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일가도서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사랑도 바람이
달과 전차 반쯤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벚꽃 질 때 비빔밥 부자 서신父子書信 추운 꿈 가을 햇볕 어느 날-애사哀詞 1 금산사金山寺-애사哀詞 2 단풍나무 그늘을 지나다-애사哀詞 3 제비 사랑도 바람이 자갈 파도 바람 소리 소한小寒 불혹不惑 차지 ●제2부 마음의 눈금 금단禁斷 빈방 마음의 눈금 귀신고래 강원도 할머이 어느 옛 병실에서 책과 나 복류伏流 거조암居祖庵 오백나한 여름이 온다 지난여름 철조망 인생 꿈에 귓밥을 파다 원효로 녹색의 배경 ●제3부 벌교 그 극장에서 듣던 배호 고향의 한 뼘 땅 소고小鼓 늦둥이 돌아가실 때 아버지는 옛집 웬 아버지들이 이렇게 많이 생겨 농협 슈퍼경운기스 사람의 일 론 그라운드 설씨댁薛氏宅 시집살이 노래 벌교 10 나와 아이스께끼 새엄마 서대전西大田 ●제4부 도쿄 시편 스미다가와 강변에 다시 와서 꽃을 잡고 안 울었어, 나 독해서 안 울었어…… 매우梅雨 밤꽃 냄새 풍기는 밤 늙은 야쿠자와의 밤 나들이 혼자 살아보니 신호등 옆 꽃집 전승傳承-하마마쓰초浜松町에서 고마무라高麗村까지 1 비 내리는 고마 신사神社에 와서 -하마마쓰초浜松町에서 고마무라高麗村까지 2 매 | 작품 해설 | 황광수(문학평론가) 시적 주체와 일상의 중력 |
|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흙 묻은 자갈이 낮잠 자는 옛길 새로 만든 도시의 사람 드문 골목길 강둑 기슭에는 꽃을 내려놓고 푸르게 움돋는 개나리 잎 뺏길 뻔하다 겨우 살아남은 언덕길 나는 자랑같이 자전거를 타고 머리카락 좀 흩날리면서 돌아오지 않을 강물과 인사도 나누다가 거슬러 거슬러 입에서 터지는 대로 거슬러 거슬러 가슴에 담은 정이 묵은 대나무처럼 솟구치도록. --- p.15 |
|
고운기 시인의 신작 시집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를 펴낸다. 등단 25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네 번째 시집이다. 평균을 내어보니 근 6년에 한 권 꼴이다. 그리 서둘렀다고도, 그리 게을렀다고도 할 수 없을 적당한 ‘삭힘’ 속에 시라 하니 그 맛 한번 속 깊다. 적당히 익었고 적당히 더 익어가고 있으니 지금 한창 꺼내먹기 좋은 김치라서 밥을 부르듯 시를 부르는 시집. 고운기의 이번 시집을 비유로 말함에 있어서다.
총 60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담긴 이번 시집을 보니 감히 그를 알겠다, 는 말이 불쑥 나오고야 만다. 그러니까 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오늘까지의 그를 몰랐다가도 알게 하는 눈이 이번 시집 곳곳에 불을 켜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의 이야기든 지어낸 이야기든 그건 별 상관이 없다 하겠다. 제 삶을 둘러싸고 있는 이력에 가 앉기도 하다가 스치기도 하다가 못 본 척 하기도 하는 바람, 그것이 곧 시인 고운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빗대보고 빗겨도 보는 재미로 시를 좇을 뿐. 올해 바로 내 나이에/아버지는 나를 낳았다/지금부터 나는 늦둥이를 얻은 아버지의 마음이 되어/헤아리기로 한다, 이제야 나는/아버지와 같은 연대年代이다//내 안에는 마흔여섯 살의 아버지와/한 살의 나와/그리고 마흔여섯 살의 내가/함께 살아간다 -「늦둥이」 일부 추석 상 차리고 마주 앉은 형제들/아버지는 지난 추석부터 결석/있는 듯 없는 듯 말년을 보내셨으므로/심중한 공황 따위 처음부터 염려치 않았지만/마음 한 켠 되살아오는 저 억새풀 같은/빈 들판에 흔들리는 주의 사항이/어느새 형제들 가슴 가슴에 앉았더란 말인가/추석 상에 둘러앉은/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들. -「웬 아버지들이 이렇게 많이 생겨」전문 특히나 이번 시집 속에 그는 아버지를 심심찮게 불러내고 있다. 아버지 나이 쉰 가까이에 본 늦둥이 아들이라 하니 그 거리로부터 가까웠을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하는 연유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결이었을 테고, 그로 그 고즈넉함이라 하면 ‘쓸쓸함’이 맞을 테다. 그래 그 쓸쓸. 그는 지금 가방을 들고 전차역에 서 있는 한 중년 남자를 닮았다. 그의 곁에는 참으로 큰 트렁크가 있다.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도 가벼운 인생이라는 짐이 거기 아마도 고스란히 담겨 있음이 분명한데 그는 열어볼 수 없음으로 그저 어깨가 무겁고 손목이 아프다. 아니 열어볼 수 없음이 아니라 열어보지 않음이라 하겠다. 이는 분명 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쓸쓸한 단조의 분위기로 우리를 낙엽 지는 가을로 이끌다가도 “가슴에 담은 정이 묵은 대나무처럼 솟구치도록” “자랑같이 자전거를 타고 머리카락 좀 흩날리면서” 희망찬 장조의 분위기로 우리를 푸르른 봄으로 이끌기도 하니 시소 타는 이 균형 속에 우리는 끝끝내 살아간다, 라고 말하듯 끝끝내 시다, 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말이 아니라 몸이니, 이는 지워지는 글씨가 아니라 지울 수 없는 주름이니 이에 대고 누가 감히 손가락질 할 수 있으랴. 밤 전차를 기다리는 사내가 있고, 그의 귀에 “멀리서 뚜벅뚜벅 전차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니 그는 그렇게 정직하고 정확하게 오늘도 살고 또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