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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첫눈 국도변 앵두나무 아래 중얼거림 우두커니 서 있는 겉장이 나달나달했다 서리가 내렸다 어떤 쓸쓸한 생의 얼음폭포 근처 바람의 눈을 들여다보며 씨르래기에게 말을 건네다 나뭇가지를 꼭 쥐고 초추(初秋) 희끗한 그림자가 제2부 먹고무신을 끌고 매지리 은수자(隱修者)들 까막눈 하느님 미촌 못이 얼었다 비 오시는 날 산 밑 작은 호숫가에서 입동(立冬) 몇 줌 시린 햇볕에도 국화꽃 피니 국화꽃 졌으니 납작집 타고난 사랑 제3부 검은빛 본다 마흔을 넘는다는 것은 벙거지를 쓰고 밥 대물(大物)들 명당 멩동에서 온 전화 음(陰)유월 낡은 모자 하나 봉쇄수도원 파로호 만장봉 옛집 꿈을 꾸다 제4부 새치가 많은 가을 은산철벽(銀山鐵壁) 새벽잠에서 깨어나 오줌을 누면 윤용하를 생각함 손 살구나무의 저녁은 그 집으로 까치발 세우고 봄밥, 달에게 볼이 붉은 소년이 되어 절 거룩한 허기 ∥작품해설∥ 신형철(문학평론가) 서정적 정전(渟電)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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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장이 나달나달했다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고도 괜찬타, 내사 마, 살 만큼 살았데이, 돌아앉아 안경 한 번 쓰윽 닦으시고는 디스 담배 피워 물던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신 뒤 항암 치료도 거부하고 모르핀만, 모르핀만 맞으셨는데 간성 혼수*에 빠질 때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지며 살려달라고, 서울 큰 병원에 옮겨달라고 울부짖으셨는데, 한 달 반 만에 참나무 둥치 같은 몸이 새뼈마냥 삭아 내렸는데, 어느 날 모처럼 죽 한 그릇 다 비우시더니, 남몰래 영안실에 내려갔다 오시더니 손짓으로 날 불러, 젖은 침대 시트 밑에서 더듬더듬 무얼 하나 꺼내 주시는 거였다 장례비가 든 적금통장이었다 * 간성(肝性) 혼수:간이 해독 작용을 못해서 암환자들이 겪는 발작, 혼수상태. --- p.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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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집이 있다 하겠다. 그런 손이 있다 하겠다. 그러나 이는 뭔가를 쥐려 작정한 손이 아니라 뭔가를 놓으려고 작심한 손이라 하겠다. 아귀힘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도 욕심이라 버리고 이제 남은 것은 땅에 가 닿는 것이라며 그저 손을 놓아두는 일, 그렇게 우리 생의 빈손으로 가는 과정을 묵묵히 덤덤히 그려내고 있는 시인이 있다. 여기 전동균의 손이 그러하다.
시인 전동균. 1986년 데뷔하여 첫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을 1997년에 펴냈다. 십년이 넘어 내는 첫 시집이라니. 비슷한 시기에 등단하여 지금껏 오랜 친구들로 지내고 있는 장석남, 정끝별, 이홍섭 등의 시인들이 몇 년 묵히지 않은 젊은 그대로를 시집에 털어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그렇다고 시를 놓았을 리 만무하다. 늘 그들과 어울려 함께 시를 좇고, 시의 길을 탐했으며, 시의 방황을 걱정하였으니. 다만 그는 시로 한 권의 집을 짓는 데 있어 누구보다 오래 서까래를 얹고 누구보다 오래 구들장을 놓고 누구보다 오래 집 곳곳을 두들겨야 성에 풀리는 자였으므로. 2002년 펴낸 두 번째 시집 또한 그 맥락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물이었다.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라는 제목처럼 그는 안다, 옳다, 라고 말하는 자가 아니라 앎으로, 옳음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자 오래 제 그림자를 밟았듯이. 그리고 2008년 초봄에 그의 세 번째 시집을 펴낸다. 『거룩한 허기』라는 제목 하에 총 4부로 나누어 모두 50편의 시가 담긴 이번 시집에서 그는 한껏 무르익은 중년의 현재를 고스란히 꽃 피워놓고 있다. 이른바 아름답게 지기 위해 생을 다하는 삶의 과정 속 절정이라는 꽃. 물론 이 결과물을 보기까지 근 5년이 넘는 시간을 쟁여놓아야 했다. 그 시간 속에 그는 아비를 잃었다. 근친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을 감히 무엇과 비견할 수 있을까. 시로 생을 가늠하는 것도 그 다음의 일이지 않겠는가. 또한 사십 대 중반이 되면서, 그렇게 온몸에서 삶의 열기와 열정과 맹목이 빠져나가는 당연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는 홀로 자주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 그것이 깊어져 “마흔 넘어서 눈이 새까만 계집아이 둘 옆에 누이고서도 출가의 꿈을 꾸며 몸 뒤척이는 몹쓸 날들”이 많아짐이 습관처럼 반복되면서 가끔 봉쇄수도원이나 문수사와 같은 홀로의 공간 속에 절로 발 디디는 시간 아주 잦아지기도 했다. 그 사이 누군가는 시를 물었을 것이다. 턱없이 말을 줄여가는 이유와 그 턱조차 놓아버린 듯 희미하게 뼈가 가물가물하는 시의 어떤 간극을 이런저런 이유로 채색하려는 사람들의 말과 시선들에 조금은 시달렸을 법도 하다. 대화하지 않으면 사람이란 고로 오해하는 법, 이는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일이거늘. 하지만 그는 분명 단단한 시인이었다. 그의 마지막 시 「거룩한 허기」를 보라. 세상의 끝에 닿은 순례자들이 바닷가 외진 절벽에 서서 그들이 신고 온 신발을 불태우듯, 그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청둥오리 떼 날아가는 미촌 못 방죽에서 매캐한 연기에 눈을 붉히며 내가 쓴 시를 불태우는 자가 아니었던가. 이는 바로 원초적인 시의 힘을 비유하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는 시라는 본령이 여직 처음처럼 지금껏 살아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리라. 다 버려야 사는 것이 생이듯이 다 버려야 시작되는 것이 시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