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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인 창작기획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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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한때, 눈부셨을 꽃잎이 잠든 페이지를 연다

엄마는 얌전하다/ 그러나 아직/ 벽장 안에 바람이 산다/ 몰라/ 쓸쓸을 방목하다/
그늘 속에는 메아리가 산다/ 진동/ 궁남지 서사/ 쥐눈이 할머니/ 호모루덴스/
냄새의 교집합/ 껍질 벗기/ 그 여자, 김봉희/ 금강 어귀에서/ 겨울 강을 건너다

2부 그리움 쪽으로 향한 길고 긴 목

입술소리/ 내 이름은 메리로우, 연희 Lee/ 화석의 조건/ 과녁을 벗어나다/ 울음을 찾아서/
사과를 먹는 법/ 모딜리아니, 나의 페르소나/ 일기예보/ 낙인/ 불면을 냉장고에 넣는 법/
뾰족 첨탑의 사랑/ 낙화의 이력/ 눈부시다는 것/ 나에게 너는/ 파블로프의 개

3부 더 깊은 어둠이 온다 해도 너를 구할 거야

유혹/ 달의 몰락/ 동그라미 연가/ 도다리로 사는 법/ 가라앉는 것들/ 달빛놀이/
사과의 프리즘/ 떠돌고 뒹굴고/ 소도를 찾아서/ 그늘을 열다/ 닮은꼴 이중주/
잊혀진 것들의 꽃/ 늙은 애벌레/ 바다가 품은 것들/ 잉어를 키우는 법

4부 햇빛을 삼킨 오솔길을 걷다 보면

껍데기들/ 진행 중/ qwerty 자판의 비애/ 철길 끝에는/ 네모 속에 네모의 바람벽/
난각 번호 2번/ 오려내기와 붙여넣기/ 초파리를 잡는 법/ 하루를 뒤적이다/ 청개구리/
입력/ 노을을 읽다/ 칡넝쿨 연가/ 날아올랐었는데/ 장어자판기 사용설명서/
붉게 피어나는 기억들/ 독살


해설 _ 화석에 새겨둔 목숨의 계보학
박미라(시인)

저자 소개 1

·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 시와 문화 신인상(2025년) · 충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2026년) · 한국문인협회, 천안문인협회, 바람시문학회 회원 · 전국 재능시낭송대회 입상, 재능시낭송협회 시낭송가, 국민일보 시낭송가 · 재능시낭송가 녹음CD, 유한킴벌리 후원 시낭송CD <자전거가 있었다> 제작참여 등 · 시집 ??화석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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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28*205*20mm
ISBN13
9791174900890

책 속으로

자꾸 흔들리며 멀어지려는 그녀
한때 눈부셨을 꽃잎이 잠든 페이지를 연다
---「그러나 아직」 중에서

바람은 파란 대문을 타고 들어오고
셋째 딸을 꺼낸 엄마의 문에는
검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고
---「벽장 안에 바람이 산다」 중에서

저녁 어스름에 올라오던 빛깔을 알 수 없어
낙엽 타는 냄새에도 가슴 저며오는
유난스러운 가을
쓸쓸을 방목하고 싶기도 했는데
---「쓸쓸을 방목하다」 중에서

나는 여름의 아이
어둠 저편 겨울의 강 한가운데 서서
종이 인형처럼 젖었다가 말랐다가
---「겨울 강을 건너다」 중에서

맨발바닥에 전해져 오던 연둣빛 풀들의 간지러움
지나간 시절은 모두 화양연화

저는 초록 풀들의 기억을 가진
두 개의 뿔과 한 개의 코뿔을 가진 공룡일 뿐이니까요
---「화석의 조건」 중에서

칠흑 같은 어둠에서 유일한 이정표는
해독할 수 없는 제3의 언어
---「과녁을 벗어나다」 중에서

꽃잎이 냄새를 벗자 바람에 흩날린다
냄새의 옷을 벗은 빈 대공의 울음소리일까
분꽃 살내를 벗은 할머니의 치마 속에서 울리는 비파 소리인가
---「울음을 찾아서」 중에서

‘오늘의 날씨는 뒤집힌 양말짝처럼 난파된 하루입니다’
하품을 입에 물자 눈물 고인 하루가 뚝 떨어진다
---「일기예보」 중에서

바다를 떠돌다 구조된 흰고래를 안다는 것은
정말 눈부신 고통이지요
---「눈부시다는 것」 중에서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요
비와 폭풍우를 뜨겁게 껴안았던 기억
---「뾰족 첨탑의 사랑」 중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달의 전설도 사라지고
한겨울에도 헤픈 미소를 날리는 친절한 코스모스
철을 모르고 피는 철쭉
어디 꽃만 나무랄까
---「달의 몰락」 중에서

쉿, 열쇠의 비밀을 우리끼리 간직하기로 하자
달빛 아래 달맞이꽃이
다 지켜보았을 테지만
---「그늘을 열다」 중에서

어머니, 그 물을 가두어 어디에 쓰시려구요?
밀물과 썰물이 흘러가다가 갇혀버린 바닷물
잡힌 줄도 모르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어린 물고기
---「독살」 중에서

출판사 리뷰

표제작 「화석의 조건」은 이 시집의 존재론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화석은 죽음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보존 형식이다. “땅속에 빨리 묻힐 것, 빨리 굳을 것”이라는 화석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기억이 형성되는 방식을 암시한다. 삶의 어떤 순간들은 미처 해석되기도 전에 내면 깊숙이 묻히고, 그곳에서 굳어져 오래도록 존재를 지배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단순한 고착으로 보지 않는다. 화석은 박제된 죽음이 아니라 “초록 풀들의 기억”을 품은 시간의 물질이다. 그가 화석으로 묻어 끝끝내 보존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혹 그는 자신을 살아있는 화석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의 시에서는 죽음과 상실이 여러 번 언급된다. 그러나 상실은 죽음이거나 단절이 아니고 다시 돌아오는 길을 여러 갈래로 열어두고 있다. 냄새로, 바람으로, 달빛으로 돌아오는 상실은 기억이라는 인간 고유의 형식으로 다시 그와 함께한다. 시인은 엄마, 할머니, 아버지, 노년의 몸, 죽음에 가까워진 존재들, 잊혀진 사물들을 호명하면서 삶이 어떻게 기억 속에 퇴적되고 다시 시적 형상으로 부활하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그는 깊이 묻어둔 자신의 기억을 부활시키기 위해 이 시집을 엮었는지도 모른다.

정윤경의 시에는 기억의 계보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다수의 작품이 있다. 시인은 그 침묵의 내부에서 울음을 발굴한다. 「울음을 찾아서」에서의 울음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세대적 기억의 심층에 묻힌 목소리이다. 우물, 백일홍, 동백, 마중물의 소리는 억눌린 울음의 변주로 나타난다. 우리들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 그리고 그 딸들의 울음이 화석이 될 때까지 소리 없는 울음으로 스스로를 지켰을 것이다. 여성들의 침잠된 기록은 '화석'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울 수 있을 만큼이면 견딜 수 있는 아픔이라고 말한다. 너무 기가 막혀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해봤다면 이 말을 금방 이해할 것이다. 정윤경의 시에 나타나는 여성이거나 울음이 지시하는 것은 ‘견딜 만큼’을 지난 상황의 현재형이다. 울음쯤으로 나타낼 수 없는 생의 그늘을 끌고 가는 등을 향해 던지는 질문과 대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그의 시가 과장도 거짓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눈을 뗄 수 없다.

이 시집의 미학은 지나왔거나 지나갔거나 어쩌면 현재 곁에 머물고 있는 것들의 어떠한 상처도 흠집도 고통도 상처이거나 슬픔에 가둬두지 않는다. 그것은 상실을 지나 복원으로, 복원을 지나 생의 긍정으로 나아간다. 화석은 죽음의 잔해가 아니라 시간이 보존한 생의 증거이며, 그늘은 빛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날개가 돋는 장소이다. 정윤경의 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한다. 사라진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는 한, 상처는 다시 꽃이 된다. 그 꽃을 가꾸는 것은 오직 스스로의 몫이라는 시인의 목소리가 깊게 출렁인다.
_박미라(시인)

[작가의 말]

목구멍에서 솟구치는 붉은 날들을 지운다

내게서 밀려나는 여름을 돌아본다

안으로 가두어 두었던 것들이 무심히 벗어난다

이제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첫 꿈을 꾼다

2026년 늦여름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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