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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의 역사
얼음은 결정(結晶)이다 얼음이 어는 순간 얼음의 운명은 결정決定된다 피로에 지친 외치*가 피 묻은 옆구리를 대고 눈 위에 누웠을 때 눈 위에 켜켜이 눈이 쌓이고 오천 년간 계속 내려 쌓이고 눈과 피가 얼음의 결정을 만들기로 결정하였을 때 얼음송곳이 물레 바늘처럼 눈꺼풀을 찔렀을 때 외치는 긴긴 얼음의 잠에 빠진 것이다 그 얼음 왕국, 삼만 년 전의 공기방울을 가두고 천 년 전의 꽃가루를 거두고 삼백 년 전의 먼지를 잡아들여 얼음의 역사를 쓰는 저토록 많은 이야기를 시리게 끌고 다니는 얼음의 자연사박물관에 통째로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마터호른을 오르던 스무 살의 두 청년** 절정의 순간에 얼음의 결정에 갇혀 얼음의 잠에 깊이깊이 빠져든 유리를 깨고 얼음에 입맞춤하고 싶은 하얀 꽃의 얼굴이 마침내 발,견,된,다 * 1991년 알프스산의 빙하에서 발견된 기원전 3,300년 전 신석기시대의 미라. 일명 아이스맨. ** 2015년 스위스의 마터호른 빙하에서 70년 전 실종된 일본인 등반가 마사유키 고바야시(21세)와 미치코 오이카와(22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죽은 새를 죽은 새를 가방에 넣고 다닌 적이 있지 죽은 제비를, 미끈한 검은 날개와 고요히 감긴 눈꺼풀을 궁륭 같은 늑골을 왜 그랬는지 몰라 버려두기엔 너무 작고 가벼웠을까 애처로운 울음을 환청처럼 듣고 햇살 잘 드는 한 뼘 땅을 찾으려 했을 거야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던져버렸지 해를 향해 날아가던 새는 한 줌 재가 되어 부서졌네 매일매일 만나는 수많은, 수많은 날개 찢긴 잠자리 다리가 모두 꺾인 풍뎅이 반쯤 파 먹힌 곤줄박이 개구리와 쥐와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꼬리를 잃어버린 얼룩고양이와 꽃잎처럼 스스로를 장사지내지 못하는 것들 도르르 제 몸을 말지 못하는 것들엔 개미와 구더기가 들끓지 부지런히 자르고 저미는 동안 움찔움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하지 바람까지 싹싹 혀를 핥는 만족한 식사가 끝나면 진초록 갑옷의 날개 한 장 남았네 나는 그걸 갖고 싶었어 이빨을 박을 수 없는 강철로 된 무지개를 눈을 뜬다는 것 눈을 뜬다는 것, 빛이 동공을 지나 망막에 상이 맺힐 때 세상의 풍경이 쏟아져 들어올 때 보도블록과 가로수 밑을 지나는 한 마리 개와 개의 목줄을 쥔 살찐 손이 보일 때 별과 우물을 보는 다른 눈은 고요히 감기는지 햇살이 장엄하게 사라진 뒤 달은 동굴을 빠져나와 하늘의 궁륭을 가로지르고 부엉이는 날개를 펼쳐 하늘의 눈을 가리는지 꽃이 제 몸을 오므릴 때 열매의 세계가 둥글게 열리고 그러니 저 연못 위의 수련은 물의 경계에 누워 있는 잠의 꽃인 수련이 필 때 꽃의 눈뜸은 꽃의 잠듦 혹은 가역적으로 겨울 연못 위에 갈색의 몸을 눕히고 사실 수련은 수런거리며 눈 뜨고 있는지 하양과 노랑과 분홍의 수련이 필 때 아니 잠들 때 하양과 노랑과 분홍의 꿈을 꾸는지 내가 가로등에 걸린 현수막과 전단지와 승용차 윈도브러시에 끼워진 대출 상담 명함을 바라볼 때 발을 구르며 막차를 기다릴 때 수련이,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반짝 눈을 뜨며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