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그곳으로 떠밀리다 맞닿는 시간
그 길에 들었다/ 느티나무 평전/ 지지 않는 해/ 몸꽃이 피었다/ 무너지는 산/ 바람무덤/ 목소리/ 네가 무엇이어도 좋다/ 부주의한 계절/ 우주로부터 온 자장가/ 기억을 먹는 아침/ 기다리면 곶, 감/ 저 별이 먼 줄 알았다/ 하루의 끝을 노을노을 다독이며/ 독설/ 술의 말 2부 봉숭아 씨앗을 툭, 터뜨리는 바람 공룡 등에 핀 노랑나비/ 푸른 숨을 널다/ 떡 하나 주면/ 비워지는 순서/ 시들지 않는 여름/ 침묵이 들끓는다/ 白日夢/ 세잎클로버/ 모든 선택은 새로운 길/ 엄마꽃/ 벚꽃 안부/ 녹차꽃 필 때까지/ 네가 부르면 무엇이든 꽃이 된다/ 섬진강 벚꽃/ 삭은 밥알이 떠오르는 밤/ 다시 멸치/ 손 없는 집 3부 자작나무숲으로 오후가 비스듬히 손으로 전하는 꽃말/ 동백/ 아직 도착하지 않은 봄/ 맨발로 사뿐 날아올라요/ 평생지기/ 손을 잡을까요?/ 음마 음마/ 왼손 글씨/ 아지랑이, 겨울/ 느닷없이 엎어지다/ 초록 이후/ 정지된 시간/ 바람이 바다로 뛰어들 때/ 양파를 썰다가/ 풀잎꽃 나뭇잎꽃/ 이제 좀 쉬세요/ 그믐의 육체 4부 구름은 한 발 한 발 그늘을 밀어 넣고 이 봄을 껴안다/ 둥근 위로/ 버드나무 할머니/ 비포장길/ 밥솥에 사는 뻐꾸기/ 겨울이라는 집중/ 젖은 밥/ 막차는 기타 소리로부터 온다/ 공감이라는 병/ 비자림에서 사시다/ 투명하고 환한 슬픔/ 나란히 바라보는 하루/ 아침은 아득하다/ 잠시 길을 잃는 중/ 여름을 낳는 나무는/ 약탕관에서 살다/ 십일월에 질문을 달고 해설 _ 세계선世界線을 건너는 기억의 문법 전형철(시인, 연성대학교 교수) |
|
사람 사는 일이 밤바다의 속내와 같기만 해서
그 길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 길에 들었다」중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흔적 지독한 아름다움 약물이 남긴 결 그 결 위로 또 한 번 붉어진다 ---「몸꽃이 피었다」중에서 모래언덕을 빌리기로 했다 쌓이는 모래가 쏟아지지 않도록 뼈와 살을 가두려 마음은 자꾸 멀어지고 멸치 비늘처럼 간신히 반짝이는 세상의 말들 ---「바람무덤」중에서 화살나무의 초록을 단풍이라 부르기엔 아직 이르지만 벽과 벽 사이, 경계가 모호한 바람은 이미 계절을 앞질러 달린다 ---「푸른 숨을 널다」중에서 안경알 없던 시절의 맑은 눈을 그리며 초록은 가을 앞에서 한 걸음 망설인다 몸 곳곳에 새겨진 흔적들이 저 아득한 계절의 입구에 서 있다 ---「비워지는 순서」중에서 봉숭아 씨앗을 툭, 터뜨리는 바람이거나 두 손 가득 넘치게 안겨 오는 너라는 바람이거나 우리는 모두 터지지 않기를 꿈꾸며 식지 않는 열망으로 부풀어 있다 ---「시들지 않는 여름」중에서 행운도 불행도 한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새파랗게 흔들리는 우린 그저 풀이다 ---「세잎클로버」중에서 길은 어디에나 있다 디디는 발바닥 아래에도, 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의 통로에도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모든 선택은 새로운 길」중에서 가끔은 빗방울 맺히고 바람에 떨기도 하겠지만 홍매 속살에 분홍 폭죽 터질 봄날 얼마나 눈부시랴 ---「손으로 전하는 꽃말」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초록에서 다시 초록으로 여름 앓는 은행나무는 제 계절을 견디고 있다 ---「초록 이후」중에서 막차는 말을 줄이며 터벅터벅 종점이라는 어둠 쪽으로 흘러간다 ---「막차는 기타 소리로부터 온다」중에서 안으로만 웅크리는 11월 벌써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몇 밤을 꼬박 새운 새벽이 온다 한들 기별 없는 길 위에 선 그대들만 할까요 이제,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십일월에 질문을 달고」중에서 |
|
[해설 중에서]
이 시집의 제목 『초록 이후』는 상기한 생의 태도를 압축한다. 초록은 생명과 젊음, 성장의 색이지만 이 시집에서 초록은 언제나 이미 한 번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 나타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초록에서 다시 초록으로”(「초록 이후」)라는 구절에서 초록은 단순한 자연의 색이 아니다. 한 번의 생성과 소멸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생의 형식이다. 따라서 ‘초록 이후’란 일회적 사건으로서의 회상이 아니라 물리적 시간과 경험의 성질 너머의 무시간성에 기저한다. (한스 마이어호프, 『문학과 시간의 만남』) 무한한 시간이 아니라 무시간적 차원으로 시간에 대한 시선을 포월抱越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다시 피어나는 것이다. 신순금 시인에게 시는 사라진 것들을 되살리는 주문이라기보다, 사라진 것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언어일 것이다. 시인은 알고 있다. 삶은 완치되지 않으며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애도는 끝나지 않으며 기억은 언제든 흐려진다. 그러나 그 모든 불완전함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신순금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 불완전한 삶을 함부로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시는 “울음이 잦아든 하늘 아래” “이제 더는 묻지 않겠”(「십일월에 질문을 닫고」)다는 ‘침묵 위에 겹친 침묵’(「침묵이 들끊는다」)의 절제와 결연한 의지로 세계선의 노정에서 돌올히 빛나고 있다. 그 빛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다. 상처 난 몸으로도 다시 초록이 되는 것, 떠난 사람을 마음에 품은 채 다시 아침을 맞으며 정답 없는 길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조용히 손을 내미는 것. 『초록 이후』는 바로 그 삶의 시간을 기록한다. 초록은 지나갔다. 그러나 초록 이후가 있다. 그렇게 이 시집은 우리에게 전하는 그 ‘이후’를 견디게 하는 가장 단단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_ 전형철(시인·연성대학교 교수) [시인의 말] 오늘은 수십 년 삭혀온 고백들을 꺼내 널기 참 좋은 가을 햇볕입니다 2026년 10월 신순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