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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내용
조정인
창비 201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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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한 개의 붉은 사과
사과 따기
하느님의 오후
아내가 있었다
홍옥
목격
고양이는 간간 상황 너머에 있다
문신
자동기술
낙수
홍옥(紅玉)
탁발
조용한 일
고양이 물그릇에 손끝 담그기
고구마를 깎다

제2부
슬픔의 문수
날개에 바치다
어둠이 성의처럼 내려졌다
당신의 턱수염
사과의 감정
호젓한 간격
먼지야, 그때 너 왜 울었니?
장미의 내용
아무 일 없이
장미와 바람은 다 어떻게 보존되나
불꽃에 관한 한 인상
느리게 흐르는 책
성체
어머니의 나무주걱
연둣빛까지는 얼마나 먼가

제3부
안개
내 무릎 속 사과
서쪽을 불러들이다
난감
눈물의 금속성
치자꽃
식사
물푸레나무를 보러 갔다
화공
천진
고전적인 작별
수통 속의 천사
나침반
빠스깔의 파도

제4부
눈보라는 어디에 잠드나
유리
바람벽화
달과 잔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에 기대다
축제
말들의 크레바스
초신성
검객
소리를 듣는 몇가지 방식
붉어진 공기
한 장 모포
그 여자의 소금
히아씬스와 나와 네안데르탈인의 원반던지기
소년


해설 | 김수이
시인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조정인(曺晶仁)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과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를 펴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51쪽 | 182g | 125*200*20mm
ISBN13
9788936423292

출판사 리뷰

장미와 사과로 만든 광활한 우주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이래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어법으로 고유한 시세계를 펼쳐온 조정인 시인이 두번째 시집 『장미의 내용』을 출간했다. 첫시집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는 신성을 지향하는 삶과 인간의 존재론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감각적이고 예리한 언어로 형상화한 시편들이 담겨 있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상상, 현실과 비현실을 아우르고 넘나들며 풍요롭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빚어낸 정교한 묘사와 산뜻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조정인은 “자신의 관성으로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을 관통하”(「숲」)는 신성의 세계를 꿈꾼다. 그가 이 시집에서 중심시어로 삼고 있는 ‘사과’ 한 알 속에는 신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무궁무진한 비의가 담겨 있다. “고물대는 우주를 물고 있”고 “지나간/시간의 질감이 역력히 남”아 있는 이 사과에는 “알 수 없는 흔적들이 지워질 듯 어른거”(「홍옥」)린다.


지난여름 낙뢰, 그 환한 샛길로 사과밭의 환영이 지나갔다 몽상과 예감의 거친 파도가 쓸고 간 하늘 아래, 꿈처럼 재현된 과수원에서 사과를 땄다 그 붉은 필름에 바람의 소용돌이와 구름의 정처가 인화돼 있다 지상에 흘린 에덴의 풍문을 한입 베어물었다 불온을 부추기는 균이 고요하게 번식해갔다 (「사과 따기」 부분)


에덴의 기억을 환기하는 “하느님의 붉은 혁명”을 상징하면서 “태아들의 따뜻한 머리통 같은, 지구의 뇌관 같은”(「서쪽을 불러들이다」) 이 사과의 향기가 진동하는 곳은 다름아닌 지금-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다. 이 삶의 현장에서 시공을 초월하며 타자들과 접속하는 시인은 “종(種)의 경계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고양이는 간간 상황 너머에 있다」) 실감하며 우리 삶의 현장을 “영(靈)의 통일성이 점유하는 세계”로 인식한다.


꿈은 마을과 마을을 유전한다 머리 위로 원반처럼 날아다니는 초월의 힘을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 종종 샤갈의 밤하늘을 가지는 건 이상할 게 못된다 영(靈)의 통일성이 점유하는 세계가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그의 양탄자를 타고 밤하늘을 날겠는가 (「성체」 부분)


신성이 이룩한 이 세계에서 시인은 “불현듯 눈이 멀어 전신이 눈이 되는, 신성의 얼굴과 마주한 백열상태”(「숲」)를 경험한다. 그래서 그는 “영혼의 어떤 거리는 여전히 비어 있”(「날개에 바치다」)고 “신의 꿈속”(「초신성」)일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심장이 사라”진 “흰 늑대가 되어 하늘 복판을 펄럭”(「장미의 내용」)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자 한다.


나는 숨쉬는 진흙덩이, 욕망이라는 사과 한 개, 필연을 품고 날아가는 화살촉, 죽은 자들이 필자인 기나긴 연재, 태어나지 못한 메아리들의 무덤, 탄흔으로 얼룩진 성전 내벽에 걸린 인류의 파편, 한 뭉치 열패감 그리고 구토, 그 모든 무질서의 총계(「장미와 바람은 다 어떻게 보존되나」 부분)


이제 시인은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자신의 실체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신성을 지향하는 여성성을 앞세워 타자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간다(김수이 「해설」). 중세의 시민광장에서 화형당하는 마녀(「불꽃에 관한 한 인상」), “사람들 사이 개펄에 던져져 실종된 밧줄 같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장애인들(「느리게 흐르는 책」), “지구의 어느 곤고한 시절/참 비정한 세월에게서 버림받아 굶어죽은” 혼령들(「눈보라는 어디에 잠드나」), 천년 전 나라에 전란이 있던 해 바위섬에 깃들어 살던 부부(「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납치한 무장혁명군의 간부와 사랑에 빠져 정글에서 아이를 낳은 꼴롬비아의 여성 변호사(「한 장 모포」) 등, 시공간을 넘나들며 무수한 타자들의 삶을 윤회한다.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고양이는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두고 갔다/발톱이 그린 무늬의 중심부는 거칠게 패었다//말해질 수 없는 비문으로/할머니는 그 자리를 오래,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했다//하느님은 묵묵히 할머니의 남은 5년을 위해/그곳에 당신의 형상을 새겼던 거다//고독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이기에//고양이를 보내고 할머니는 하느님과 살았던 거다/독거, 아니었다(「문신」 부분)


조정인의 시는 한 편 한 편 정성이 깃들어 있다. 머리나 가슴에 기대기보다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시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진정성과 “어둠속에서 빛을 찾아내는”(조창환, 추천사) 경건한 시정신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죽음의 내용들이 발끝을 들고 장미를 건너간다 일테면, 골목에서 사라진/영아(?兒)와 참새와 비둘기와 새끼고양이와 늙은 개……/가볍고 아름다운 그것들은 홀연히 몸을 띄워 대기권 바깥/제 투명한 묘지를 찾아들었다 좀 있으면 흙의 일이 궁금해진/첫눈이 오고 아이들은 눈이다! 외칠 테지/사슴이다, 하는 것처럼//(…)//돌연 천공을 찢고 내려와, 폭설에 푹푹 발이 빠지며 내 하얀 늑대가 다가오던/기척, 귓가에 붐비던 숨, 더운 혀에 관한 기억들이여 안녕/시절이여 안녕(「장미의 내용」 부분)

추천평

그에 의해 호명되는 신생, 사물들의 탄생은 ‘비의적 밀도성’이라는 통과의례를 어김없이 치르고 있다. 그의 중심시어라고 할 수 있는 ‘사과’ 한 알 속에 그가 경작하는 상상력의 과원은 그래서 늘 예사롭지 않은 발견을 탄력적으로 밀어낸다. 그는 “몽상과 예감의 거친 파도가 쓸고 간 하늘 아래, 꿈처럼 재현된 과수원에서 사과를” 수확한다. 그 사과들은 “지상에 흘린 에덴의 풍문”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걸 “한입 베어물”고 “불온을 부추기는 균이 고요하게 번식해”가는 시의 발효, 탐미의 황홀을 즐긴다. 이러한 그의 두드러지는 시어의 운용구조는 명사의 동사화에 있다. 다시 말해 사물들의 운동 이미지, 그 형성을 통해 창의적 생산과정을 신선하게 열어 보이고 있다. 흘러가야 할 것은 ‘빗소리’이지만 그의 시에서는 그걸 듣는 ‘귀’가 흘러가게 하는 원초적 기능의 전치를 통해서 ‘빗소리’의 정체, 그 존재성을 초월적으로 확장한다.
정진규(시인)
조정인의 상상력은 풍요롭고 자유롭다. 사물과 사건의 미묘한 틈새에 자리잡은 존재의 울림과 흔들림을 포착하여 형상화하는 언어적 감각은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을 준다. 조금 어둡지만 아주 캄캄하지는 않고 조금 환하지만 아주 가볍지는 않은 어스름한 경계선쯤에 위치한 그녀의 언어들은 칼날처럼 아름답고 성의(聖衣)처럼 깊은 맛이 있다. 조정인 시의 탁월성은, 그러나 이러한 언어적 감각이 빚어내는 기법상의 매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독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이라든지 “창조와 피조를 동시에 견디는 중”이라는 시구에서 보이는 두터운 사색의 흔적은 그녀의 시에 견고한 중량감을 보태어준다. 그것은 성실하고 치열하게 어둠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정신의 궤적이기도 하다.
조창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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