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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칼을 삼킨 달
까마귀가 사라진 풍경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구름 스캔들 동광육거리 비문 소금 창고 거리 루틴 비명이 없는 세계 블라디보스토크 시 미조 부산역 등골을 뽑아 들고 2부 심장에 걸린 방아쇠 매심사 거울 다락 콜라 귤 서늘 소리의 장례 문 회복실 우리들의 실패 사선 압화 Get Out 무거웠고 가벼웠던 3부 그때의 우리가 내려와 녹는 밤 장마가 오면 공기를 던지며 놀아요 에이프런 점묘 바람 부는 날 자전거 타기 흑백 화분 젠가 게임 배경 없음 물고기 노새 문장 겁에 질린 손가락이 장갑 안에서 떨고 개발자들 소멸하는 사과 무렵 꽃을 사랑한 물고기 구멍에 관한 각주 흰 밥알같이 4부 입속에 가둔 나비들이 날개를 펼쳐 놓는 다이버 불연기연 소름 파양 번지점프 빵 그림자 수선실 악수 손톱 방백 자세 현기증 아보카도 물고기가 오는 아침 해설 불연기연, 남겨진 말들의 시간 -최진석(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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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명가이며 조련사다 오늘까지 일만육천삼백스물여섯 개의 감정을 발명했고 이것으로 매일 나를 길들여 왔다 어둠을 응시하는 백만 개의 눈동자였고 목에 걸린 방울이었으며 잠 속까지 좇아오는 그림자였다 나는 불이었고 연기였고 한숨이었는데 이것들을 소화하며 마침내 괴물에 이르렀다 이 흉측하고 아름다운 것을 내가 낳았구나
---「구름 스캔들」중에서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돌아가 나눠 먹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보였으므로 우리가 일행인가 생각했다 나는 그들을 모르면서 사람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 이 거리는 애도의 거리다 돌아왔다는 사람의 소문은 없다 옆을 비워 두고 걷는 습관이 있다 내 몸속으로 들어와 사라진 사람의 좋았던 한때를 폐업한 가게의 간판처럼 걸어 두고 있다 ---「거리」중에서 우수리스크 호텔방에서 가위에 눌렸다 거울이 없는 좁은 객실엔 낡은 싱글 침대가 둘, 침대에 눕자 튀어나온 스프링들이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가 되어 필사적으로 파닥였다 안내인은 배수 시설이 없는 욕실 바닥에 관하여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나는 밤새 물속에 잠긴 신발이 되어 언제 이 물을 다 걸어서 어항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나 생각했다 아이러니야 부동항 앞에서 얼어붙다니 저 바다는 배수 시설이 없어 채우기만 하고 쏟아낼 데가 없는 삶 같은 거 ---「블라디보스토크」중에서 사지를 갈라 공중에 흩어 놓는 구름 같은 묘혈을 파고 누운 겨울나무 뿌리 같은 혀 위에 한 채의 사람을 짓고 꽃 따라 바람 따라 다녀가는 이것을 전생에 두고 온 나머지 심장이라 한다 ---「매심사」중에서 앓는 식물들의 잎을 모두 떼어냈다 혹한이었다 함부로 눈길 주지 않았다 관계없다는 말은 물길을 끊었다는 말 이제 우리, 관계 않는 사람들 찻잔을 두드리는 스푼의 기억에서 침잠의 방에 떨어진 짐승의 기억에서 걸어 나옵니다 눈을 뜹니다 눈떠서 다행인 나와 눈떠짐이 두려운 당신은 동명이다 ---「Get Out」중에서 색색이 꽃피운 첨단의 감정들이 표정 없는 화분에 담겨 어디론가 옮겨 갑니다 나는 이 꽃의 정처를 알 길 없습니다 꽃은 환호하며 절규하며 나아갑니다 꽃의 발걸음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있었는데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흑백 화분」중에서 앞마당에 와 있는 지는 꽃들의 구근과 지문이 허술한 돌멩이들의 미래를 열어 보는 것은 허물어지며 선명한 시간의 축적 앞에서 분주히 겸손하며 옛 마을과 옛사람들을 조용히 질투도 해 보는 일 어느 집 흙담 아래 문득 멈춰 서서 백일을 앓다가 진다는 꽃의 씨앗을 받으며 다시 달의 이면을 궁리하는 것은 발목 없는 새를 불러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일 손바닥을 접는 일 속이 빈 채로 타서 사라졌다는 이 마을 당목의 전설로 약을 지어 가만히 머리맡에 놓아둔다 ---「불연기연不然其然」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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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만들어낸 불편한 문장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내가 나를 오해하며 살아내듯 당신도 당신을 오해하며 견디길 바랍니다. 내 안에 내가 없듯 당신 안에 당신이 없다는 걸 한 번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2022년 여름 신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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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기연不然其然」, 시집을 읽다가 오래 이 시에 머물렀다. 수운水雲의 최후 일갈인 이 문장을 도올??은 그러하지 않는 것도 결국 그렇고 그러한 것이라고 명쾌하고도 새롭게 정의한 바 있다. 그러하지 않음과 그렇고 그러함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고 그러함의 이치에 비춰 보면 그러하지 않음의 세계는 없다는 말이다. 신준영의 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그렇지 않은(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과 정면 승부를 벌여서 결국 그렇고 그러한(이해할 수 있는) 이치에 이르는 지난한 사투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각인된 과거를 형벌로 받은 자와/소멸될 미래를 선물로 받은 자 사이”(「서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준영의 시에는 이와 같은 대구, 대비, 반의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낮과 밤, 겉과 속, 퇴화와 진화, 환호와 절규, 침몰과 인양, 앎과 모름, 이해와 오해, 슬픔과 기쁨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러한 두 이질적인 요소들을 앞세워 갈등하고 관계하며 결국 서로 다르지 않다는 긍정적인 삶의 궁극으로 이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첫 시집이다. -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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