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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해! 사르해! / 황복실 글, 안은진 그림
까만 달걀 / 강민경 글, 노석미 그림 너희 나라로 가라 / 김은재 글, 이주윤 그림 내 이름은 유경민이야! / 김란주 글, 정지윤 그림 하-후데스까 / 안순혜 글, 노석미 그림 도움글_무지갯빛 세상을 꿈꾸며 / 박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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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이도 한국 사람이에요?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고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다섯 명의 혼혈인 아랑, 재현, 경주, 경민, 달이의 이야기. ‘혼혈’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는 이들은 내 나라 ‘한국’에서 당당하게 ‘한국인’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까만 달걀』 속에 그동안 가슴속에 꾹꾹 눌러 놓았던 다섯 친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색으로 물들어 있던 우리 마음을 무지갯빛으로 밝혀줄 것입니다. 첫 번째. 사르해! 사르해! -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랑이는 한국말도 잘 못할 뿐만 아니라 항상 초라해 보이는 엄마 모습이 창피하기만 합니다. “새까만 얼굴에 부스스한 곱슬머리, 커다란 눈… 엄마를 떠올리면 가슴이 자꾸 답답해져.” 두 번째. 까만 달걀 - 할아버지가 흑인 미군이었던 재현이는 아버지와 나란히 까만 피부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재현이는 까만 피부에 곱슬머리인 자기 모습이 너무 싫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자기 모습만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엄만 왜 아빠랑 결혼했어? 왜 아빠 같이 피부색이 까만 사람이랑 결혼 했냐고!” 세 번째. 너희 나라로 가라 - 경주의 엄마는 베트남인, 아빠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인 병사였습니다. 베트남에서 항상 따돌림 당하던 경주는 한국인 아빠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납니다. “나는 30년 동안 보지 못한 내 아버지 만나러 한국으로 간다. 잘 있어라. 베트남.” 네 번째 내 이름은 유경민이야! - 태국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경민이는 학교에서 늘 ‘튀기’ ‘잡종’이라고 놀림을 받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이름 갖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지만, 학교에서 난 이미 ‘튀기’로 유명해져 있어.” 다섯 번째 하-후데스까 - 달이는 일본인 아빠를 두었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쪽발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따돌림을 당합니다. “내 이름은 ‘달이’야. 그런데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서는 ‘쪽발이’라 불려. 세상 어디에도 내 이름을 그대로 불러줄 곳은 없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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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차별을 받을 이유가 되지 못해요.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니까요.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모두 달라요.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답니다. … 이제는 서로 같은 점은 어떤 게 있는지도 생각해 봐요. 다름 점은 다른 점대로 같은 점은 같은 점대로 우리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이유가 되잖아요?…”
- 본문의 김넨시님 글 중에서 아직도 ‘살색’ 크레용을 찾는 사람이 있나요? 초등학교 미술시간, 가족 모습을 그리던 재현이는 ‘살색’ 크레용을 손에 쥐고 한참동안 머뭇거립니다. 미군이었던 흑인 할아버지를 닮아 까만 피부를 가진 아버지와 자기 모습 위에 ‘살색’ 크레용을 칠하기가 망설여지기 때문이지요. 결국 재현이는 짙은 갈색에 가까운 자신의 피부색을 무시한 채 ‘살색’이라고 적혀있는 크레용을 집어 색을 칠합니다. 결과는 뻔하지요. 재현이의 그림을 본 반 친구들이 일제히 재현이에게 달라붙어 피부색이 틀렸다고 놀려대며 재현이를 몰아붙입니다. 위의 내용은 ‘까만 달걀’ 이야기의 첫 장면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세상 사람의 피부색은 검은색, 갈색, 노란색, 붉은색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살색’ 크레용이란 존재할 수 없지요. 재현이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다행이도 지난 2005년 그동안 우리가 ‘살색’이라 불렀던 크레용 이름이 ‘살구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목소리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