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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제1부 유교적 공동체는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지향하는가 1장 공公으로 사私를 물리치다: 유교적 공동체, 힐링과 참여로 공공을 구현하다_한형조 잊힌 유교를 다시 떠올리는 까닭 | 현대사가 겪은 전체주의의 상처 | “사私는 공公의 독소다” | 사私를 치료하여 공公에 이른다 | 유교적 공공의 가능성 제2부 유교 국가 조선에서 유교 공동체론의 실험 2장 이 하나의 실험: 조광조파의 성리학적 공동체 구현 노력 _김용환 조광조라는 사람과 조선 | 도학 경영을 통한 인륜 공동체 구현 | 향촌자치를 통한 자율 공동체 구현 | 만약 그것을 폐하지 않고 지속했더라도 3장 조선 문치주의의 트로이카: 유교 국가의 제도 _오항녕 먼 듯 가까운 제도 | 문치주의의 트로이카 | 성경을 공부하다 | 바른말이 직무다 | 나라는 망해도 역사는 남는다 | 경험을 돌아보는 이유 4장 양반들의 생존 전략에서 얻은 통찰: 조선의 유교적 향촌 공동체 _정진영 조선, 사족의 탄생 | 유향소, 사족의 향촌 지배 조직 | 향약, 조선적 유교 공동체 | 공론公論, 공동체적 운영 원리 | 종법의 수용, 갈등과 분열의 심화 | 새로운 질서, 새로운 공동체 5장 한국 근대 유교의 일독법: 세속화와 공동체 _노관범 네이션과 시대를 떠나 유교 읽기 | 사회의 세속화와 유교적 가치의 재점화 | 세속화의 재개념화와 사회 공동체의 결집 | 사회 공동체의 위기와 유교적 가치의 재발견 제3부 유교적 공동체론의 현대적 재해석 6장 온 나라에 굶주린 자 없도록 하라: 유교 양민론과 구민 정책 _김상준 유교의 창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 구민 사상의 전거,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양민 | 중국 상평창, 2000년의 역사 | 민간 중심의 사창 | 조선 후기 환곡과 사창의 빛과 그늘 | 유교 구민 사상과 실천이 오늘날 주는 함의 7장 인지상정의 윤리학: 유교적 규범론의 재음미 _박원재 ‘준칙’과 ‘사람’ | ‘자연의 빛’과 그림자 | ‘인지상정’의 윤리학 | 감성윤리학의 실천 형식 | 다시 출발점에서 8장 인문과 예의 균형점에 서다: 유교의 교훈과 회복적 정의 _한도현 도덕의 실패, 법의 실패 | 회복적 정의, 잃어버린 지혜의 부활 | 응보에 맞선 회복적 정의 | 오래된 미래, 유교적 갈등 해결의 전통 | 마을의 인문학 동아리로 ‘회복적 정의’를 꽃피우기 9장 여성주체성과 유교 전통: 페미니즘의 재탄생 _이은선 유교 전통과 페미니즘의 만남 | 왜 유교가 전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가 | 유교적 ‘성인지도聖人之道’의 종교성과 여성주체성 | 구체적으로 유교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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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공동체론을 관통하는 기본 원리를 돋을새김하다
조선을 매개로 역사화되었던 유교적 공동체론의 얼개를 되짚다 유교적 공동체론의 현대적 접목 가능성을 탐색하다 시간의 풍화를 견뎌낸 ‘사事/물物’의 핵심이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일은 언제나 생각만큼 쉽지 않다. 거기에는 그 시간의 마디들을 채워왔던 삶의 흔적들이 겹겹이 덧칠되어 있는 까닭이다. 2500여 년 동안 동아시아인들의 일상과 생각을 지배해왔던 유교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유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유교’ ‘언제의 유교’ ‘어디서의 유교’라는 복합적인 층위를 먼저 교통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의 풍화를 견뎌온 모든 것이 또한 그렇듯이, 이 말이 ‘유교’가 아무런 정체성 없이 그저 시대에 이리저리 휩쓸려온 산물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덧칠들은 어디까지나 변주變奏들일 뿐이다. 따라서 유교의 문제의식이나 지향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변주들을 넘어 바탕색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조선 500년’은 유교의 그런 공동체적 구상이 가장 핍진逼眞하게 실험된 공간이다. 기본적으로 왕정王政이되 학자-관료군의 견제와 비판을 통해 통치권의 자의적인 행사가 제한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공론公論이 무엇보다 중시되었으며, 복지良民와 계몽敎化이 병행되는 향촌 공동체의 꿈이 그곳에서 그려졌었다. 이 책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500년 공동체, 조선’을 추동시켜온 실질적인 힘인 유교적 구상에 대한 회고와 전망이다.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기획되고 집필되었다. 각 분야에서 유교를 연구해온 중진 연구자들이 수차례에 걸쳐 글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수정하여 조선사회를 움직인 유교의 공동체 원리를 철학적·역사적·정치사회학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 1부는 유교적 공동체론을 관통하는 기본 원리에 대한 돋을새김이고, 2부는 ‘조선’을 매개로 역사화되었던 유교적 공동체론의 얼개에 대한 리뷰이며, 마지막 3부는 유교적 공동체론의 현대적 접목 가능성에 대한 타진이다. 성글지만 유교적 공동체론의 원리와 구현 그리고 재해석을 망라하고 있는 셈이다. 1장에서 한형조 교수는 유교적 ‘공동체’의 발상 위에서 전개된, 독특한 공공성론의 윤곽을 그려보고 있다. 유교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그것만큼 유교를 왜곡하는 일도 없다. 이를테면 ‘멸사봉공滅私奉公’은 일본식 조어다. 이 표어는 국가와 개인 간의 이원적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교는 기성 권력이 아니라 ‘백성’의 대중을 생각하며, 집단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코즈모폴리턴으로 사고한다. 그것을 공公이라고 불렀다. 유교에서 공公이란 ‘건전한 감응感應의 상호 작용과 그 네트워크’를 말한다! 사私란 그것을 방해하는 제반 독소를 총칭한다! 유교는 ‘사적 관심과 마비’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모든 사람이 이 혼란과 무질서에 책임을 안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군주나 사대부 등 권력층의 자의가 가장 큰 장애다. 유교의 프로젝트는 교육을 통해 이들을 치유하고, 비판을 통해 이들을 견제함으로써 권력의 사를 제거하고, 공공의 자연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2장에서 김용환 교수는 성리학적 공동체 구성을 위한 조선 유학의 실험은 조광조에게서 인륜 공동체 구현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도학경영에 의한 근본·의리·지치의 정치적 양상을 나타냈다. 성리학은 유기체적 세계관을 표방하며, ‘이일분수理一分殊’에 입각하여 인륜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도학으로 경영하고, 종법제宗法制와 종계宗契를 통해 인륜 공동체를 형성했다. 한 가족의 세대가 누적될수록 가족의 확대된 형태로서의 종족宗族의 범위가 확장된다. 이때 ‘효순孝順’과 ‘친애親愛’가 인륜 공동체의 덕목으로 자리매김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도학 경영의 인륜 공동체는 혈연을 매개로 인륜질서가 자리 잡았고, 도학의 매개로 지치정치를 이루었다. 3장에서 오항녕 교수는 유가儒家들이 설계하고 운영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제도적 특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오 교수는 이를 둘로 나눈다. 국가라는 제도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기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 조직이 그 하나라면, 어떠한 국가나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보여주는 조직이 다른 하나다. 전자를 행정형 조직이라 한다면, 후자는 이념형 조직이라 부를 수 있다. 동아시아 중에서도 한국과 중국은 유가 정치 이념이 지속되어, 표면상으로는 이념형 조직이 행정형 조직과 마찬가지로 장기지속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다룰 경연이나 사관제도가 그러하며, 언관제도도 그러하다. 필자는 이 언관제도가 조선사회를 지탱한 핵심 이념의 제도적 표출이라는 점, 유교가 그러한 제도를 받쳐준 이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4장에서 정진영 교수는 조선 양반들의 생존전략에서 얻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16세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군현 또는 촌락 단위에서 사족의 유교적 공동체는 그들의 다양한 향촌 지배 조직이나 규약, 곧 유향소 또는 향약과 동계·동약 등을 통해 구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사족 중심의 신분제적 질서와 경제적 이해를 최대한 보장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18세기를 거치면서 사족의 유교적 공동체 조직은 크게 위축되거나 점차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공동체가 사족의 지배 조직과 그들의 다양한 규약을 통해 성취된다는 점에서, 그것의 존립 여부는 향촌사회 사족의 위상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말하자면, 유교적 이념에 충실한 사족이 향촌사회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유교적 공동체의 존립이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18, 19세기 조선의 향촌사회는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향촌 조직을 운영해오던 기존 양반층의 분화 및 새로운 세력의 등장과 성장, 하층민의 광범한 저항 등이 착종되면서 변화의 양상은 다양한 형태로 펼쳐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향촌 지배 조직은 공동체적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수령의 지방 지배를 위한 조직으로 재편되거나 심지어는 농민 수탈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5장에서 노관범 교수는 근대시기로 넘어와서 유교를 살피고 있다. 이른바 ‘한국 근대 유교의 일독법: 세속화와 공동체’다. 그 핵심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세속화와 공동체라는 문제는 19, 20세기 조선/대한사회를 거시적으로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다. 네이션의 형성이라는 시각 또는 근대의 형성이라는 시각은 조선/대한사회의 역사적 존재들을 형성 ‘이전’과 형성 ‘이후’로 갈라서 각각 서로 다른 가치나 서열을 부여하는 도식적인 이해에 매몰되기 쉽다. 세속화와 공동체라는 문제는 네이션과 근대를 주변화시키고, 네이션과 근대에 의해 이분법적으로 분열된 역사적 존재들을 통합적으로 재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세도정치기를 거쳐 고종과 순종의 치세에 더욱 가속화된 사회의 세속화는 유교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로 하여금 모두 세속화와 치열하게 대결하고 스스로의 공동체적 가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교적 가치를 재점화하고 재맥락화하게 했다. 유교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는 네이션 ‘이전’과 ‘이후’, 또는 근대 ‘이전’과 ‘이후’의 선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조선/대한의 세속화와 대결하는 동시적인 공동체였다. 이 점은 중요하다. 네이션 서사와 근대 서사에 의해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기 쉬운 조선/대한사회의 역사적 존재들을 ‘동시’로 보는 통합적인 안목을 갖추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19, 20세기 조선/대한사회의 총체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부로 넘어가면 유교적 공동체론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6장에서 김상준 교수는 ‘유교적 양민론과 구민 정책’을 다뤘다. 나라와 문명마다 이름은 달랐으나 저마다의 사회복지 제도가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했던 것이 유교문명권의 양민養民, 구민救民, 휼민恤民 제도다. 다른 문명권과 비교해보더라도 유교 사회의 양민-구민 정책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유교 양민론의 제도적 핵심은 나라에 곡식창고를 두어 백성이 굶을 때 이를 푼다는 데 있다. 그러나 농업사회 단계의 위대했던 문명들 가운데 국가가 대규모 곡식저장고granary를 두었던 사례는 적지 않다.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튀르크 제국, 잉카 제국 등이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 그 목적은 도시 거주민들과 군대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유교권의 곡식저장고, 즉 창름倉? 역시 도시민들(주로 관직자들과 그 가족 및 보조자들)과 군대의 식량보급창으로도 기능했다. 그러나 유교의 창름은 동시에 농촌지역, 농민, 농촌노동자들을 대상으로도 운영되었다. 이 점이 유교 문명권만의 고유한 현상이었다. 동아시아 국가 양민-구민 정책의 기원은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漢대와 송宋대에 이르러 체계적으로 정비된다. 그러나 이들 정책이 본격적이고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던 때는 중국의 청淸대와 조선 후기 사회였다. 김 교수는 유교 구민 제도를 크게 국가 주도와 민간 주도로 나누어 살폈다. 상평창, 의창, 환곡은 국가 주도로 운영되었고, 사창은 민간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유교사회에서는 관과 향촌의 민간 유자들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 주도-민간 주도의 구분이란 상대적인 강조점의 차이 정도였다. 결론은 이렇다. 중국과 조선의 상평창-환곡-사창 시스템은 자연재해에 따른 기민 대책 이상의 것이었다. 청 제국의 상평창은 오늘날 현대 국가의 소득 이전, 재분배, 시장조절 정책을 방불케 할 정도의 기능을, 당시의 행정 인프라 수준을 생각하면 경이로울 만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환곡의 운영 실상은 조선이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소민대부형 사회보장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김상준 교수가 유교적 공동체를 규휼제도라는 사회시스템적 요소를 통해 살폈다면 7장에서 박원재 선임연구원은 철학적 차원에서 유교적 시스템을 재해석한다. 그것은 ‘인지상정의 윤리학: 유교적 규범론의 재음미’로 명명된다. 도덕적 판단에서 ‘감정’의 위상 문제다.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서 ‘감정’은 어떤 지위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도덕적 판단 과정에서 그 몫을 온전히 고려해야 하는 필수 요소일까, 아니면 올바른 결정을 방해하는 훼방꾼일까? 유교는 전자의 입장을 취한다. 반면 오늘날 주류적 이념인 자유주의는 후자의 편에 서 있다. 따라서 도덕적 판단 영역에서 ‘감정’의 지위를 재론하는 일은 이 양자의 간극을 확인하고 그것의 조화 또는 절충 가능성을 읽어내는 작업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나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성에 의해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도덕적이고자 하는 결단은 최종적으로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고, 또 그런 점에서 감성의 문제다. 이성은 우리가 내리는 도덕적 결단의 성격을 분명하게 하고, 선택지에 대해 면밀한 분석과 정보를 제공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시 말해서 이성 혼자만으로는 우리가 어떤 도덕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 또할 것인지를 말해주지 못한다. 어떠한 유형의 대답이 주어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유교의 성인들은 감성의 이러한 특성을 간파한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를 타자로 이끄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임을 통찰하고 이로부터 규범의 체계를 짜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도덕 준칙의 논리적 정합성이 아니라 감성적 정합성이었다. 즉 ‘합리성合理性’보다 ‘합정성合情性’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어지는 8장에서는 한도현 교수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라는 개념을 통해 유교사회를 성찰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는 1980년대에 형사제도의 다이버전(형사?제재의 최소화 또는 형사처벌 절차로부터 배제 또는 중지)이나 피해자의 치유 방안을 추구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기존 형사제도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의 실천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것이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당연히 유교의 교화敎化 이념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다. 회복적 정의의 이념은 용서와 화해의 사상을 담고 있으므로 서양보다 동양사회의 문화 전통에 더 잘 맞는다. 이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 유교는 범죄나 폭력에 대해 법에 호소하기보다는 마을 안, 문중, 서원 등에서 자치적으로 해결하고 교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유교사회뿐 아니라 서구의 전통사회에서도 법치가 발전하지 않은 데에는 이러한 사회사적 이유가 있다. 거꾸로 말해 그러한 한계 때문에 삶의 자리, 공동체 내에서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여러 실천 방안을 마련했다. 마지막 9장은 ‘여성주체성과 유교 전통: 페미니즘의 재탄생’이다. 유교와 페미니즘의 만남을 오랜 시간 연구하고 실천해온 이은선 교수가 자신의 자전적 연구경험을 들려주면서 동시에 유교의 페미니즘적 해석을 제시한다. 특히 요즘은 서구 페미니즘의 지향도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만물을 낳고 살리는’ 천지생물지심의 영성을 확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강조한다. 이 교수는 본문에서 ‘사기종인’과 ‘극기복례’ 등의 개념과 제도를 살펴보고 유교가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좁은 자아己를 버리고 보편人을 따르고, 과거의 자신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라고 촉구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를 포괄하고 이끄는 큰 보편으로 ‘인간성人/仁’을 제시하는 것이 ‘구인성성求仁成聖’의 가르침이다. 『주역』 「계사전」은 “이어주고 계속하는 일은 선하고, 그것을 이루고 완성하는 일은 (우리) 운명이다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라고 했다. 여기서 본 그 운명命과 성性은 다시 우리 인간성이다. 그것은 우리 몸이며, 모성이다. 세계 문명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때에 바로 그 몸과 모성과 우리 안의 거룩이 다시 세계를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를 초대한다. 항상 ‘휴먼human’이었고, 또한 항상 ‘포스트휴먼posthuman, 超人/聖人’이었던 우리는 이제 단지 개인이 아닌 집단지성으로서도 이 일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초인과 성인은 자유인이고 홍익인간이다.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인내로 여성이 된 곰이 낳은 이상을 들으면서 자라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