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내 머리에 꽃이 핀다면
지구인 정복 일지 투명한 소녀 나비 저택 작가의 말 |
차율이의 다른 상품
doming
도밍의 다른 상품
|
어제, 동시다발적으로 대학동 아이들의 머리에서 꽃이 피고 가사 상태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대학동은 전국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은 곳으로 오직 명문 대학교 입학을 위해 존재하는 동네 같았다. 우리가 사는 대학 아파트는 특히 인기가 높았다. 주변에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숲과 잔디밭, 명문 학교들과 빌딩형 학원들이 성처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마치 투명한 벽이 있는 온실처럼 방학 때 빼곤 여기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덕분에 한 번씩…….
- 매달 잔디밭에 아이들이 누워 있다. 처음에 우리는 이 소문을 듣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이름 모를 같은 반 학원 친구가 잔디밭에 누워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괴바이러스. 잔디밭에 누웠던 애들의 저주가 아닐까?” --- pp.12-13 「내 머리에 꽃이 핀다면」 중에서 내가 키우는 지구인은 중학생이라 학교라는 데를 가. 거기 가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준비를 해. 아침에 식량 보충도 하고, 몸에 물도 좀 끼얹고, 옷도 갈아입어. 그런데 지구인은 뭘 하든 나와 함께 하고 싶나 봐. 시간이 없다며 밥을 급하게 먹으면서도 날 보고, 세수하고 젖은 손으로도 날 붙잡고, 옷 갈아입고도 날 보고. 정말 한시도 나를 놓지 않아. 아주 귀찮은 스토커가 따로 없다니까. 그래서 내가 짜증 나서 잠깐 숨어. 그럼 지구인은 난리가 나. “내 핸드폰 어디 갔어! 내 핸드폰!” 가긴 어딜 가겠어. 잠깐 쉬고 싶어서 숨은 건데. --- p.72 「지구인 정복 일지」 중에서 리오는 허리를 붕대로 칭칭 감고 두꺼운 옷을 여러 겹 입었다. 그래야 내장에서 나오는 주황빛을 막을 수 있었다. 피부가 얇고 연약해 손엔 장갑을 꼈고, 하얀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리도록 청록색 스카프로 칭칭 둘러 감쌌다. 그렇게 스스로를 덮고, 감추고, 눌렀다. 존재의 빛조차 조용히 꺼 버리기 위해. 때때로 거대한 해초가 된 듯 암담했다. 바닥에 붙어 아무 방향도 모른 채 흐느적거리는 해초. 그 안에서 리오는 조용히 투명해져 갔다. --- p.86 「투명한 소녀」 중에서 돌하우스 2층 내부를 보자 기시감이 들었다. 이건 나비 저택 그 자체였다. 1층 민트색 꽃무늬 벽지, 2층 베이지색 꽃무늬 벽지에 나비 표본 액자, 복도 끝 분홍색 벽지에 하얀 미니어처 가구. 지금 정원이 방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홀로 서 있는, 긴 생머리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인형은 정원이일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형의 등허리에는 핀이 박혀 있고, 몸집의 반만 한 커다랗고 푸른 날개가 달려 있었다. (…) 어쩐지 정원이 인형과 나비 표본이 겹쳐 보였다. 가슴이 울렁대며 기분이 묘해졌다.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부모님이 다리가 불편한 정원이를 위해 만들어 주신 생일 선물이 아닐까. --- pp.120-121 「나비 저택」 중에서 |
|
깊은 바닷속에서 보글보글 떠오른
네 가지 기묘한 이야기 가장 긴 분량으로 가장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첫 번째 단편 「내 머리에 꽃이 핀다면」은 과도한 공부 부담에 시달리던 학생들에게 ‘머리꽃 바이러스’라는 이상한 바이러스가 퍼지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초등학생과 대입, 초등학생과 자살은 얼핏 관련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슬프게도 지금 한국에서 실제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미래를 기대와 행복이 아니라 부담과 고통으로만 느끼는 세상은 이토록 불행하게 굴러갑니다. 바로 이어지는 가장 짧은 단편, 「지구인 정복 일지」는 아주 간결하고 귀여우면서 섬뜩합니다. 스마트폰과 똑같은 모양을 한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으로 변신해 인간 세상에 숨어들지요. 이것이 중독인지도 모른 채 스마트폰 중독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무지성적인 스마트폰 사용에 관해 경각심을 갖게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 지구가 물에 잠기고, 인간들은 서둘러 해양 생물의 능력을 주입하는 주사를 개발합니다. 그러나 빈부의 경계가 선명한 지구에서 모든 인간이 같은 주사를 맞을 수는 없겠죠. 「투명한 소녀」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어인’이 되어 차별과 혐오 속에 살아가는 리오와 브리, 무악이의 이야기입니다. 외양이 어떻든, 어떤 존재이든, 그것을 근거로 누군가를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나비 저택」의 나비 저택은 사시사철 아름답고 신비로운 장소이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듯 으스스한 곳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저택을 동경하며 자꾸 저택 근처를 맴돌던 나은이는 어느 날 저택 안에 사는 소녀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랍니다. 자신을 정원이라고 소개한 그 소녀는 저택에 들어와서 함께 놀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둘의 운명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집니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불행 앞에서 기이하게 등장하는 판타지적 해결법 판타지 세계관을 갖고 있는 작품의 경우 그 환상성을 통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그것은 현실의 삶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실패와 극복의 경험이 적은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현실에 없는 결말만을 접하다 보면 강하고 자극적인 ‘참교육’ 서사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책 『투명한 소녀』에서는 인물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판타지적 해결법이 슬그머니 등장하지만, 결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각 인물들의 판단과 선택입니다. 또한 모든 단편의 결말이 행복하고 속이 시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문제를 정확히 직면하고 그것을 이겨 내기 위해 골몰하는 경험을, 이룰 수 없는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루어 내는 경험을, 그리고 성공과 실패로 딱 잘라 나뉘지 않는 실제 세상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얻어 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