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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눈표범의 꼬리 13/붓다 14/대지진 15/시바를 위하여 16/돌탑 17/카트만두 18/그냥, 꽃 19/바람의 말 20/석가모니 22/분홍 소금 23/춤추는 시바 24/박타푸르의 성인식 25/데비폭포 26/히말의 소리 27/굴참나무 28/산을 추행하다 29/새벽에 쓰는 시 30 제2부 안나푸르나 33/방랑자 34/꽃의 골짜기 35/고피들의 달빛 애인 36/비슬산(琵瑟山) 38/바우어 새 39/둔황, 사암 기둥 40/남자와 마늘 41/찔레꽃 42/무스탕 왕국 44/소금 짓는 여인 45/겨울 호수 46/자연을 들이다 47/아버지의 청국장 48/어미 낙타에게 50/어미 51/늙지 않는 꽃 52 제3부 삐딱하게 보기 55/연둣빛 56/길들인다는 것 57/시골여인숙 58/열다섯 살 60/이월 61/꽃잠 62/작은 평화 63/아빠 64/참꽃 65/늙은호박고지 황석어젓갈 무침 66/시시(詩詩)하다 68/봄이 69/어린 왕자 70/아파트 설산 71/여자의 동굴 72 제4부 아버지의 쑥 75/딸에게 76/남방큰돌고래 77/섬말나리 78/꽃 도둑 79/까꿍 80/메밀잠자리 81/잠의 능선 82/비밀 83/혼불 84/거꾸로 85/십이폭포 86/영동할매 87/입술 88/봄이의 노래 89/시(詩)를 파는 여자 90 제5부 거리 두기 93/교황의 광장 94/슬픈 역설 95/잉카의 얼음 소녀 96/봉화산 마애불 98/독도 99/요강 100/싸리나무골 102/쓸쓸히 103/강강술래 104/최 보따리 106/문바윗골 107/당신의 혁명 108 해설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109 |
安賢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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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에 한번 휘둘리면 벼랑으로 날아가 납작하게 부서져버릴 테지만
그래도 휘감기고 싶다, 내동댕이쳐지고 싶다, 굵은 꼬리에 매달려 설산을 오르내리고 싶다 송곳니보다 발톱보다 매혹적인 꼬리에 나를 걸고 싶다 --- 「눈표범의 꼬리」 중에서 금강석처럼 빛나는 얼굴, 사랑의 화살은 단번에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네 내 순수는 그대와 하나 되길 망설이지 않았네 군중 앞이거나 저잣거리를 떠돌 때도 오직 그대뿐 방랑벽은 돌올한 지성 앞에 무릎 꿇고 말았네 내면 깊은 호수에서 환희를 길어 올리는 안나푸르나여 그대를 만나지 못한 나날 들개처럼 떠돌았네, 바람둥이였네 --- 「안나푸르나」 중에서 지구가 23.5도 기울어 바람이 불고 사계절이 있듯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네 발꿈치 보인다 바로 보았을 때 둥그렇던 얼굴이 올려다보면 파르르한 코스모스 고요한 뜨락에 엎드린 바람자락 보이고 참나무 껍질 속 사슴벌레가 보인다 삐딱하게 보기, 기울어져 보는 것은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라 전혀 다른 내일을 생성하는 것 황무지에 배롱나무 한 그루 키우는 것 --- 「삐딱하게 보기」 중에서 참꽃 어우러진 앞산을 바라보면 쪽지 편지에 사춘기 실어 보내던 열다섯 살 소년이 보입니다 소쩍새는 밤새 피 토하듯 울어대고 달이 흐르는지 구름이 흐르는지 하늘을 둥둥 떠다녔습니다 열다섯 살, 마술에 걸린 분홍의 계절 내 생이 아름다운 것은 아직 그 소년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열다섯 살」 중에서 달빛에도 목이 마르는 윤사월 봉분 마른 흙을 뚫고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애기 발가락, 피우지 못한 이데올로기가 짱짱한 쑥으로 돋아났네요 진달래 핏빛 물든 산자락에서 반듯한 이마로 잠든 아비여 이 쑥국을 끓여 먹으면 당신의 신념을 만질 수 있을까요 어린 아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꽃자루 한 마디 들을 수 있을까요 --- 「아버지의 쑥」 중에서 해적선에서 뛰어내린 아리온을 업어서 살려냈듯이 놀이도 끼니도 포기한 채 새끼의 주검을 띄워 올리지만 자꾸만자꾸만 미끄러지는 아가야 포기할 수 없는 어미의 노랫소리 들리지 않느냐 돌기를 빛나게 하는 음유시인의 노래, 리라를 타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느냐 숨을 쉬어라 내 아가야 --- 「남방큰돌고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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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시를 ‘새로운 언어’라고 정의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의 언어는 일상어의 상투적 의미에 오염된다. 이 상투적 의미는 우리의 생각까지 상투적으로 만들어 결국 인간과 세상의 본모습을 은폐하고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세뇌한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 이 고정관념을 깨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언어가 가진 낡은 옷들을 벗겨내고 항상 언어에 새로운 의미나 정서의 옷을 입히려고 한다. 시가 새로운 언어인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로서의 시를 추구하다 보면 시인들은 종종 갈 길을 잃는다. 무엇을 위한 새로움인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언어의 낯선 숲속을 헤매기 때문이다. 난삽한 산문으로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리듬을 파괴한다고 해서 또는 구어와 일상어를 과감하게 허용해서 기존의 시적 표현에 균열을 일으킨다고 해서 이런 새로움이 모두 시적 성취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새로움을 넘어 시는 그 어떤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란 언어의 새로움을 통해 도달해야 할 그 어떤 무엇을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안현심 시인의 시들이 바로 이러한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 구도자와 같다고는 하지만 시인마다 추구하고자 하는 구도의 길이 같을 수는 없다. 어떤 시인들은 시를 통해 세상의 변혁을 꿈꾸기도 하고, 어떤 시인들은 세상을 넘어선 경지에 있는 초월적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시를 쓰기도 하고, 또 다른 시인들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정신적 깊이에 다가가기 위해 시적 언어를 찾아 나선다. 그렇다면 안현심 시인에게 시를 쓰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 시가 그것을 말해 준다. 너는 지상을 유영하던 혹등고래 바람이 지날 때마다 휘파람을 잘도 불더니 등허리 달라붙은 따개비처럼 우툴두툴한 이끼를 덮어쓰고 있구나 운장산 골짜기 오래된 바다에서 늙은 휘파람 소리 아장아장 헤엄쳐온다 ― 「굴참나무」 전문 이 시에서의 “너”는 시인으로서의 ‘나’이기도 하다. “너”라고 불리는 “굴참나무”는 시인으로서의 시인 자신에 대한 비유라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안현심 시인은 굴참나무를 “혹등고래”로 비유하고 있다. 지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굴참나무를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혹등고래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에 이 시의 핵심이 놓여 있다. 비록 굴참나무가 지상에 묶여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는 “유영하던”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따개비처럼/우툴두툴한 이끼를 덮어쓰고” 오랜 시간을 버티며 늙어가는 것도 사실은 이 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것을 “늙은/휘파람 소리/아장아장 헤엄쳐온다”고 아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꿈이 있는 한 늙어도 늙지 않고 자신의 전언을 담은 목소리를 내며 어린 아기처럼 다시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굴참나무에 자신의 정서를 이입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존재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휘파람 소리 같은 노래인지 신음인지 탄성인지 분간할 수 언어를 통해 언어 이전의 언어 아니면 언어를 넘어선 언어를 통해 세상의 비의를 전하는 자가 바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이 이런 고행을 하면서까지 세상의 진실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시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도솔산 봉우리에서 건너다보면 나뭇가지 틈새로 아른거리는 콘크리트 설산산맥 만년설 뒤집어쓴 빙벽 동굴에는 영하 50도에도 얼지 않는 사람들이 사네 눈뜨면 사냥터로 우르르 나갔다가 해질녘이면 동굴로 기어 들어와 속옷만 입은 채 노래하고 술 마시고 책을 읽는다는 21세기의 눈사람 붕락하지 않는 빙벽, 그들의 동굴은 튼튼하네 ― 「아파트 설산」 전문 시인이 보기에 21세기를 살며 온갖 신문명을 구가하면서 사는 우리 모두는 갇혀 살고 있다. 그것도 “빙벽 동굴”에서 철저히 서로 차단되어 살고 있다. 현대 사회의 도시화된 삶은 많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여 살게 만든다.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살고 오늘 아침도 수많은 익명의 타인들과 함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몸을 비비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과 아무런 관련 없이 나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스스로 동굴에 숨어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행복과 안위를 지키고 있다. 점점 나는 고립되어 내가 아는 세상은 나만의 세상으로 한정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원자화되고 거대한 사회조직의 부속물로 소외된다. 시인이 현대인의 삶을 “아파트 설산”이라고 비유한 것에는 이 모든 함의가 다 들어 있다. 시는 바로 이 공고한 고립 “붕락하지 않는 빙벽”에 흠집을 내는 행위이다. 빙벽 넘어 새로운 세상이 있고 우리를 가두는 억압 너머 자유가 있다고 알려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때로 비명을 지르고 때로 휘파람을 불어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인의 역할이고 존재 이유이다. ―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듯이 마음이 너무 맑으면 사람이 꾀지 않는단다. 더러는 걸레를 빤 물같이 혼탁해져도 괜찮단다. 그러나 오늘, 다시 생각합니다. 가려 먹고 가늘게, 오래 가겠습니다. 2022년 4월 안현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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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현심 시인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차례 그 모습이 변하게 마련인데, 안현심 시인은 인생으로서나 시인으로서나 좋은 쪽으로 여러 차례 변화한 사람입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요 괄목상대(刮目相對)입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 환골탈태와 괄목상대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생도 무르익어 자기의 인생을 안쓰럽게, 너그럽게 바라볼 때가 되었나 봅니다. 어제뿐만 아니라 오늘도 그렇고 내일에 대해서도 고즈넉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마련되어 있음을 봅니다. 근동(近洞)에 이만한 시적 성취를 이룬 시인이 드뭅니다. 과거의 시편들도 그렇지만 이번의 시편들은 돌멩이 하나하나를 고르고 골라서 정성껏 쌓아 올린 돌탑과 같은 시집입니다. 스스로 아끼고 자신을 사랑해서 생의 끝 날까지 좋은 시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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