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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4
제1부 사내라곤 딱 나 하난데 12 쇳밭둑 할아버지 13 정자 누나 14 할미꽃 16 보고 싶은 옥이 이모 18 통지표 고치기 19 우등상 20 바다라는 이름 22 치타 23 대통령 후보들 24 쇠갈퀴 손목 26 구렁이 28 장래 희망 29 스물셋 노처녀였다가 30 종잣돈 누에 31 개구리 잡기 32 술래잡기 34 돌멩이가 최고여 35 국민교육헌장 36 장수말벌 38 사랑해요 바보몽땅 40 꽃씨 이야기 44 맨드라미 46 스릴 48 봄이 50 투명 인간의 입술 51 초록빛 바다 52 김문자 전傳 54 해와 달과 수수깡 57 제2부 아버지는 오래된 기억에만 생생하시다 60 사부곡思父曲 62 최후의 잡곡밥 63 금식 표찰 64 변화 65 아버지 빤쓰 66 노인병동 538호 68 모시 나무 70 어머니의 노래방 72 컵라면 74 딸바보·하나 - 이삿짐 75 딸바보·둘 - 방 청소 76 딸바보·넷 - 딸의 생일 4개월 전 78 금연 구역 80 달포만에 비가 오다니 82 이삿짐 83 제3부 아직도 그대로 있나요? 최연진 선생님 10주기 추도식에 부쳐 86 병신년 회갑의 벗들에게 88 노무현 추모식을 보며 91 소리·셋 92 그리고 노을 앞에서? 2009년 9월 23일, 서대전시민공원 김대중 추모제에서 93 세월호 승선 사진 95 블랙리스트의 봄 96 일반 잡부 방 씨의 촛불집회 98 배추껍데기 99 동창회와 이데올로기 100 코리안 드림 102 말라붙은 지네 104 지네 가족 보내다?마라도 창작촌에서 105 제4부 당뇨 관리 수첩 108 당뇨 관리 수첩·둘 109 금주령 110 엘리베이터의 봄 111 매독 112 손등을 찍는다 114 루핀들 115 다른 소설가들을 116 로드킬 고양이 117 도서관 118 통 큰 언어의 벗에게 120 삽을 잃다 122 어느 날 늙은 시인이 되었다 124 구제역 꽃 126 밥 먹기에 대하여 127 집 나간 너를 위하여 128 중년의 김우직 129 수근이 사고 치기 직전 130 퇴직 3개월 전 132 이제는 나도 133 해설_사랑과 바보, 그리고 기억의 힘 | 박명순 135 |
강병철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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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반에 올려진 개미누에 출생이 아니라
버림받은 퇴비장 불가촉천민들 장마철, 행순 에미가 쏟아낸 시커먼 시신, 틈새로 꼼지락대던 생명붙이들 그 순간 번쩍 떠지는 새마을 소년 이종환 종잣돈 고치로 애지중지 변신시키니 발걸음 훨훨 날았다 하굣길마다 뽕잎 따는 흥부 되었다 장대비 쏟아지면 사랑방 아궁이 따땃하게 지펴서 바스락바스락 뽕잎 먹는 소리 누에 살 오르는 힐링 스크린 네 번째 긴 잠 끝내고 마침내 실뽑기 시작하면 오 원짜리 종이돈 빳빳한 냄새 희망의 미래 처음으로 품어보았다 하여, 누에고치 팔아 새 운동화 신고 팔짝팔짝 달음박질 가벼운 유년도 있었다 ---「종잣돈 누에」중에서 대전 복합터미널 남자 화장실 소변기 닦던 여자 대밭집 연실이가 틀림없다 손목 때리기 민화투 치다가 고구마 깎던 열여섯 감자 꽈리 불던 오리궁둥이 늦도록 오지 않던 사춘기 서늘한 아랫도리 흔들렸던가 염전 머슴 석숭이 입술 바치고 통통배 타고 대처로 떠났던 싸리 회초리 허리 낭창낭창 그 여자가 틀림없다 두근두근 바닥 건사하는 건강한 노동자구나 칭구야 방갑다 악수 청하니 여자의 눈빛 박꽃처럼 벌어지며 초승달 입술 환하게 터졌다 ---「투명 인간의 입술」중에서 배추 고갱이 철통 수비군 마감하고 겨드랑이 찢겨진 야시장 후진 트럭 바퀴에 짓밟힌 구舊빨치들 아픔 피한 적은 절대로 없으나 ‘껍데기는 가라’는 가열찬 구호는 거부한다 단호히 거부한다 손바닥 발바닥으로 감싸주던 껍데기와 알맹이는 모태 뿌리 벌어지는 간극도 본디 한 뿌리이므로 서로 기대면서 배추꽃 피우고 하얗게 터지는 씨앗 나누자고 소리치지 못한 게 종시 억울하다 각서 한 장 악으로 버티다가 새벽 술 구시장 뒷골목 초겨울이다 ---「배추껍데기」중에서 삽날 땡볕은 심장의 폭폭함이다 아파트 텃밭 구덩이 먹거리 잔당들 쑤셔 넣을 때마다 엎드린 팔뚝 포동포동 살이 붙었다 마찬가지였다 가지나 상추 잎 고르기 토마토 열매 인증샷보다 기계적 삽질이 가장 행복했다 그냥 파고 헤치고 뽑던 찰나의 행복 오늘은 음식물통 경비실 앞에 놓고 종량제 처리 소요시간 딱 3분 그 사이에 삽이 증발된 것이다 기막힌 표정 어리버리 지었더니 경비 아저씨 CCTV 돌리며, 색출하겠닷 두 주먹 쥐기에 서둘러 막았다 아니요 사소한 도둑질은 눈감아야 합니다 흘린 물건 주워 간 거예요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을 겁니다 더 폭폭한 임자 만나라며 가슴 다독이며 ---「삽을 잃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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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힘
강병철의 이번 시집은 ‘기억의 힘’으로 씌어졌다. 기억은 한 존재의 필연성을 보증한다. 누군가와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대체적인 기억의 내용인 바, 기억이라면 곧 한 존재가 통과해온 사건의 해석 층인 것이다. 따라서 기억이라는 밝지 않은 창고에는 명료한 사건 그 자체가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명료하지 않은 해석이 더미를 이루고 있다. 시는 다시 한 번 그 불명료한 해석의 더미를 꺼내어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강병철의 이 시집은 그것에 매우 충실하다. ‘문자 고모다’ 신작로 아리랑사진관에 얼굴 걸린 딸 부잣집 여덟째 김문자 소녀는 엄앵란 짙은 눈썹 김지미 앵두 입술 빼박아서 옥玉 같고 눈雪 같았다 바늘 코 안 보고 벙어리장갑 거뜬하게 떴지만 웬일일까, 방앗간 라이방 삼촌한테 바람맞더니 밤만 되면 열여덟 가는 어깨 훌쩍훌쩍 들먹였다 ---「김문자 전傳」중에서 강병철은 기억 속의 여러 인물들을 호출해 내 여러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런 다양한 기억은 시인의 내면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드러낸다. 그것은 지금은 사라진 민중의 이미지들이다. 이 이미지들이 비록 ‘옛 이야기’처럼 들릴지라도 분명히 우리의 역사를 지탱해준 ‘거대한 뿌리’임은 사실이다. 물론 명시적으로 시인이 민중과 역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능청과 유머를 통해 진실을 보여주기 하지만 시인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는 민중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아직도 그들은 처처에 존재하며 묵묵히 세상을 지탱시키는 아랫돌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대전 복합터미널 남자 화장실”에서 “소변기 닦던 여자”는 분명히 옛날 “대밭집”에 살던 “연실이”다. 그 친구가 “바닥 건사하는 건강한 노동자”가 되었다고 시적 화자는 반가워하지만, 문제는 그 “건강한 노동자”가 사회적으로는 “투명 인간”이라는 점이다.(이상 「투명 인간의 입술」) 시인은 작품의 내용에서는 그 점을 부각시키지 않으며 능청을 떨지만, 그 존재가 “투명 인간”이란 점을 (강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다. 강병철은 이렇듯 이 시집 도처에서 능청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야 할 말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우성관 앞에서 봉고차 기다리는 식물성 표정들 이열 종대 흡연 중이다 나 혼자 낯익었을까 파키스탄이나 네팔인 표정 중국인 닮은 토종 황인종 하나는 창살 앞자리 붙박이 꼭 거기다 밥 먹으러 가는 중일까 아니면 용역 대기 4년째 풍경으로 갸웃갸웃 지나친다 이역만리 기름밥 인생 밀항선 불법체류였을지도 모른다 밀입국 거부로 몇 나라에서 퇴짜 맞은 그 열대야 사막의 난민이었을까 ---「코리안 드림」중에서 어떤 사물과 사건 앞에서도 ‘무거워지지 않기’는 강병철의 특징이면서 미덕이다. 우리 사회에서 하층 노동자로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서도 인식의 출발은 무거우나 마지막에는 예의 낙천이 드러나는데,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낙천일 것이다. “유목의 호프집 번뜩이는 입술들로 나타나/ 먹태 안주 한 접시로 아홉 명이 나눠 먹던/ 코리안 드림 두근두근 심장들/ 봉고차 대기하며 햇살 받는 중이다”. 사랑은 끌어안는 것 이런 낙천의 본질은 대상에 대한 사랑이 그 중핵일 것이다. 기억 속의 인물들이든 아니면 가족이든 시인의 시선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삽을 잃어버리고 “경비 아저씨”가 도둑을 색출하겠다며 분기탱천하지만 시적 화자는 도리어 이렇게 말한다. 사소한 도둑질은 눈감아야 합니다 흘린 물건 주워 간 거예요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을 겁니다 더 폭폭한 임자 만나라며 가슴 다독이며 ---「삽을 잃다」중에서 이것은 그냥 너그러움이 아니라 삶이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한 사랑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 “사소한 도둑질”을 해야 했던 상황을 이해하고 그 행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마음 씀씀이인데, 마지막 행이 그것을 증명한다. “폭폭함”으로 “사소한 도둑”과 시적 화자가 연결된 것이다. 즉 “사소한 도둑”과 시적 화자가 실제로는 별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나 나나 비슷한 시간과 상황을 살고 견뎌왔다는 것. 이런 내면이 없다면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동정하는 것이지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럴 때만이 구제역으로 죽어간, 정확하게는 인간들에게 “생매장된 같잖은 생명들”을 “꽃”으로 부를 수 있다. 죽임을 “꽃”으로 치환시키는 것은 언뜻 보면 한가한 인간의 목소리 같지만, “죽음으로 끌안던 모자母子 버크셔”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죽음마저 끌어안는 행위 자체가 사랑이다. 물론 그것을 시인은 도드라지게 발언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사랑들을 “함부로 덮을 수 없다”고 외친다.(이상 「구제역 꽃」) 사랑은 끌어안는 것이지 함부로 덮어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시인의 말 『사랑해요 바보몽땅』을 세상에 내놓는다. 출산된 놈들의 숫자가 팽창하면서 이제 책의 두께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의 눈여겨봄과 별도로 면벽 상태로 책과 싸우는 운명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기왕지사 벗들이 시집의 제목을 칭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년의 기록만을 통째로 출간하고 싶었는데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36년 훈장의 마감인 정년퇴임을 의식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태생적 조급증 탓이 더 크다. 그랬다. 출산 6개월만 지나면 또 새 책에 대한 금단현상에 시달리며 긴 세월 그 촉수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 서두름의 사내가 세상의 조급함을 탓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클랙슨 빵빵 누르는 세태를 나무라고 스마트폰이 정지되면 절망에 시달리는 그들의 표정을 질타하는 것도 허접한 노여움이리라. 빛의 속도로 흐르는 세월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탓도 있다. 그 연륜을 깊이 느끼는 상황들이 되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솔직히 말하면 초로의 몸 만드는 준비도 중요하다. 언제부터였나, 혼밥에 더 익숙하다. 깊은 밤, 나 홀로 독백에 빠지기 시작했으니 변신의 생애를 준비하는 게 확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