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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음악은 자신이 품은 열이 말라가면 스스로 물러간다
외계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저녁의 염전 맨홀 드라이아이스 기미 파이돈 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부재중 아우라지 음악은 우리가 생을 미행하는 데 꼭 필요한 거예요 봄밤 봉인된 선험 백야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제2부 오래된 종에서만 조용히 흘러나온다는 물 오르페우스에게서 온 한 통의 엽서 구름의 조도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어느 유년에 불었던 휘파람을 지금 창가에 와서 부는 바람으로 다시 보는 일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눈 내리는 내재율 나는 문득 어머니의 없었던 연애 같은 것이 서러워지기 시작했네 먼 생 정신현상학에 부쳐 횔덜린이 헤겔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없는 내 아이가 가위로 햇빛을 자르고 있다 폭설, 민박, 편지 1 고등어 울음소리를 듣다 아버지의 귀두 설탕공장 소녀들의 문자 메시지가 출렁출렁 건너가는 밤 저녁의 요의 간을 먹는 밤 생가 우물론 제3부 죽은 새가 땅에 내려와 눕지 못하고 하늘을 맴돌고 있다 몽상가 우주로 날아가는 방 1 우주로 날아가는 방 2 우주로 날아가는 방 3 우주로 날아가는 방 4 우주로 날아가는 방 5 인형증후군 전말기 테레민을 위한 하나의 시놉시스 (실체와 속성의 관점으로) 고양이가 정육점 유리창을 핥고 있는 밤 타르코프스키를 추억함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울 밑에 선 봉선화야 재가 된 절 피아노가 된 나무 비가 오자 우리는 랭보를 안고 낡은 욕조가 있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제4부 무간 비정성시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당신의 잠든 눈을 만져본 적이 있다 | 작품 해설 | 강정(시인) 불굴을 향한 마음의 불구, 또는 영혼의 빈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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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더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을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밀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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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는 키워드는 일단 ‘바람’에 둘 필요가 있다. 불고 있으되 보이지 않으며, 소리는 나되 침묵으로 들리는 바람, 그것은 시간, 그 최초의 얼굴과 판박이처럼 닮은 것이다. 그의 시 「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를 예로 들어보면, “이를테면 빙하는 제 속에 바람을 얼리고 수세기를 도도히 흐른다/…몇백 년동안 녹지 않았던 눈들을 우리는 지금 먹고 있는 거야 얼음의 세계에 갇힌 수세기 전 바람을 먹는 것이지/…바람은 살아 있는 화석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살아남아서 떠돈다”라고 말했듯이, 그에게 바람은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며 원처럼 연결되어 있는 순환 고리인데, 그는 그 고리들의 연결로 인해 마모되었을 어떤 ‘축’을 빛나는 이로 반짝이게 만들 줄 안다. 끝나도 끝나지 않는 반복된 생의 기미, 그러니까 “바람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말라는 농담”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편 그의 시는 축축한데 건조하고, 메말랐는데 눅눅하며, 쌀쌀한데 더운 이중성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말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말을 아끼지 않는 요즘 젊은 시인들과 공통점이 있는가 하면 또 아주 다른데, 무엇보다 그가 치고 나간 그만의 스피드는 진술에서 근원한다고 볼 수 있다. 유연하면서도 단호한 그의 진술은 강압적인 가르침의 회초리가 아니므로 부러지지 않고 멋으로 휘는 갈대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노래로 불리고 들린다. 그게 귀 먹은 소리라 해도 마음의 점자로 그 음률들이 만져진다. 이때의 노래들은 숨 쉴 때마다 모래 알갱이 서걱거리는 사막이나 꽃과 잎사귀 푸른 잎들은 도무지 볼 수 없는 황갈색 갈대밭에서 들리는 듯한데 태생적으로 외로움인 사내가 부르는 노래, 멜로디는 투박해도 뼛속까지 그 쓸쓸함 애잔하다. 이렇듯 태생적인 외로움을 타고난 시인에게 태생적인 그리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저 스스로 멀어지고 싶어 안달이었던 엄마이다. 암을 앓고 있는 엄마를 간호하면서 성경의 형식을 빌려 엄마를 얘기한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를 포함해 엄마에 대한 얘기들을 주로 한 시들이 몇 편 실리지는 않았지만, 멀리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피 당김 같은 걸 경험하는, 이른바 활과 활시위 같은 모자의 관계는 결국 ‘시’라는 장르의 거대한 상징으로 읽힌다. 아들이 시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수술 전 자궁의 3분의 1만이라도 남겨달라며 의사를 붙잡고 울던 어머니를 생각하는 시인, 비근한 삶에 그래도 무겁다고 해야 할, 첫 시집을 잠든 어머니의 머리맡에 조용히 놓고 싶어하는 시인에게 그러니까 엄마는 통째로 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