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9년 08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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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2쪽 | 153*224*20mm |
ISBN13 | 9788930103503 |
ISBN10 | 8930103502 |
발행일 | 2009년 08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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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2쪽 | 153*224*20mm |
ISBN13 | 9788930103503 |
ISBN10 | 8930103502 |
작가가 어느 폐쇄된 오래된 감옥에서 편지 꾸러미를 발견한다. <A가 X에게>는 죽어서도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중종신형을 받은, 정치범으로 보이는 남자 사비에르에게 그의 약혼녀 아이다가 보낸 편지들이다. 중간 중간 남자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글들이 덧붙여지곤 하지만 한 사람만의 편지라는 형식로만 이루어진 글들은 내가 아끼는 오래된 책 <그리핀 & 사비네>에서 느꼈던 깊은 사색과 환상적인 요소를 떠올리게 했다.
아이다의 서신속의 이야기들은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상황들, 그녀가 만난 사람들, 그녀가 사는 곳의 풍경들이 마치 영화처럼 머리속에 펼쳐지고 때때로 그녀의 이야기속에 사비에르가 동참되어지곤 한다. 여자는 약사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명확한 생각을 갖는 모습을 보이며 그녀는 사람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품는다. 책표지의 여자는 몹시 전투적이지만 책 속의 아이다의 시선을 따라 보여지는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과 여러 사건들은 그녀의 부드럽지만 강인함에 기대어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게 한다. 또한 아이다만의 따듯한 유머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커트 보네거트나 나쓰메 소세키에게서 보듯이 두려움에 대한 유연함은 유머로 완성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46쪽
밤에는 시간도 훨씬 친절해 지는데, 아무것도 기다릴 게 없고, 밤에는 아무것도 구식으로 보이지 않아.
105쪽
자발적인 용기는 젊은 시절에 시작되죠. 나이가 들며 생기는 건 인내예요. 세월이 갖다 주는 잔인한 선물이죠.
115쪽
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중략)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상실감을 토로할때 그런건가보다 싶지만 마음으로 수긍이 되지 않는 말중에 하나가 '원래 처음에는 없던 것이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뿐이다' 라는 말이다. 주로 불교쪽에 계신 분들이 하시는 말씀인데 언뜻 인생무상을 떠올리며 수긍하는 듯 해도 잊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는 말보다 공감가지 않는 말이다.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진다해도 내가 그것을 만들어가기까지의 노력은 없던 것이 아니니 말이다.
116쪽
거의 모든 약속이 깨졌다. 가난한 자들이 역경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동적이거나 체념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역경 뒤에서 가만히 주시하고, 거기서 이름 없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받아들임이다. 깨진 것은 특정한 어떤 약속이 아니라, (거의)모든 약속이기 때문이다. 꺽쇠묶음 같은 무엇, 그냥 두면 무자비하게 흘러갈 시간에 괄호를 두르는 일. 그런 괄호들의 총합은 아마 무한함일 것이다.
139쪽
지옥은 돈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고안한 것이고, 그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우선 그들의 처지가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는 협박을 반복함으로써, 그리고 두번째로는 약속을 통해, 말을 잘 듣고 충직하게 지내면, 다른 삶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그들도 지금 이 세상에서 부를 통해 살 수 있는 것과 그 이상의 것까지 즐길 수 있다는 약속을 통해서 말이다.
지옥을 들먹이지 않았다면, 교회의 과시적인 부와 무자비한 권력에 대한 의문이 더욱 공개적으로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복음의 가르침에 명백히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은 축적된 부를 일종의 성스러운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오늘날의 시련은 너무나 깊다. 이젠 사후의 지옥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제외된 사람들의 지옥이 지금 이곳에 세워지고 있으며, 똑같은 경고를 전한다. 오직 부만이 살아 있는 것을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는 경고를.
206쪽
피로는 가장 강한 의지까지 갉아먹고, 가장 뜨겁던 희망도 붉은 먼지로 바꿔 버리고,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에너지를 해쳐요. 피로는 끊임없는 유예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하죠. 마침내 가장 빠른 대답을 택하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피로는 조용함을 좋아하는데, 그것이 죽음이 가지는 조용함이라는 사실에도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돌봐 주다 보면, 어느 시점엔가 호숫가에 도착해 있는 걸 발견하게 되고, 그때는 그 고요함이 주는 즐거움으로 서로를 마주보게 돼요.
이델미스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이사 후의 혼란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효능에 따라 약을 정리해 보자는 내 생각이 그녀에게 일종의 도전과 자극이 되었던 것 같아요. 신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그녀는 노련했기 때문에 가게 전체가 항해를 안내할 지도라도 되는 듯 큰 걸음으로 둘러보았죠  ̄마치 함교 위를 돌아다니는 선장 같았어요. 선장 모자라도 하나 사 줄까 봐요! 그녀는 오 초만에 류머티즘 대륙에서 호르몬의 강이 흐르는 내분비계 대륙으로 이동했어요. 그 사이에 있는 어떤 작은 섬에도 금방 다가갈 수 있죠. 예를 들면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 같은 섬 말이에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녀에게 한 척의 배를 선물한 셈이 되었네요.
본문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독자들에게 이것이 실화인가에 연연해 하지 말라는 작가의 말로 시작한다. 세계 각국의 여러 명칭들이 등장함으로써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의 배경이 되는 곳은 분명치 않다. 멕시코 일수도 스페인일수도 남미일수도 팔레스타인의 어느 곳일 수도 있다. 역자의 후기에는 책에 대한 많은 설명을 담고 있는데 책 속의 사비에르의 모델로 삼은 듯한 작가 존 버거가 이 책을 헌정한 가산 카나파니에 대한 설명을 통해 좀 더 책속의 인물들과 배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반세계화와 반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딱딱할텐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는 부드럽지만 긍정적인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커다란 신념이 강인한 사랑과 함께 할때 사람에 대한 희망도 깊어지는 것이리라 생각하게 된다.
미 구아포, 미 소플레테, 하비비, 나의 카나딤, 나의 하야티.
‘미 구아포’는 ‘나의 멋쟁이’, ‘미 소플레테’는 ‘나의 횃불’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하비비’는 ‘내 사랑’이라는 뜻의 아랍어래요. ‘카나딤’은 아마도 ‘날개’, ‘하야티’는 ‘생명력’을 뜻하는 터키어에서 따온 애칭일 거라네요. 이 모든 사랑스러운 단어 앞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편지를 쓴다는 행위가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기록되는 걸 두려워했거든요. 영원의 약속이 깨지는 것까진 괜찮아요. 그러나 나 자신이 여러 번 번복되다 보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지죠. 선물할 때 나는 내 이름으로 서명하지 않고 ‘2020년 2월 1일에 당신을 사랑하는 친구로부터’와 같이 적곤 했어요.
어쩌면 영원의 약속을 두려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실은 이름 없는 이 문장만으로 나를 떠올려주길, 나의 생김새와 나의 표정과 나의 분위기가 당신을 휘감길, 그렇게 영원이 존재하길 바라는 욕심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죠. 나는 언제나 욕심이 많았으니까요.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존 버거의 『A가 X에게』라는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연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소개하기도 했죠. 옛 교도소 73호 감방의 수납 칸에서 발견된 세 개의 편지 뭉치를 엮은 책이에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이중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비에르가 수감되어 있던 곳이죠. 사비에르는 그의 연인 아이다가 보낸 파란색 편지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정리해두었고, 편지 뒷장에는 메모를 하기도 했어요. 작가는 아이다가 보내지 않은 편지까지도 비밀의 경로로 구해서 적당한 위치에 끼워두었다고 해요. 그런 편지 말미엔 괄호 안에 ‘보내지 않은 편지’라고 적혀 있어요.
편지 뭉치를 묶은 천 조각에 적힌 글들이 재미있어요. 첫 번째 편지뭉치엔 ‘우주는 기계가 아니라 뇌와 비슷하다. 삶은 지금 말해지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다. 최초의 현실은 이야기다. 이것이 내가 기술자로 지내며 알게 된 것이다.’ 두 번째 편지뭉치엔 ‘우리는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다ㅡ우리는 그것을 지켜 준다.’ 마지막 세 번째 편지 뭉치엔 ‘집 땅'이라는 두 단어가 적혀 있었대요.
처음엔 이 소설을 구상하는 작가를 상상했어요. 편지를 쓰고, 편지뭉치를 흩트리고, 요리조리 배열하는 작가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덧 영국의 중년 남성 작가는 사라지고 아이다란 가명을 지닌 단호한 눈빛의 여인이 앉아 있어요. 오감의 감각을 그림 그리듯 표현하는 여성이죠. 어느새 나는 감옥에 갇힌 사람이 되고, 편지를 쓴 여인을 사랑하게 돼요. 멋진 경험이었어요. 나는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줄 알았거든요.
코기토, 에르고 숨.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라틴어에요. 데카르트가 한 말이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사비에르의 메모 중 이스라엘의 항공보안전문회사 SDS에서 제조한 ‘코기토 1002’가 언급돼요. 몇 가지 질문에 따라 손의 생체반응이 기록되고, 이 사람이 주의인물인지 아닌지 밝히는 기계죠. 이름이 ‘코기토’라는 게 아이러니컬할 뿐, 사비에르는 교도관이 좋아할 기구라고 냉소적으로 말해요. 나는 이와중에 내가 코기토라는 단어를 알고 있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자랑스러웠어요. 넌지시 건넨 비밀스러운 눈짓을 알아챈 기분이랄까요. 당신이 알려준 단어잖아요.
나는 성당이나 절이나 교회나 성스러운 장소에 갈 때면 두 손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시늉을 내며 눈을 감곤 했죠.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와요.
ㅡ부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건 누구일까요? 나는 알고 있어요.
함께 바다에 가고 싶어요.
당신의 Y.
(보내지 않은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