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눈물 감사한다 아버지의 큰 손 아버지, 울지 않았다 그 방 장대비 시 사랑은 왜 가난에서 오는가 그 눈동자 코고무신 어머니 무덤 낮달 얼음 눈물 제2부 먼 산 짝사랑 2 짝사랑 3 목 사춘기 중력 묵 보푸라기 탄 감자 감꽃 연서 너에게 가는 길 마지막 사람 살 맛 제3부 만남 세상 일 한 번쯤 고단하고 남루한 나의 몸에게 낚시터에서 천둥오리 새끼의 울음 밥의 실존 낮달2 단풍 쓴 소주를 마셔도 좋을 날을 위하여 미나리 소주 자취방 추억 파리여 존경한다 고추밭에서 남몰래 이쁜 것들을 위하여 위로 막걸리가 먹고 싶다 무좀 치료법 해설 | 어릴 때의 농촌체험, 그리움과 넘어섬의 대상_정대호(시인) |
|
눈물
평생 없이 살다가 배고픈 게 병이 되어 병원 한 번 못 가고 돌아가신 내 어매 유언은 "밑구녕"이었다. 이 말이 유언인 줄도 모르다가 세상 버리신 지 이태 지난 어느 명절날 고향집 안방에 걸려 있던 벽시계 먼지를 털다가 알았다. 벽시계 안 “밑구녕”으로 명절 때 고향 가서 터진 손에 쥐어 드린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들이 배곯던 우리 어매 생손앓이 고름 터지듯 찔끔찔끔 투두두둑 방바닥에 터져 내렸다. --- p.12 시 사철 헐벗었던 어머니는 시였다. 노름빚에 천불이 나서 그 어머니를 때렸던 아버지도 시였다. 갈라진 논바닥 위에 엎어져 죽은 장가 못 간 넷째형도 시였다. 한 발이 넘는 생담배를 뜯어 이고 허리 휘청 품을 팔아도 허기진 배 채울 수 없었던 손등이 언제나 부옇게 튼 어리디 어린 누이도 시였다. 훤하게 터진 노을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목숨마저 여렸던 아름다운 시여 --- p.24 |
|
벽시계 안 밑구녕에서 나온 만 원짜리 지폐
시를 읽고 나서 한동안 먹먹해진 가슴을 쥐어뜯은 적이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웬만큼 자극적이지 않으면 고동치지 않던 가슴에 미세한 울림이 있었다. 주위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눈에 힘을 주었으나 그 울림은 금세 가라앉지 않았다. 황영진 시인의 첫 시집 중 「눈물」이란 시를 읽고 난 후였다. 벽시계 안 “밑구녕”으로 명절 때 고향 가서 터진 손에 쥐어 드린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들이 배곯던 우리 어매 생손앓이 고름 터지듯 찔끔찔끔 투두두둑 방바닥에 터져 내렸다. - 「눈물」 중에서 어머니 돌아가시면서 남긴 말 한 마디가 고작 “밑구녕”이었는데, 돌아가신 지 이 년 후에 벽시계 먼지 털다가 우연히 발견한 만 원짜리 지폐. 그 지폐가 방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투두두둑. 그렇게 가슴 속에 자리잡았던 어머니,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편린들이 봇물터지듯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코끝 찡하게 만들었다. 이 시집의 원래 제목은 ‘사랑은 왜 가난에서 오는가’였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집 표지를 마무리할 때쯤 황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집 제목을 바꾸잔다. ‘벽시계 안 밑구녕’. ‘밑구녕’이란 어감이 좀 걸렸다. 사전에는 ‘항문’의 충청도 방언이라고 점잖게 소개되었지만, 방언보다는 속어에 가까울 정도의 부정적 인식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항문, 사타구니... 등처럼 인간에게는 드러내고 싶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데,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기우인지는 결국 시집의 판매량이 증명(?)하겠지만, 황 시인이 자신의 생애 첫 시집에 첫 시로 정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을 통해 황 시인이 하고자 한 말이 이 하나의 시에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집의 발문을 쓴 정대호 시인은 발문 제목을 ‘어린 시절의 농촌체험, 그리움과 넘어섬의 대상’이라고 붙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인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온 황 시인이 느낀 농촌과 우리 시대의 모습, 그 안에 투영된 자신의 삶을 솔직하고도 담백한 어조로 써내려 간 이 시집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게는 공감을 넘어서는 ‘울컥’을 한 사발 선물할지도 모르겠다. 그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면서도 손가락만큼이나 많은 자식들 대학 다 보내고, 그 자식들 우여곡절 끝에 장성하고 일가를 이루어 살면서 손에 쥐어드린 용돈 몇 푼마저도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고 신주단지 모시듯 꼬깃꼬깃 벽시계 안 밑구녕에 저장한 우리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황 시인의 시집을 바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그 어머니, 아버지를 닮아가는 세대들에게도 위안과 공감의 시집을 건네고 싶다. [시인의 말] 실컷 울고 난 뒤 편안해졌던 한 때의 기억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떠올리며 용기를 내서 울보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으려 결심했습니다. 울보에게는 습이 되어 이제는 차라리 편안해진 슬픔에게 때 늦었고 어눌하지만 토닥토닥 진심어린 위로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사십여 편의 시를 정리하면서 저는 슬픔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수밖에 없었는데 정리를 한 후에야 알았습니다. 슬픔을 위로한다고 했지만 정작 위로를 받은 것은 저였다는 것을. 저를 자기 긍정에 이르게 한 것은 놀랍게도 슬픔이었다는 것을. 오늘도 슬픔은, 삶에 얼거나 데여 발악하는 저에게 빈 어깨를 슬그머니 내어 준 채, 노을이 비친 저녁 길을 쓸쓸하고 조용하게 바라봅니다. [추천사_정대호 시인] 가난한 나라에서 농부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 그는 어릴 때 농경사회에서 자라나 청장년기의 산업사회를 거쳐 지금은 정보화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항상 어릴 때의 가난체험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그의 시적 정서의 본질이다. (중략) 스스로 강인해지지 않고서는 세상을 견뎌낼 수가 없다. 농부는 울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쉽게 울 수가 없다. 그것을 다 울다가는 울음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죽음의 고통 앞에서도 입을 악다물고 두 주먹을 움켜쥐고 용을 쓴다. 울지 않기 위해서. 이는 아버지의 일생을 지배해 온 내면의 의지이다. 이것이 아버지가 생존하는 철학이다. 울어야 할 일들이 있다고 슬픔에 빠지거나, 분노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그때마다 분노하고, 방황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방황하다가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현실적으로 힘이 없다. 국가 권력 앞에서 힘이 없고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경제력 앞에서 힘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