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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목계리 영산호(湖) 생각 흰 연못 위의 달 사람이 보이는 천국 화개(花開)장터 꽃지붕 아래 들다 기억의 다비 두 주막(酒幕) 나의 사십구재 그 눈물은 어디로 갔을까 꽃굿에 들다 향기에도 손이 있다는 듯 구시포에서 태양을 조문하다 2 바다 속 산궁(山宮) 1 208개의 사람 뼈에도 봄눈 내리는 것 보고 싶다 아직도 우주는 텅 비어 있다! 2 봄 섬진강 고사목에 핀 유령 갈비뼈에 꽃불 날 때까지 초승달과 기러기 제2부 다산초당의 무늬를 사다 기도하는 그림을 탁본하다 목백일홍 피는 자리 단종의 검(劍) 그곳에 가서 사약(死藥)을 추사의 식목 수양 삼촌을 향해 앉다 냄새의 울음 명봉역 여름밤 홍련암(庵) 그 뒤뜰 술, 저도 취해서 이슬사다리 향나무 심장에 핀 장미 이사해도 됩니까 들키다 어라연에서 띄운 엽서 재건축 아파트-부지의 변증법적 울음 몽탄역 봄날은 간다 제3부 아카시아 향이 소금을 부를 때까지 우주 돌아가셨다 2 행자 아씨 대보름달옥섬 씨(氏) 가시연꽃 문막에서 새말까지 거꾸로의 산책 마더 테레사 버려진 악기 극락 가는 길 벤치가 된 뿌리 지혜가 잠시 죽어서도 갈 수 없는 곳? 남해금산의 지병 바다 속 산궁(山宮) 2 어떻게 품고 나왔을까 우주 돌아가셨다 1 초록 물고기 너무 늦은 질문 작품해설 유성호(문학평론가) 진성한 존재가 깃드는 언어의 거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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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산뿐이다가
겨우 몇 평의 감자밭 옥수수밭이 보이면 그 둘레의 산들이 먼저 우쭐거린다 제 몸을 가득 채운 것들을 신의 흔적이다, 라고 믿고 살지만 두 눈으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사람의 흔적인 옥수수의 흔들림 감자꽃 향기는 왕산(王山)이 본 것 중 가장 귀한 것이다 가도 가도 산뿐이다가 차 파는 오두막집이 보인다 그 주인은 이미 산(山)의 일부이면서 바람의 일부일 것이다 적막 속 어딘가에 집 한 채만 보여도 왕산(王山)은 그 기(氣)를 바꾼다 수십만 평의 산을 거뜬히 먹여 살리는 것은 한 됫박쯤 될까 말까 한 몇 사람의 숨소리일 것이다 ---「목계리」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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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게 죽은 감나무/뿌리 뽑히지 않는 것만으로도/유배의 갈피에 피고 지는/나팔꽃 박꽃 능소화 그녀들의/웃음소리만으로도/발자국 소리만으로도/배가 부르다/무슨 이름으로 살았는지 알아주는/이 없지만/아침 낮 저녁이 있기에/유령의 식사만으로도 족히/배부르다/죽은/육체에서도 잎이 흔들리는 것처럼/감나무/배고픈 자리마다 꽃을 피워내는/나팔꽃 박꽃 능소화/노지일수록 눈부신 유령들의 화력!/수혈받고 싶어 길게 목을 빼는/참 비위 좋은 사람의 피가 밴/과실인가/제 묘지로 서서도/단내에 값을 매기다니
-「고사목에 핀 유령」전문 시인은 그러니까 알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깨끗한 비워짐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미 태어나고 있는 활발한 낢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 주고도 족히 배부른 것이다. 내가 배고플수록 배부른 영혼들이 세상 곳곳을 밝히고 있으니 만물의 근원인 ‘어머니’로서의 시인은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생겨나는 존재들의 이름이 맨 땅에서 주워 올린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시인에게는 우주가 있고, 그 우주는 분명 어떤 ‘신성한 것’에서 근원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신성하다는 말이 종교적 의미로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대로 말씀 하소서, 식의 받아들임이 아닌 자기 치유 능력으로 스스로 추구하는 자기 구원의 과정을 능동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허깨비 같은 날/바다를 치는 다원(茶園)에 가면/초록 물고기 떼지어 운다 울어준다/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절정의 순간/잎잎이 제 목을 따는 40만 평의 보성다원/40만 수(繡)의 초록이 되었는지/바다를 이룬 심장이기에 죽음도 어질게 할 수 있는지/저 8*구의 무덤마저 올올이 잎을 문 듯/눈부신 다원/얼마나 많은 저를, 또 얼마나 아득하게 저를,/놓아주었기에 지느러미에 닿는 둥근 죽음의/감촉 이렇게 좋은가/잎의 바다에 누운 저 무덤들마저 여기서는/생사의 경계가 아니다 태아의 시절까지 무사히/헤엄쳐 첫 잎새 머금고 돌아올 수 있다면/내면의 반이 찻잎으로 가득 차서/절반의 몸마저 폭력을 포기할 즈음/초록 물고기가 내 잎으로 우는지/내 잎들이 초록 물고기로/우는지 모른다/모르게 된다 -「초록 물고기」전문 시인은 올해로 등단 16년째를 맞았다. 시 「이슬사다리」를 보면, ‘16년 만에야/서늘한 울음’을 터뜨린 시인이 얼마나 힘들게 입을 열어 여기까지 왔는지 짐작케 하는 구절들로 다리를 쌓고 있다. 시인은 말보다 어려운 침묵 속에서 사람이 아닌 자연에다 마음의 녹음기를 틀어놓은 채 그간 시를 써왔던 것이 분명하다. 존함이 ‘우’자 ‘주’자였던 아버지를, 못내 용서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우주 돌아가셨다」란 시를 통해 그제야 껴안을 수 있었다니, 이슬로 쌓아 올린 그 사다리, 알알이 힘없는 맑음이지만 그 겹겹의 눈물, 용서… 세상 그 어떤 철골보다도 단단함을 알겠다. 그게 바로 시라는 것도 더불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