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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무도 아무렇지 않았다 13 사과 15 봄 18 그러고 나서의 모두 20 나는 자꾸만 틀린다 23 모든 실수들의 집합 28 오늘의 세계 30 가위 ― 타미플루 32 곡진의 착 34 매일의 라테 36 1인 테이블 38 사탕과 욕조의 상관관계에 관한 감각 연구 40 가위 ― 다음은 42 2부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47 수박의 계절이 돌아왔다 48 최초의 고백 50 오데트/오딜 56 누가 있어만 싶은 묘지墓地엔 아무도 없고 58 꿀꿀이바구미 60 사랑의 역사 62 보편적 사람들의 모임 63 영화를 보던 그날로부터 멀리 있다 64 안경을 쓰면 눈이 작아진대요 66 난독 68 반 69 생강을 어떻게 먹니 72 파란불이 켜지고 소년이 길을 건넙니다 73 3부 인/천 79 리스본 84 차경借景 86借景 부고 88 열아홉 장비 90 구름판에서 넘어졌어요 92 빗금 94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95 장비라는 이름의 슈나우저 96 사랑이 뚝, 98 데미안 100 강화 102 하인네 106 4부 말보로 빈 갑을 물고 있던 말로는 111 꽃과 꽃게 114 일방통행 116 몫 118 보행 신호 시 유턴 120 가위 ― 누군가의 주머니 속에서 122 안전한 거리 124 회전문 126 가족 구성원에 관한 오류 보고 128 행방불명 130 지척 132 그곳에 없다 134 그래도 되겠다 136 장비야, 어야 가자 138 해설 141 내일이라는 미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 /전영규(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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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하얗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사거리 모퉁이에서 왼쪽으로 돈다 나뭇잎 바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뒤를 쫓는 그림자가 흩어진다 버스가 여전히 오지 않는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사람이 멈추고 사람이 건넌다 손에 든 빵에서 양배추 조각이 떨어진다 --- 「아무도 아무렇지 않았다」 중에서 헤어진 연인은 고양이를 닮았다 기울어도 여밀 수 없는 불과한 마음 때로는 분명하게 멀어지는 다정처럼 흐릿한 창 너머로 나뉜 세계 그대로 다행인 먼 곳 --- 「오늘의 세계」 중에서 욕조가 없는 집에 살아 모텔 욕조에 누워 있곤 해요 사탕을 입에 물고 잠이 들 때도 있어요 나는 금세 녹아들어요 물컹한 다리는 내 것이 아니라는데 욕조 가득한 나에게로 사탕 막대가 둥실둥실 흘러와요 앙상한 몸은 돌이킬 수 없는 맛이라고 들었죠 내 몫은 한낮의 여기라고 다를 게 없어요 --- 「사탕과 욕조의 상관관계에 관한 감각 연구」 중에서 손을 마주 잡던 날들 사이로 골목은 자꾸 가라앉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생각이란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픈 골방이어서 유폐된 시간 속 뒤를 돌아보던 네가 마땅한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문을 나서는 것처럼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던 모든 요일이 그렇게 있다 ---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중에서 가끔 목구멍 안쪽에서 반복되곤 해 내가 엊그제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면 그건 생강의 꿈을 꾸었던 것인지도 몰라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면 그만인데 생각의 한쪽을 떼어 낸 알싸한 맛이라서 한번 물기라도 하면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곤 하지 입가에 묻은 악몽처럼 씻어 낼 수 조차 없고 오래전 술에 취한 아버지가 넘어져 뒤틀린 다리를 보는 것 같아 바람이 불면 구멍이 뚫린 기분이라며 술에 술을 붓고 면역력이 높아져 몸을 보호해 준다는 애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 레몬을 띄워 한 잔 건네준 종착지가 생강 더미 같아서 양손을 마주잡아 손금을 덜어 내고 덜어 내지 --- 「생강을 어떻게 먹니」 중에서 페달을 돌리면 시간이 자꾸만 거꾸로 갔다 담 너머로 둘둘 말린 신문을 던지며 골목을 누비던 나는 멀찌감치 떠돌고 한 달 이만오천 원을 받으면 오천 원은 적립금이라고 돌려줬다 점장은 받은 돈을 자기 뒷주머니에 넣고 도둑질은 나쁜 일이라 배웠다 나도 따라 뒷주머니에 수금한 돈을 넣었다 영수증은 찢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점장이 오학년 일반 교실 뒷문을 열었고 나는 삼층에서 뛰어내렸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데 소 판 돈은 아버지가 훔쳐 달아났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버지를 내다 버렸다는데 아버지가 나보다 나이가 들어 돌아왔을 땐 아버지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사우디나 이라크에 간 친구들 얘기나 하며 괌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줬다 --- 「강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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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 없는, 정신의 야무짐으로, 서정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순정한 낭만주의자 시집 『내일은 어디쯤인가요』는 그의 두 번째 시집이다. 그는 첫 시집 『이곳의 안녕』에서 과거로부터 구성된 감각의 세계를 펼치며 일상과 생활에 대한 ‘난감’을 그려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사적 영역에서 조금 벗어나 현재의 우리 삶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을 갖추고 있다. 시가 일인칭 문학으로서 개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개인이 존재하는 조건인 사회에 대해 감각하며 현재성을 담아내려는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있다. 그는 시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고민하며 실천하고자 하는 순정한 낭만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인이 비록 시인만의 고유한 서정을 담아내지만 이것이 독자에게 전달되고 향유될 때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고 믿는다. 이미지를 통한 감정의 동요를 항상 염두에 둔다. 당연한 것들을 믿지 않으며, 세상을 향한 절망과 무력감, 불편하고 불쾌한 고통의 감정을 인식하며 세상의 모순을 들여다보는 일은 시인의 몫이며 사명이기도 하다. 그 불편함과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견디는 태도는 등단 때 평가받은 ‘정신의 야무짐’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이 예술로 형상화되면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 여기에 “있다”는 존재론적 성찰은 우리 삶의 위안이며,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병국 시인은 ‘가난’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한 세대 위의 함민복 시인과 같은 절대적 가난에 새로운 감각으로 그려내는데, 만연한 가난에 대한 서정은 삶을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된다. 이를테면 시 ?강화?에서, 신문배달을 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과 아버지의 기억이 맞물리면서 시인은 자신의 시적 기원이며 자산인 유년의 가난을 다시 더듬는다. 지명이면서 단단하다는 동음이의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를 단단하게 곧추세워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는 자기 주변의 아픔을 포착하고 섬세하게 자신의 차원으로 끌어들여 공감을 만들어낸다. 이병국 시인은 “1년에 한 번 아버지 기일에 강화를 찾으면 산이 사라지고 대형 교회가 들어섰다. 그런 변화를 보니 나라는 존재의 기원이 없어지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단단해져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란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확실한 내일의 삶을 예비하면서, 삶을 삶다운 것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용기, 힘과 같은 것을 반작용으로 갖는다. 삶에의 의지와 의욕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덜 잃어 보려 하는 것은, 조금 더 삶이고자 하는 노력과 다르지 않고, 그의 시를 읽는 우리에게 “내일은 어디쯤인가요”라고 던지는 질문과도 다르지 않다. 시집 『내일은 어디쯤인가요』 의 제목은 첫 시집 『이곳의 안녕』과 이어져 있다. 당시 시인은 "안녕이라는 말은 작별 인사를 뜻하기도 하지만, 한문으로 '安(편안할 안)'을 써서 위안을 의미하기도 해요. 시집의 안녕은 위안을 말하는 것으로, 과거가 어떻든 지금 현재 당신이 있는 곳이 당신에게 위안을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제목으로 했어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에서도 여전히 나와 당신의 ‘내일’을 걱정하며, 당신의 내일에 위안을 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스며있다. 시인의 말 내일은 괜찮을 거예요, 잠시라도 편히 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