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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이 키우는 나무 꽃 지고 본다 한쪽 어깨를 밀어주네 능소화 2 내 몸에 그늘이 들다 대숲 가을 수목원 허공 속의 집 화분 처서 지나 허공은 나무들의 집 겨울나무 사랑 꽃 동백꽃 매미의 무덤 허공에 매달려보다 겨울나무 내 안의 나무 능소화 1 II 너 네 말 맞다 어느 날 미로 하관(下官) 대붕(大鵬) 삼만 리 KTX 시월 금산 장 역방향 나 안의 너를 향한 바퀴 앞에서 폭설에 막혀 III 섬 물 바닷길 바다에 배를 묶다 독살[石箭] 무인도(無人島) 오래된 발자국 서해 낙조 괭이갈매기 우도(牛島) 대종천(大鐘川)에서 적벽강에서 수상가옥 구름다리 강둑에 서면 IV 그늘 속의 그늘 숲 겨울 일박 일순(一瞬) 일박(一泊) 산길 강물 쪽으로 뿌리를 뻗네 산비 벼랑에 서다 빙벽 앞에 서다 길 속의 길 기억 속의 길 가을 숲에 들다 숲의 힘 장마 숲을 가다 해 설 벼랑의 정신과 존재론적 도약 | 김경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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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을 꿈꾸는 시인
198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뒤 네 번째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를 상재한 김완하 시인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시를 쓴다. 자연의 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도 끝까지 나무와 강, 바다를 끌어들여 자신의 시 속에 품고, 언젠가 알을 깨고 다시 살아날 자연을 꿈꾼다. 4부로 나뉜 이번 시집도 숲과 물의 이미지 속에 인간의 삶이 놓여 있다.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강과 바다에는 신선한 생명력과 함께 깨달음의 요소가 가득한 데 비해, 인간의 삶만이 어지럽고 혼탁하다. 자연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불순한 인간 삶을 정화시키는 기재로 김완하 시인은 ‘허공’을 강조한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가득한 세계, 그것에 대한 깨달음이야말로 무엇인가 가득 채우려 하는 인간의 욕심에 일침을 가하는 자연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허공이 없다면 나무들이 더 이상 자라날 수 없듯이, 사람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시를 통해 넓혀나간다. 그런데 ‘허공’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절벽 앞에 세우는 절박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속에 등장하는 벼랑 이미지는 ‘허공’을 얻기 위한 시인의 간절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한 치의 허약함이나 나약함을 거부하고 마음을 올곧게 세우는 데에서 시인의 ‘벼랑’은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었을 때 ‘벼랑’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자유롭게 정신을 투신시킬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현대인들은 경제력이나 권력이 다한 곳에 죽음의 벼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들을 벗어난 곳에서 삶의 벼랑을 꿈꾼다. 그곳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허공으로 서로를 키워가는 벼랑이다. 점점 번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벗어나 시인의 허공 속에 몸을 던져보는 일도 가치가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