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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평생 지친 자의 길은 멀다 어깨 아내 밥 저녁 햇살 늦사과꽃 냉장고 문 앞에서 길을 잃다 눈물 못 한 짐 화두(話頭) 벌새 가을 강 계족산 황톳길 전화번호 첫눈 오시는 밤 나는 겨울 눈 봄비 봄날은 간다 봄날 허공 산다는 것 엽서 참선하는 시계 근심을 풀다 황홀 하나로 묶인다 아저씨의 틀니 금마타리꽃 고향 501호■ 401호 육탈(肉脫) 지리산 제2부 떠돌이 떠돌이 2 낮술 폭설暴雪 임리의 봄 불고추 가을날 마른 명태 한 마리 꽃그늘 수복이 아버지 가시던 날 한만리 운태 영감 운태 영감 2 어느 이산가족의 편지 벙어리꽃 꿈 소낙비 편지 여름날 애장터에서 제3부 저녁 벽지(僻地) 1 벽지(僻地) 2 벽지(僻地) 3 벽지(僻地) 4 소금 창고 고파도 내 마음도 약해졌다 동백(冬柏) 해설 | 전인 시인의 새로운 길 찾기·윤재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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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허공에 점 하나 찍는 것인데 저녁이 어둑한 들길 걸어오면 외상 장부에 작대기 하나 긋듯 연필에 침 묻혀 점 하나 찍으며 나는 나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밥값은 했는가 이번 생애 진 빚 어느 정도 갚았는가 그러다 점도 찍기 힘든 날은 좀 봐달라고, 빈손이라고 --- 「지친 자의 길은 멀다」 중에서 밥은 길이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 그 사람에게 가는 길이 생겨났다 그 길 가다보면 때로 버스 정류장도 있어 거기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슬픔으로 슴배인 나무가 몇 그늘이다 이제까지 사람들과 같이 먹었던 밥은 몇 끼였는가 그 밥 이제 몇 끼나 남았는가 --- 「밥」 중에서 누가 이리 두런거리는가 입춘 지나 갱년기로 잠을 설친 날 누가 밤을 새워 소식 전하러 왔는가 나도 이제 가는귀먹었다. --- 「봄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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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 시인의 첫 시집. "젊어 한때 문학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시인은 두 번의 해직을 거쳐 그새 머리가 허옇게 셌다. 문득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어져 늦은 나이지만 첫 시집을 냈다는 시인은 자신의 시를 "길을 찾아 끼웃거린 평생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걸망 하나 메고 모든 의무의 짐 내려놓고 떠돌아다니고 싶다"는, "그러다 어느 따뜻한 봄날 조는 듯이 가고 싶다"는 시인의 말은 이 시집에 실린 60여 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시인의 젊은 시절부터 그의 문학성을 눈여겨보았다는 조재훈(공주대 명예교수)는 그의 시를 "머리맡에 두고 괴롭거나 기쁠 때"나 "시끄러운 세상에 지쳐 떠돌다 훌쩍 낯선 곳 찾아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을 때 이 정갈한 시편들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으라"고 권한다. 전인 시인은 충남 논산 출생으로 1981년 ‘삶의문학’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오늘의 책』 『한반도의 젊은 시인들』 『녹색평론』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1988년 [민중교육] 사건으로 해직된 바 있다. 이 시집은 시인의 말처럼 “길을 찾아 끼웃거린 평생의 흔적”이다.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될지도 모른다. 그의 새로운 길 찾기가 어느 지점에서 시와 다시 행복하게 만날 수 있기를 빌어 보지만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그의 건승을 빌 뿐이다. - 윤재철(시인), 해설 중에서 작가의 말 젊어 한때 문학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야만과 짐승의 시대에 세상을 바꿔보려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어 두 번의 해직 그리고 세월이 갔다. 그새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 문득 내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 시들은 까마득한 젊은 날 쓴 것에다 나이 들어 쓴 것들을 보탰다. 길을 찾아 끼웃거린 평생의 흔적이다. 이제는 걸망 하나 메고 모든 의무의 짐 내려놓고 떠돌아다니고 싶다. 그러다 어느 따뜻한 봄날 조는 듯이 가고 싶다. 2020년 늦은 봄 계룡산 자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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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한 편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읽고 나니 다 밑줄이다. 이 조용한 울림을 어찌 말로 다하랴.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의 한결같음은, 끊임없이 가난한 마을을 적시며 흐르는 금강을 닮았다. 그의 시는 섬세한 감수성의 신선한 축제다. 어떠한 관념도 용해된다. 그것은 입말, 토박이말들의 화법에서 드러난다. 오늘의 세상을 떠나 그의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의 슬픔과 기쁨이 살아 움직인다. 생동하는 현대판 민요(풍風)이다. 이런 면에서 어떠한 웅변보다 웅변이다. 그가 군에 입대했을 때의 체험을 담은 이 시집 뒤의 시편을 보면 이내 알게 될 것이다.
20대 재기발랄한 문학적 능력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가 40여 년 지나 이제 한 권의 시집을 엮어 낸다. 초심을 지키며 시골의 학교에서 참교육을 실천해 온 평교사, 축복이 있어라, 이제 시작이다. 걸어온 그 걸음으로 걸어다오. 머리맡에 두고 괴롭거나 기쁠 때, 이 시집을 펼치리라. 시끄러운 세상에 지쳐 떠돌다 훌쩍 낯선 곳 찾아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을 때 이 정갈한 시편들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으리라. - 조재훈 (시인, 공주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