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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이었고 한숨이었다
신준영
걷는사람 202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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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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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칼을 삼킨 달

까마귀가 사라진 풍경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구름 스캔들
동광육거리
비문
소금 창고
거리
루틴
비명이 없는 세계
블라디보스토크

미조
부산역
등골을 뽑아 들고

2부 심장에 걸린 방아쇠

매심사
거울
다락
콜라

서늘
소리의 장례

회복실
우리들의 실패
사선
압화
Get Out
무거웠고 가벼웠던

3부 그때의 우리가 내려와 녹는 밤

장마가 오면 공기를 던지며 놀아요
에이프런
점묘
바람 부는 날 자전거 타기
흑백 화분
젠가 게임
배경 없음
물고기 노새 문장
겁에 질린 손가락이 장갑 안에서 떨고
개발자들
소멸하는 사과
무렵
꽃을 사랑한 물고기
구멍에 관한 각주
흰 밥알같이

4부 입속에 가둔 나비들이 날개를 펼쳐 놓는

다이버
불연기연
소름
파양
번지점프

그림자 수선실
악수
손톱
방백
자세
현기증
아보카도
물고기가 오는 아침

해설

불연기연, 남겨진 말들의 시간
-최진석(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대구에서 태어나 202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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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170g | 125*200*20mm
ISBN13
9791192333212

책 속으로

나는 발명가이며 조련사다 오늘까지 일만육천삼백스물여섯 개의 감정을 발명했고 이것으로 매일 나를 길들여 왔다 어둠을 응시하는 백만 개의 눈동자였고 목에 걸린 방울이었으며 잠 속까지 좇아오는 그림자였다 나는 불이었고 연기였고 한숨이었는데 이것들을 소화하며 마침내 괴물에 이르렀다 이 흉측하고 아름다운 것을 내가 낳았구나
---「구름 스캔들」중에서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돌아가 나눠 먹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보였으므로

우리가 일행인가 생각했다

나는 그들을 모르면서

사람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

이 거리는 애도의 거리다

돌아왔다는 사람의 소문은 없다

옆을 비워 두고 걷는 습관이 있다

내 몸속으로 들어와 사라진 사람의 좋았던 한때를

폐업한 가게의 간판처럼 걸어 두고 있다
---「거리」중에서

우수리스크 호텔방에서 가위에 눌렸다 거울이 없는 좁은 객실엔 낡은 싱글 침대가 둘, 침대에 눕자 튀어나온 스프링들이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가 되어 필사적으로 파닥였다 안내인은 배수 시설이 없는 욕실 바닥에 관하여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나는 밤새 물속에 잠긴 신발이 되어 언제 이 물을 다 걸어서 어항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나 생각했다

아이러니야 부동항 앞에서 얼어붙다니
저 바다는 배수 시설이 없어
채우기만 하고 쏟아낼 데가 없는
삶 같은 거
---「블라디보스토크」중에서

사지를 갈라 공중에 흩어 놓는 구름 같은

묘혈을 파고 누운 겨울나무 뿌리 같은

혀 위에 한 채의 사람을 짓고

꽃 따라 바람 따라 다녀가는 이것을

전생에 두고 온 나머지 심장이라 한다
---「매심사」중에서

앓는 식물들의 잎을 모두 떼어냈다
혹한이었다
함부로 눈길 주지 않았다

관계없다는 말은 물길을 끊었다는 말
이제 우리, 관계 않는 사람들

찻잔을 두드리는 스푼의 기억에서
침잠의 방에 떨어진 짐승의 기억에서

걸어 나옵니다 눈을 뜹니다

눈떠서 다행인 나와
눈떠짐이 두려운 당신은 동명이다
---「Get Out」중에서

색색이 꽃피운 첨단의 감정들이
표정 없는 화분에 담겨 어디론가 옮겨 갑니다
나는 이 꽃의 정처를 알 길 없습니다

꽃은 환호하며 절규하며 나아갑니다
꽃의 발걸음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있었는데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흑백 화분」중에서

앞마당에 와 있는 지는 꽃들의 구근과
지문이 허술한 돌멩이들의 미래를 열어 보는 것은

허물어지며 선명한 시간의 축적 앞에서 분주히 겸손하며
옛 마을과 옛사람들을 조용히 질투도 해 보는 일

어느 집 흙담 아래 문득 멈춰 서서
백일을 앓다가 진다는 꽃의 씨앗을 받으며
다시 달의 이면을 궁리하는 것은

발목 없는 새를 불러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일
손바닥을 접는 일

속이 빈 채로 타서 사라졌다는
이 마을 당목의 전설로 약을 지어 가만히
머리맡에 놓아둔다

---「불연기연不然其然」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만들어낸 불편한 문장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내가 나를 오해하며 살아내듯 당신도 당신을 오해하며 견디길 바랍니다.

내 안에 내가 없듯 당신 안에 당신이 없다는 걸 한 번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2022년 여름
신준영

추천평

「불연기연不然其然」, 시집을 읽다가 오래 이 시에 머물렀다. 수운水雲의 최후 일갈인 이 문장을 도올??은 그러하지 않는 것도 결국 그렇고 그러한 것이라고 명쾌하고도 새롭게 정의한 바 있다. 그러하지 않음과 그렇고 그러함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고 그러함의 이치에 비춰 보면 그러하지 않음의 세계는 없다는 말이다. 신준영의 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그렇지 않은(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과 정면 승부를 벌여서 결국 그렇고 그러한(이해할 수 있는) 이치에 이르는 지난한 사투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각인된 과거를 형벌로 받은 자와/소멸될 미래를 선물로 받은 자 사이”(「서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준영의 시에는 이와 같은 대구, 대비, 반의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낮과 밤, 겉과 속, 퇴화와 진화, 환호와 절규, 침몰과 인양, 앎과 모름, 이해와 오해, 슬픔과 기쁨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러한 두 이질적인 요소들을 앞세워 갈등하고 관계하며 결국 서로 다르지 않다는 긍정적인 삶의 궁극으로 이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첫 시집이다. -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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