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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책소개

목차

1 젊은 베르터의 고뇌 요한 볼프강 폰괴테 | 임홍배 옮김
2 미국의 아들 리처드 라이트 | 김영희 옮김
3·4 돈 끼호떼 1·2 미겔 데 세르반떼스 | 민용태 옮김
5 라데츠키 행진곡 요제프 로트 | 황종민 옮김
6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 딩링 | 김미란 옮김
7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 이강은 옮김
8 게 가공선 코바야시 타끼지 | 서은혜 옮김
9 삐에르와 장 기 드 모빠상 | 정혜용 옮김
10 지하에서 쓴 수기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 | 김근식 옮김
11 전락 알베르 까뮈 | 유영 옮김

저자 소개 6

저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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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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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미겔 데 세르반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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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uel de Cervantes Saavedra

스페인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극작가이자 시인이라 불린다. 1547년 9월 29일 성 미겔의 날에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대학도시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일곱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로드리고 데 세르반테스는 가난한 외과의사 겸 접골사였으며 어머니 레오노르 데 코르티나스는 코르도바 출신이었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몇 달간 투옥되었던 세르반테스는 19세가 되던 해 유명한 에라스무스주의자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 들어가고, 1568년 펠리페 2세의 왕비인 이사벨 데 발부아가 사망하자 오요스가 발간한 문집에 시 네 편을 수록한다. 이는 세르반테스의
스페인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극작가이자 시인이라 불린다. 1547년 9월 29일 성 미겔의 날에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대학도시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일곱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로드리고 데 세르반테스는 가난한 외과의사 겸 접골사였으며 어머니 레오노르 데 코르티나스는 코르도바 출신이었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몇 달간 투옥되었던 세르반테스는 19세가 되던 해 유명한 에라스무스주의자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 들어가고, 1568년 펠리페 2세의 왕비인 이사벨 데 발부아가 사망하자 오요스가 발간한 문집에 시 네 편을 수록한다. 이는 세르반테스의 문학적 작업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문건으로 알려져 있다.

1569년 로마로 떠난 세르반테스는 교황청 소속 신부의 시종으로 일하다 이듬해 나폴리에서 스페인군에 입대한다. 스페인이 주도하는 기독교 연합군과 터키 사이에 벌어진 레판토 해전에서 그는 왼쪽 가슴과 팔에 총상을 입어 왼팔을 쓸 수 없게 된다. 레판토 해전에 참가한 후 이탈리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르네상스 말기의 문화에 심취했으며, 1575년 에스파냐 해군 총사령관이며 왕제(王弟)인 돈 후안의 표창장을 받고 동생과 함께 스페인으로 귀환하는 갤리선에 오르지만 터키 해적의 공격을 받고 포로가 되어 알제리로 끌려간다. 1576년 세르반테스의 주도로 포로 13명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길잡이의 배반으로 실패하고, 이후 세 번이나 더 탈출에 실패한다. 1580년 마침내 5년이라는 긴 포로 생활에서 해방된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에서 가족과 재회한다. 그때부터 희곡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한 그는 1583년 배우와 극작가들이 자주 다니는 타베르나에서 유부녀인 아나 비야프랑카와 사랑에 빠진다.1585년 9월 아나 비야프랑카는 딸 이사벨을 낳고, 그해 12월 37세의 세르반테스는 19세의 카탈리나 데 팔라시오스와 결혼한다. 첫 작품인 목가소설 『라 갈라테아』를 출판한 것도 이때였다. 이후 1587년까지 20∼30편의 희곡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1592년 징수된 곡물을 허가 없이 판매한 혐의로 세비야 감방에 투옥된 세르반테스는 옥중에서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를 구상한다. 1605년 출간한 『돈키호테』 1편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대열에 들어섰다. 불후의 명작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적 인물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적 인물 산초를 통해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냉철하고 심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 『돈 키호테』의 정식명칭은 『재치 발랄한 향사(鄕士) 돈 키호테 데 라 만차 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로, 작가 자신이 “유행하고 있는 기사(騎士)이야기의 인기를 타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와 같이, 당시 에스파냐에서 유행한 기사 이야기의 패러디에서 출발되었다.

이 작품의 중심은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의 두 성격의 창조로, 기사의 고매한 이상은 산초 판자의 실제적이고 비속한 물질주의와는 대조적이다. 21세기 먼 타국에서조차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돈키호테는 독자들 나름대로의 잣대로 인해 현실감각 없는 인물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주위의 시선과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뜻을 굽히지 않고 다가서는 인물로 재탄생되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그 시대까지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소설의 다양한 형식을 집결하여 문체뿐만 아니라 작품의 전개방식에서도 참신함이 돋보이는 훌륭한 걸작을 만들어냄으로써 유럽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 이후 『돈키호테』 2편, 『모범소설집』(1613), 『파르나소에의 여행』(1614), 『여덟 편의 희극과 여덟 편의 막간극』(1615)을 출간하였다. 만년에는 종교적인 결사에 가담하고, 1611년 프란시스코 데 실바가 창립한 아카데미아 셀바헤라는 작가 단체에 가입하였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인 1616년 4월 23일, 마드리드에서 수종으로 69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마드리드의 트리니타리아스 이 데스칼사스 수도원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지나 무덤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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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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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어린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어린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1899년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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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드 모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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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y de Maupassant

프랑스의 소설가로 1850년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1869년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자원입대했다. 종전 후 해군성에서 일하면서 어머니의 지인인 플로베르에게 문학 수업을 받으며 글을 썼다. 플로베르에게 소개받은 에밀 졸라, 투르게네프, 알퐁스 도데 등의 문인들과 친교를 나눴다. 1880년 에밀 졸라를 비롯한 6명의 작가가 펴낸 단편집 『메당의 저녁』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했다. 이 첫 작품으로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10년간 「목걸이」, 「텔리에의 집」, 「두 친구」 등 300여 편의 단편과 『
프랑스의 소설가로 1850년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1869년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자원입대했다. 종전 후 해군성에서 일하면서 어머니의 지인인 플로베르에게 문학 수업을 받으며 글을 썼다. 플로베르에게 소개받은 에밀 졸라, 투르게네프, 알퐁스 도데 등의 문인들과 친교를 나눴다. 1880년 에밀 졸라를 비롯한 6명의 작가가 펴낸 단편집 『메당의 저녁』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했다. 이 첫 작품으로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10년간 「목걸이」, 「텔리에의 집」, 「두 친구」 등 300여 편의 단편과 『여자의 일생』, 『벨아미』 등 6편의 장편을 펴내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신경 질환과 여러 질병을 앓다가 1892년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정신병원에서 수용되었다. 이듬해인 1893년, 4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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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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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이다. 반 독자들에게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작가, 평론가들에게는 가장 문제적인 작가, 문인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작가 제1순위로 꼽히는, 그 영향력에 있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작가이다. 풀 네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0월 30일(신력으로는 11월 11일) 군의관이었던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 빈민 병원에서 일했으며,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지주였다. 종교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어머니와는 달리, 잔혹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에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이다. 반 독자들에게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작가, 평론가들에게는 가장 문제적인 작가, 문인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작가 제1순위로 꼽히는, 그 영향력에 있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작가이다. 풀 네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0월 30일(신력으로는 11월 11일) 군의관이었던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 빈민 병원에서 일했으며,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지주였다. 종교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어머니와는 달리, 잔혹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작품 속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부재하거나, 무능하거나, 잔학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몸을 팔게 하거나, 자식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자녀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심지어 성적인 폭군으로 등장하거나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모스크바 빈민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의 많은 환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어린 도스토옙스키는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그때의 경험과 배움은 평생의 문학적 자산이 되었다. 가난의 심리학의 대가가 될 씨앗이 여기서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평생을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였다. 그는 돈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현실적”이지 못했던 사람이고, 자신이 감당할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떠넘겨지는 짐을 사양할 줄 몰랐다.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를 졸업했지만 문학의 길을 택한 뒤,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1846)로 당시 러시아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당시 비평계의 거물이던 벨린스키에게 ‘새로운 고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서 『분신』, 『주부』, 『백야』, 『네트치카 네즈바노바』 등을 집필하면서 혁명가들과 교루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년)에는 작가의 가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가난이 인간 심리와 삶에 끼치는 영향들, 그리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당대 최고의 문학 비평가 베를린스키로부터 “러시아 최초의 사회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런 젊은 날의 도스토옙스키에게 형제애 속에서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솁스키 서클은 목마른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반가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차르 니콜라이 1세의 반동 정치하에서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 금지 서적을 읽는 것들만으로도 총살감이었다. 1849년부터 공상적 사회주의의 경향을 띤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은 간신히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4년간의 감옥 생활과 또 4년간의 유형이 끝난 후, 도스토옙스키의 인간관 및 세계관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1840년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도스토옙스키는 1860년대 완전히 극우 보수주의자(슬라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유형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는 1861년 러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그의 형 미하일과 함께 잡지 [시대(Время)]를 창간했고, 1863년 [시대]지가 정치적 이유로 발행정지 조치를 받게 되어 폐간된다. 이듬해 형 미하일과 함께 두 번째 잡지, 더욱더 극우적이고 슬라브주의적인 잡지 [세기(Эпоха)]를 발간하여, 그 첫 호에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발표한다. 1861년 『학대받은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문단으로 복귀했다. 1866년, 후에 그의 부인이 된 속기사 안나를 고용하여 『노름꾼』과 『죄와 벌』을 속기하게 하여 발표하고, 1868년 그리스도를 닮은 “긍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고자 한 『백치』를, 1872년 『악령』을, 죽기 한 해 전인 1880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모두 [러시아 통보]에 발표했다. 『죄와 벌』은 가난하고 약한 자의 고통과 굴욕을 리얼하게 묘사한 걸작이며, 만년의 미완성 대작인 『카라마조프의 형제』(1880) 또한 당시 러시아 사회의 실상을 여실히 그리면서 종교와 인간의 본질을 헤집는다. 그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체호프,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부터 니체와 후대의 실존주의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후세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세계문학사 중 가장 위대한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1881년 1월 28일, 폐동맥 파열로 사망했으며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네프스카야 대수도원 묘지에 안치되었다.

러시아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가 말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구상에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제대로 접한 독자라면 베르댜예프의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의 작품을 통해 니체에서 현대의 실존주의로까지 그의 사상적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선과 악, 성(聖)과 속(俗), 과학과 형이상학의 양극단 사이에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사상가로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당대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제기하고 숙고한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변치 않는 삶의 영원한 가치를 전해 준다.

‘넋의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정치적·사회적으로 복잡화된 인간의 내면 심리를 그려내며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농노제적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서는 과도기 러시아의 시대적 모순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투영하면서 20세기의 사상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지하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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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알베르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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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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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리처드 라이트 Richard Wright
저자 : 요제프 로트 Joseph Roth
오스트리아의 소설가·평론가. 오스트리아 갈리시아의 소도시 브로디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에서 철학과 독일문학을 배우다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지원, 종군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빈과 베를린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프랑크푸르터 차이퉁』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에서 기고했다. 이 시기부터 소설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거미줄』(1923), 『싸보이 호텔』(1924),『반란』(1924) 등을 발표했다. 구약성경의 「욥기」의 주인공 욥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욥, 어느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1930)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몰락을 비판적 관점에서 주도면밀한 정확성으로 그려낸 대표작 『라데츠키 행진곡』(1932)을 출간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되자 망명하여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빠리의 호텔에 자리를 잡고 집필활동을 계속했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 『타라바스』(1934) 『어느 살인자의 고백』(1936) 『카푸친 황제묘』(1938) 『성스러운 술꾼 전설』(1939) 등이 있다. 1939년 친구이자 극작가인 에른스트 톨러의 자살 소식을 듣고 쓰러졌고, 나흘 후 빠리 네께르 빈민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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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국 여성작가. 『태양은 쌍간 강을 비추고』 『쏘피의 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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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일본 작가. 『당 생활자』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4800쪽 | 5660g | 145*210mm
ISBN13
9788936469948

책 속으로

고전의 새로운 기준, 창비세계문학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개성이 매몰되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만능과 승자독식을 강요하는 자본주의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현대사회는 더 황폐해지고 삶의 질은 크게 훼손되었다. 경제성장만이 최고의 선으로 인정되고 상업주의에 물든 문화소비가 삶을 지배할수록 문학은 점점 더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문학의 자리가 위축되는 세계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야말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화두를 다시 던지고 사유의 모험을 떠나야 할 때다. 우리는 그 여정에 반드시 필요한 벗과 스승이 다름 아닌 세계문학의 고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전에는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 쌓아올린 공동체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고, 세계와 존재에 대한 탁월한 개인들의 치열한 탐색이 기록되어 있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름다운 도전과 눈물이 아로새겨 있기 때문이다. 이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보고이자 살아 있는 문화유산을 되새길 때만 개인의 일상에서 참다운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고 근대적 삶의 의미와 한계를 성찰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창비세계문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세계문학의 참의미를 되새겨 ‘지금 여기’의 관점으로 우리의 정전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전’이란 본디 고정된 목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진 처소에서 새롭게 재구성됨으로써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전세계 문학들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면서 국가와 민족, 언어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 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근대를 깊이 성찰한 서양문학뿐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중동과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 문학의 성취를 발굴하고 재평가하는 것 역시 세계문학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려는 창비의 필수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여러 전집들이 나와 있는 세계문학 시장에서 ‘창비세계문학’은 세계문학 독서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자 한다. 참신하고 폭넓으면서도 엄정한 기획, 원작의 의도와 문체를 살려내는 적확하고 충실한 번역, 그리고 완성도 높은 책의 품질이 그 기초이다. 독서시장을 왜곡하는 값싼 유행과 상업주의에 맞서 문학정신을 굳건히 세우며, 안팎의 조언과 비판에 귀 기울이고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세계문학이 무엇인지 되묻고 갱신해나갈 것이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하고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담론을 주도해온 창비가 오직 좋은 책으로 독자와 함께해왔듯, ‘창비세계문학’ 역시 그러한 항심을 지켜나갈 것이다. ‘창비세계문학’이 다른 시공간에서 우리와 닮은 삶을 만나게 해주고, 가보지 못한 길을 걷게 하며, 그 길 끝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젊은이와 청소년 들에게 삶의 소중함과 기쁨을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목록을 쌓아갈수록 ‘창비세계문학’이 독자들의 사랑으로 무르익고 그 감동이 세대를 넘나들며 이어진다면

--- 발간사 중에서

출판사 리뷰

‘창비세계문학’ 씨리즈 1차분 10종 11권이 창비에서 출간됐다. 최초의 세계문학이라고 불리는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시작으로 7개 언어권(독어권, 러시아어권, 불어권, 스페인어권, 영미권, 일본어권, 중국어권) 10종 11권의 문학작품을 1차분으로 엄선하여 내놓는다.

세계문학의 새로운 기준, 창비세계문학
엄정하고 참신한 기획, 적확하고 충실한 번역, 세대를 넘나드는 감동
창비만의 열정과 고집으로 고전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담론을 주도해온 창비는 오늘날 타인, 타집단, 타지역, 타문화 간의 소통의 가능성이 세계문학에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해 젊은 독자들이 꼭 읽어야 하는 작품들을 ‘창비세계문학’ 씨리즈로 출간한다.

1999년 교양문고 『설득』을 끝으로 잠정 중단되었던 창비의 외국문학은 2004년 전후 외국소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기획 논의로 이어져 2004년 8월 단행본 출간이 시작되었고, 2005년 세계문학전집 기획이 본격화되었다. 5년간의 기획과 편집의 일환으로 2010년 1월 창비세계문학 단편선’(전9권)이라는 결실을 맺고, 이를 바탕으로 고전과 현대의 문제작, 장편과 중단편선집 및 어권별 시 선집을 아우르는 ‘창비세계문학’ 전집 씨리즈 기획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2011년 8월 창비세계문학 기획위원회(7개 어권 기획위원 7인)를 발족한 이래 오늘의 관점에서 예술성·문학성·대중성을 겸비한 고전을 재평가하여 새롭게 펴내고, 고전의 심오함과 현대성이 접목된 현대의 새로운 작품을 발굴해나가기로 방향을 다듬어갔다. 국내 초역작의 비중을 차차 높여 30~40%의 비율을 유지하도록 하며,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인도, 아프리카 문학 등 비서구권문학의 주요 작품을 기획하고, 7개 어권별 대표시선, 중단편선집 등을 고루 안배하여 명실상부한 세계문학 씨리즈를 선보이기로 했다.

이를 위하여 7명의 어권별 기획위원들이 작품 선정에서 역자 섭외, 번역 점검까지 책임지고 편집 실무진에서는 해당 어권 전공자에게 꼼꼼한 원서대조를 의뢰하고, 기획방향에 걸맞은 정밀한 편집을 진행하고 있다.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를 작품마다 배치해 작품의 이해를 돕고, 국내 독자에게 생소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작품 외 읽을거리를 부록으로 더하여 풍성한 독서가 되도록 했다. 고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고급스러운 디자인 또한 ‘창비세계문학’을 찾는 독자들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문학 씨리즈

‘창비세계문학’은 세르반떼스, 괴테, 발자끄, 똘스또이 등 세계 주요 고전 작가들의 대표작 및 미번역된 걸작 등을 엄선하는 한편, 20세기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한 현대의 문제작들을 새롭게 발굴하여 오늘의 독자들이 우리 시대의 첨예한 문제와 대결하는 데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다. 이를 위하여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일본과 중국, 인도, 아프리카 문학까지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세계문학 씨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국내 초역작들인 시마자끼 토오손의 『신생』, 카메룬 작가 페르디낭 오요노의 『어느 늙은 흑인과 메달』, 우루과이 작가 마리오 베네데띠의 『휴전』, 아르헨띠나 작가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아르헨띠나인들과 함께한 블랙 노벨』, 브라질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등을 기획·번역 중이며, 일본 작가 후루이 요시끼찌의 『요오꼬』, 구라하시 유미꼬의 『성소녀』, 이란 작가 마흐무드 다울라타바디의 『대령』, 시리아 작가 하림 바라카트의 『먼지의 나날』, 인도 작가 비샴 사니의 『맨션』, 남아프리카 여성작가 베시 헤드의 『권력의 문제』, 짐바브웨 작가 첸제라이 호베의 『뼈들』, 케냐 작가 응구기 와 씨옹오의 『십자가 위의 악마』 등을 검토 중이다.

언어권별 대표시선과 중단편선집의 지속적인 발간

‘창비세계문학’은 장편소설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의 세계문학 기획의 틀에서 벗어나 7개 언어권별 대표시선(『라틴아메리카 대표시선』『러시아 현대 대표시선』『중국 현대 대표시선』『미국 현대 대표시선』), 주요 사조별 대표시선(『프랑스 상징주의 시선』『영국 낭만주의 시선』)을 기획·번역 중에 있다. 아울러 이미 2010년 출간해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창비세계문학 단편선’을 바탕으로 주요 작가의 중단편선집(영국의 D. H. 로런스, 프랑스의 꼴레뜨, 아르헨띠나의 꼬르따사르, 독일의 클라이스트, 호프만, 고트프리트 켈러, 러시아의 뚜르게네프, 고골, 체호프, 중국의 루쉰, 빠진, 왕샤오뽀, 일본의 카와바따 야스나리, 오오바 미나꼬 등)을 지속적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최고의 번역, 새로운 해설

‘창비세계문학’은 해당 작가를 전공한 중견 학자와 최고의 번역진으로 여러 세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최량의 번역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아울러 작품의 시대적 맥락과 현재적 의의를 깊이 있게 짚어주는 새로운 해설로 시대와 경계를 넘어선 작가와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배려할 것이다.

추천평

창비세계문학은 가을 같다. 열매들이 영글었다. 엄밀한 선택은 기본, 번역의 재생기술, 무한책임으로서의 편집이 돋보인다. 낡은 정전주의(正典主義)를 다 털어냈다. 숙성의 경지다.
고은(시인)
근년에 이르러서도 외국문학 출판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문학을 선정하고 편집했기 때문에 창비의 작업에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이다.
황석영(소설가)
여기 새로운 창비세계문학, 불멸의 작품들을 통해 인생이 웅장해지고 내밀해지는 특별한 소통의 시기를 갖게 될 것이다. 언젠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신경숙(소설가)
번역과 정선, 그것이 내가 창비세계문학을 선택해 읽는 이유이다. 시대정신을 지켜나가는 창비의 고집과 출판문화를 알기 때문에 창비세계문학을 더 신뢰하고 기대하게 된다.
공지영(소설가)
고전은 우물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내 영혼의 우물을 하나 파는 것이다. 가장 깊은 우물, 퍼낼수록 더 맑은 물이 샘솟는 우물을 창비가 독자들에게 선사하게 되었다.
공선옥(소설가)
젊은 날에 세계문학을 집중적으로 읽은 이는 누구나 그 영향이 일생을 통해 지속된다는 걸 느낀다. 이 고전 읽기는 특히 자라는 청소년의 정신적?감성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현기영(소설가)
한때 우리를 흥분시켰지만 덧없이 스러져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이야기!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문학! 그것이 바로 창비세계문학이다.
천명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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