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David Herbert Lawrence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다른 상품
|
이 책의 판본에 대하여
이 책은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무지개』 결정판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이 결정판은 기존에 정본으로 익히 알려졌던 케임브리지 대학교 판본보다 더 원전에 가까운 것으로, 『케임브리지 판 D. H. 로렌스 작품집』 출간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검증한 텍스트를 저본으로 하였으며, 버밍엄 대학교 영문학과의 제임스 T. 볼턴 명예교수와 텍사스 대학교 영문학과의 프랜시스 워런 로버츠 교수의 감수하에 완성되었다. 현존하는 수기 원고, 타자 원고, 교정쇄와 케임브리지 초판 인쇄본의 철저한 상호 대조를 통해 로렌스 자신이 출간하려 했던 원고에 가장 가까운 텍스트를 완성해 낸 것이다. 인쇄업자, 출판업자, 편집자 들이 의도적으로 삭제하거나 식자공, 인쇄공 들이 실수로 누락했던(때로는 한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의) 부분들을 모두 복원했으며, 반대로 인쇄공들이 자의적으로 추가하였던 조판 스타일은 가능한 한 모두 삭제하였다. |
|
로렌스의 동소체(同素體)적 세계관
로렌스는 브랑윈 가 사람들이 마시 농장의 자족하는 삶으로부터 복잡하고 다양한 문명사회의 삶으로 옮겨 가면서 나타나는 삶의 변화 과정을 우주적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첫머리에 나오는 마시 농장에 대한 묘사는 인간과 자연이 똑같은 맥박으로 숨 쉬고 융합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로렌스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 속에 외떨어진 문명의 고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커다란 인간 문명의 체계인 사회라는 곳에 잘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요소와 합일하는 데서 얻어진다. 로렌스는 이러한 상태를 ‘동소체적(allotropic)’이라는 단어로 규정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다른 작가들은 흑연이나 다이아몬드를 묘사하지만 그는 이들의 공통 원소인 탄소를 묘사한다. 인간에게는 불변하는 동소체적 ‘에고(ego)’가 있고, 이 에고에 의한 행위에는 개인적 차원의 개성을 뛰어넘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들어 있다. 로렌스는 이러한 인간의 행태를 의식(ritual)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 평범한 인간사에 항구적이고 우주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 구체적인 예는 『무지개』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정되고 풍족한 농촌 생활을 즐기던 노년기의 톰 브랑윈은 읍내에 일을 보러 갔다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시골 밤길을 지나 귀가하게 된다. 물바다를 헤치며 터벅터벅 걷는 말에 몸을 맡긴 톰은 노아의 홍수를 여러 번 언급한다. 인간 사회의 필연적인 순화 과정이었던 노아의 홍수는 일개인의 차원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 질서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마시 농장 인근의 둑이 무너지면서 쏟아져 나온 급류에 휩쓸려 익사하는 톰의 죽음은 한 인간의 소멸이 아닌, 낡은 것이 새것으로 교체되는 섭리의 일환으로 읽힌다. 톰은 불가항력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퇴진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므로, 그의 익사는 대자연의 섭리에 따른 우주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상징성을 내포한 ‘비인성적’ 장면의 극치는 어슐라가 말 떼에게 쫓기는 장면과 무지개를 보는 장면이다. 어슐라는 스크레벤스키와 단교한 후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는,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를 접어둔 채 평생을 평범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스크레벤스키에게 자신의 ‘오만한’ 잘못을 용서하고 결혼해 주기를 간청하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편안해지거나 가벼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무기력한 좌절감에 빠진다. 이러한 상태에서 답답한 집 안을 뛰쳐나가 비를 맞으며 들판을 걷던 그녀는 말 떼와 맞닥뜨리게 된다. 말은 예로부터 원초적인 생명력과 본능을 상징하는 동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므로 어슐라가 말 떼에게 쫓기는 것은 그녀의 의식 밑바닥에 짓눌려 있던 본능적 자아의 폭발적인 표출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말 떼에게 짓밟히는 것을 겨우 모면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오랫동안 고열에 시달리던 중에 유산을 하게 된다. 병에서 회복한 어슐라는 자신 속에 있던 잡다한 뭇 요소들이 정화되고, 자신이 새로이 거듭났음을 느낀다. 이러한 때에 그녀는 더러운 동네 지붕 위에 비껴 뜬 무지개를 보게 된다. 이것은 자연현상을 통해 어슐라의 앞날에 대한 전망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비인성적 묘사라 하겠다. 무지개의 은유는 창세기에서 빌려 온 것으로, 하느님은 홍수로 악한 인간과 생물 들을 멸망시킨 후 다시는 인간을 그런 식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언약의 표시로서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여주었다. 노아의 홍수에 비유된 마시 농장의 홍수로 인해 할아버지 톰은 익사했지만 손녀인 어슐라는 여러 시련 끝에 무지개를 봄으로써 그녀의 앞날이 희망으로 충만할 것임을 시사한다. 로렌스에 따르면 예술 창작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신화와 의식, 혹은 성서적 요소들을 작품 속에 수없이 차용했다. 신화와 종교는 하나의 개인이 절대적인 존재나 힘과 관계를 맺어, 구체적으로는 일개의 인간으로 존재하면서도 근원적으로는 절대적인 존재의 일부가 되어 합일의 조화를 이루는 양상을 제식으로 표현하게 한다. 바로 이러한 종교적 차원에서 로렌스는 인간을 판에 박힌 사회적 존재로서보다는 사회와 인간의 테두리를 벗어나 우주적인 생명력과 합일하는, 우주의 동소체적 존재로 파악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