮의 밝은 소란으로 옷 바꿔 입힐 줄 아는 재주, 그것은 오로지 장옥관만의 타고남이다.

추천평

장옥관 시인의 눈에 띄고도 시가 되지 않는 사물/사건은 거의 없을 성싶다. 봄비나 어머니 같은 전통 서정시의 제재는 물론, 날계란 장수의 절규나 차에 치여 검붉게 으깨진 새, 심지어 자신의 오줌발까지, 다른 각도에서 볼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억지나 엉뚱함도 마다 않고 질기게 물고 늘어져 시로 바꿔놓는다. 시인에게는 때로 걷는 일조차 새삼스럽다. “차도로 다닐 땐 몰랐던” 샛노란 길의 등뼈가 보인다. 장애인이 발바닥으로 하나하나 핥으며 만드는 존재의 걸음걸이처럼, 시인도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디”, 그 실존의 등뼈 짊어지고 있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걷는다는 것」 「달의 뒤편」 「오줌꽃」처럼, 인식의 상투성을 깨부수고 대상의 본질을 찾아내어 깨달음에 이르는 구조는 장옥관 시의 전형이다. 존재의 비의는 자연과 우주의 심원한 밀실에 있는 게 아니라, 당신 발밑에, 당신 눈앞에, 바로 우리들 곁에 있다는 사실을 시인은 끊임없이 깨우쳐준다. 그렇다고 장옥관의 시가 교시에 치우치는 것 또한 아니다. 「가오리 날아오르다」 「가부좌 틀고 앉아 새끼를 낳다」 「홍어」 같은 일군의 작품에는 엄청난 힘으로 들끓는 상상력이 있다. 종횡무진 날아오르고 솟구치는 동사들의 역동성은 시인의 깨달음을 명상의 산사에서 신명나는 난장으로 옮겨놓는다. 이 언어의 난장판에서는, 썩어 문드러진 세월도, “도둑질로 이골난 축축한 마음”도, “그 무슨 무시무시한 생활”도, 보름달에 내어다가 구수하게 말려준다. 명상과 신명이 만나 신생의 은빛 달풀을 키우는 시, 장옥관의 시.
-김양헌(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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