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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시인의 일


너머의 너머

시인의 일
민물가마우지 낚시법
안개를 발굴하다
추분
피자 가게 앞에서
끓다
행운의 편지
휴지의 쓰임새
발목에 복숭아나무가
우물

2부 텃밭에 봉숭아가 용용 죽겠지

꽃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저녁의 발자국
화분
측백나무에 별이
모과별
꽃잎이 둥글게 둥글게


오월은 너무 빠르게
텃밭에 봉숭아가 용용 죽겠지
으아리라는 꽃
작약과 함께
개옻나무 저 혼자 붉어

3부 호수 건너기

대나무꽃
새벽이 맨발로
해바라기
호수 건너기
매달린 것들·1
매달린 것들·2
사구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바람이
이끼
신데렐라야, 네 유리 구두는
거리 두기
스물다섯, 이태원
시월의 꽃

4부 나비, 나비, 나비

오렌지들
학교를 떠나는 구름 씨의 몽상
조감도
잠매
바다로 가는 길
오후에 우리는
너무 이르게 매화를
노을 아래서
씀바귀를 꺾다
나비, 나비, 나비
귀의 시간
별이 하나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는
구름 씨의 여행

해설

가령 절반만 남은 이태백, 지렁이, 개옻나무
- 양순모(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대전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울산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수료하였다. 2004년 「개처럼 걷는다」외 2편으로 [시사사]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 부문에 등단하였으며, 2017년 [시에]로 수필 부문에 등단하였다. 시집 『돌 속의 물고기』, 『얼음의 역사』, 산문집 『골목은 둥글다』, 그리고 함께 쓴 동인시집 『어디서 왔는지 모를』 등이 있다. [화요문학]고 [봄시]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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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64g | 125*210*8mm
ISBN13
9791193412589

책 속으로

식당 창가에서 장대한 노을을 보았을 때
저기 노을 좀 봐, 시인 친구한테 말했더니
밥 먹을 때 일 얘기 좀 하지 말라고 하더라나
이런 농담 너무 좋다고 다른 친구는 깔깔 웃었다나
---「시인의 일」중에서

선물 상자 안엔 다시 상자가, 그 상자 안에 다른 상자가, 그 상자 안에 또 다른 상자가 있다
그럴 수 있다
열두 번째 상자를 꺼내다 잠이 든다
화분 안에 아프리카봉선화가 심겨 있다
아프리카봉선화꽃은 열두 가지 색이다
열두 가지 색 안에는 열두 개의 심장이 있다
백합나무 가지에 작은 새가, 작은 새 안에 연둣빛 벌레가, 벌레 안에 가느다란 노래가 숨어 있는 것처럼
---「화분」중에서

그래, 지렁이가 있었지
지렁이가 꽃잎에 둘러싸여 있었지
갑자기 많은 꽃이 피고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고
고장 난 계기판처럼 모두 빠르게 달리고

그리고 지렁이가 이 미친 속도를 끝장내겠다는 듯
문득 멈추어서
몸을 쭈욱 펴며 최대한 늘이며
오월의 저 속도를 막아서는 바리케이드를
발끝에 툭, 던져 놓는 것이다
---「오월은 너무 빠르게」중에서

그날 어디선가 폭죽이 터지고, 오월의 햇살이 내리쬐고, 새끼 뱀이 눈을 뜨고
그늘이 제 몸을 끌고 나무 뒤에 숨고, 지렁이는 왜 아스팔트 위로 기어 와 죽을까
으아리는 왜 메아리가 아닐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고 우리 귀는 한 뼘쯤 자라고
어떤 절정에선 죽음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으아리라는 꽃」중에서

술 취한 학생이 공원 호수에서 익사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학생은
호수로 들어갔지만 호수를 건너지 못했다
호수를 가장 빨리 건너는 방법은
호수의 이 끝과 저 끝을 구부려 맞닿게 하는 것이다
우주에서 이런 구부러짐을 웜홀이라 한다
우주를 여행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태백은 강에 비친 달을 보고 물에 뛰어든 게 아니다
마침 물 위에 열린 웜홀을 발견한 것이다
---「호수 건너기」중에서

당신은 어느 사막을 걸어온 낙타인가요
눈썹에 어느 별을 걸어 두었나요
어느 시절의 기억을 모래에 묻고 자꾸 빈 두레박질을 하나요

저이는 어느 날 밥그릇과 숟가락을 정히 씻고, 시든 입을 헹구고
유목의 길을 떠났네
발바닥에 새겨진 별자리를 따라 다시 낙타가 되어 갔네
---「사구」중에서

우리가 새를 사랑하는 것은
한 마을을 사랑한다는 것

부리처럼 솟은 산이 하나 있고
산 옆으로 굽은 강이 흐르는 어느 마을을 사랑한다는 것
---「조감도」중에서

곡예사처럼 공중에 매달린 별
저것은 별의 승천인가 몰락인가
못 위에 넥타이를 걸듯 목을 걸었던 사람은
중력에 사로잡힌 것인가 초월한 것인가
크로커스 위에 삼월의 눈이 내릴 때
눈송이마다 은방울꽃 같은 설강화가 필 때
말해 보겠네, 겨울과 봄을 통 안에 넣고 마구 굴려
눈을 감고 집어내는 어떤 손에 대하여
별의 입자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의 머리칼에 대하여

---「별이 하나-니체의 집에서」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산 가까이 살다 보니
새소리에 잠이 깬다.
그 사이로
뒤채고 펄럭이고 솟구치고 터져 나오는
온갖 소리, 소리, 소리.

두근거리는 시작을
받아쓰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다.

2024년 가을
송은숙

추천평

송은숙의 시집에는 유독 바람이 많이 등장한다. 바람의 소리를 듣고 바람이 나무에 닿는 느낌을 오래 기억한다. 바람의 촉감과 예기치 못하는 운명과 무형의 가치를 시인의 감수성으로 이리저리 풀어놓는다. 그렇다고 송은숙이 바람의 시인은 아니다.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너머를 사유하는 시인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보아야 보일 듯 말 듯한 아지랑이 같”(「너머의 너머」)은 바람의 너머를 골몰한다. 너머를 생각하다 보면 “기억의 들 숨과 날 숨”(「끓다」)을 예리하게 감각하기도 한다. 시인은 노을의 무게를 재는 사람이다. 무게를 재는 것뿐 아니라 “캐내고 맛보고 냄새 맡고 감정하고 평하고 달아 보고 쥐어짜고 꿰매고 다림질하고 전송하”(「시인의 일」)는 시인이다. 그러다 보면 안개를 발굴하기도 하며 작약, 으아리, 봉숭아, 호랑가시나무, 수양벚나무, 모과, 측백나무, 개옻나무, 찔레, 해바라기, 매화 등을 만나 영혼을 담금질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송은숙의 매력은 직관과 지혜를 담는 심장에 있다. 열두 개의 심장을 얻은 시인은 열두 가지 색을 안고 모든 사태를 바라본다. “무의 실핏줄”(「무」)을 발견하는 것이나 황톳길에서 밟은 병뚜껑이나 사금파리에서 “날카로운 적의”(「새벽이 맨발로」)를 읽는 것은 시인의 직관이기에 가능하다. 직관의 힘으로 “멍”이 상처가 아니라 “전사의 후예”(「멍」)라고 명명하며 “틈을 빠져나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틈」)거나 “우리가 새를 사랑하는 것은 한 마을을 사랑한다는”(「조감도」) 지혜임을 깨친다. 이제 낙엽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면 열두 심장을 가진 시인이 어떤 아름다운 언어를 타전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이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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