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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그냥, 이라는 말 17 협착증 18 시인 19 알겯는 소리 20 신발들 21 고향 22 쓸쓸한 밤 24 산책 속으로 25 그네 26 무궁화 27 노래는 힘이 세다 28 3월 29 어데 갔을까 30 그 사람 31 별 꽃 32 고장난 선풍기 2 33 어미 34 강화 일기 1 35 강화 일기 2 36 강화 일기 3 38 강화 일기 4 39 인절미 40 궁둥이로 쬐다 41 구름의 민박집 42 농부의 취향 43 겨울비 44 고독의 능력 46 단추와 지퍼에 대하여 47 노인과 길 48 빈손 49 동행 50 나를 먹는다 51 불안 52 문상 53 미루나무 54 방문객 55 주름들 56 건풍 57 청명 58 고향 2 59 세상 속으로 60 옛날 생각 62 그리운 것들은 멀리 있다 63 공터 64 그리운 것들은 멀리 있다 2 65 주름진 얼굴 66 집과 길 67 제2부 박꽃, 호박꽃 71 산란기 72 한로 73 바느질 74 청명 2 75 천문天文 76 적막 한 채 77 갯벌 78 하루 79 수평과 고요 80 설국 81 삼동 82 살아간다 83 시월 84 산책 85 정오의 산책 86 강화 산책 87 폐사지 88 저수지 89 의자 90 제3부 살(肉) 93 산을 오르다가 94 사과 95 빛 96 룸 톤 97 찰나에서 영원을 98 달 99 메를로-퐁티를 읽으며 100 메멘토 모리 101 독백 102 불멸 103 달의 궁둥이 104 나무의 감정 105 무경계 106 착시 107 시드니 연가 108 멀리 보다 115 사람과 별 116 구원 117 제4부 보리밥 121 봄밤 122 부부 123 부소산 124 친구 125 귀가 자라네 126 뻐꾸기 엄마 127 살다 보면 128 슬하, 라는 말 129 엄니의 산밭 130 콩국수 131 하일서정夏日抒情 132 정인情人 134 사라진 것들 135 애마들 136 장항선 137 키보드 두드리면 138 좋겠다 140 코스모스 141 골짜기 142 고향 3 143 고향 4 146 호남선 147 혼잣말 148 섣달그믐 149 제5부 호흡 153 혀 154 사자를 위하여 155 풀의 진실 156 통음 157 신오감도 158 혜월가 159 축제 160 붉은 강 161 분서갱유 162 북채 163 죽음의 행진 164 고백 165 부활 166 소면과 라면의 차이 168 해설 임지연?얽히는 세계, 방법적 확장 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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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학습하기 위해 숲에 든다
길의 첫 장을 열어 숨 크게 들이마시고 도열한 잡목들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기며 신의 숨결 듣는다 내가 사물에 스미어 하나가 될 때 순간을 열어젖힌 하늘의 음성이 번개처럼 번쩍, 살(肉)을 찢고 들어와 박힌다 ---「고독의 능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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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있다. 인간 경험의 극한 속에서조차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저자에게 무한 존경심을 느끼면서도 살짝 반감이 들기도 한다. 저자의 최대치의 체험에 비하면 우리가 나날의 곤궁한 일상 속에서 겪는 희로애락은 얼마나 사치한 것인가? 매 순간 죽음에 직면한 저자는 말한다. 인류에게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고! 극한 상황 속에서 행하는 사랑은 인간 존엄을 증명한다.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자문해 볼 일이다.
잘 늙는 일이 쉽지 않다. 질풍노도와 같은 청년처럼 벅차다. 그저 나이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 지혜로운 어른으로 여유를 만끽하며 살 줄 알았다. 욕망을 비우고 허허롭게 관조하며 살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오래된 귤처럼 즙이 빠져나간 거죽은 딱딱한 채 몸체는 오그라드는데도 욕망은 구멍처럼 팔수록 커지고 그런 욕망이 징그러워 애써 저만큼 밀어내면 이번엔 권태의 오랏줄이 영혼을 칭칭 감아 왔다. 잘 늙는다는 것, 고산을 쉬지 않고 오르는 일처럼 고된 일이다. 지금의 나는 젊은 날의 내가 그리던 내가 아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자기 자랑, 자기선전에 몰두하느라 여념이 없는 노인뿐, 어른다운 지혜와 겸손이 없다.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틀이 바뀌지 않는 사람은 동일한 삶의 패턴, 동일한 생의 궤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발견과 새로운 인식을 통한 삶과 생의 개진은 언어의 틀을 바꾼다. 문자 행위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변신을 꿈꿔야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새 내게 새롭게 생긴 버릇이 있다. 오가다 우연하게 마주치는 온갖 사물들을 애정하는 것이다. 햇빛도 아까워 일부러 손 뻗어 만져 보기도 하고 강물을 한참 동안 무연히 굽어보기도 하고 철마다 피는 꽃들을 찾아가 살뜰하게 살펴보기도 하고 바람을 있는 힘껏 마셔 보기도 하는 것이다. 심상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새삼스레 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징조이리라. 어찌 보는 일뿐이랴, 소리, 냄새, 촉감까지도 예사롭지가 않다. 세상을 떠나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저것들을 나는 친애하지 않을 수 없다. 만물의 가치가 높고 깊다. 사물이여, 나의 애인들이여, 열애의 하루가 짧기만 하도다.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갈림길에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서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다시 읽으며 우주에 대한 상상에 젖곤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나무와 인류의 조상이 같다’라는 대목을 읽고 난 뒤로 산책 중에 만나는 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내 생의 근원인 광활한 우주 속으로 흘러들 것이다. 지구는 우주에서 나온 우리가 잠시 지나가는 여정에 불과한 한 지점일 뿐이다. 여정 속에서 숱한 인연들이 고리를 맺고 풀면서 내 곁을 스쳐 지나갔거나 지나는 중이다. 내 사후의 산책로인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 저 먼 곳에 내가 영원히 안식을 취할 집이 있도다. 나는 지금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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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피가 뜨거운 청년일 것 같던 이재무 시인도 어느덧 이순耳順을 지나 귀가 순해지고 눈이 너그러워진 것일까. 시인은 “소소한 기쁨의 알겯는 소리”(「알겯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현관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신발들”의 “환한 숨소리”(「신발들」)를 들으며 식구의 뒤집어진 신발 한 짝을 바로잡아 준다. 또한, 가만히 눈을 감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다 간”(「산책 속으로」) 시인들을 추억하거나, 고향집과 부모님을 떠올리며 “고향도 나와 더불어 늙어”(「고향」) 간다고 말한다. “산천도 인걸도 의구하지 않다”(「강화 일기 4」)고 말하는 시인에게 그리운 것들은 늘 멀리 있다. 오랜 “생활의 협착”(「협착증」)에서 벗어나 강화의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지내는 시인에게 ‘고독’은 새로운 능력이 되어 가고 있다.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면을 응시하기도 하고, 사물이나 타자의 시선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는 동안 생의 근원과 과거를 돌아보던 시인의 시선은 이제 “저 먼 곳, 아득한,/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침묵”(「멀리 보다」)을 향해 있다. 구원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아침 산책로에서 걸어다니는 별들”(「사람과 별」)을 만나거나 “마음이 을씨년스러운 날 뜨락에 앉아 볕을” 쬐는 “달콤한 충만”(「구원」)에 이미 깃들어 있다. “길 잃은 바람이나/ 들렀다 가는/ 적막 한 채”(「적막 한 채」). 고독한 산책자의 지복至福은 이렇게 가난하고도 풍요롭다. - 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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