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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강지이
창비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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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39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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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여름
새의 밤
한눈팔기
VOID
산책
서랍
수영법

궤도 연습 1
그림자 극장
베개
그리고 너는 생각했다
명랑
Plastic Home ground
통로
야간비행
궤도 연습 2
수술
남겨진 사람들
망원경과 없는 사람
구구의 약력
궤도 연습 3
이곳에서 보는 첫번째

제2부

초록의 뼈
Mobiles
수압
자장가
VOID
Turquoise
돌고래
밤나무 뒤 동물의 형형한
비가 지나가면 알림을
바다비누
LEGO
사찰 가는 길
설국(雪國)
궤도 연습 4
캠핑 일기
여름 샐러드
겨울
VOID

해설|김태선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1993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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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90g | 126*200*9mm
ISBN13
9788936424626

책 속으로

그곳에 영화관이 있었다

여름엔 수영을 했고 나무 밑을 걷다 네가 그 앞에 서 있기에 그곳에 들어갔다 거기선 상한 우유 냄새와 따뜻한 밀가루 냄새가 났다 너는 장면들에 대해 얘기했고 그 장면들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두워지면 너는 물처럼 투명해졌다 나는 여름엔 수영을 했다 물 밑에 빛이 가득했다

강 밑에 은하수가 있었다
--- 「여름」 중에서

서랍을 하나 장만했어요
바닥에 내려놓는
희고 네모난 것입니다

무엇을 넣어야 할까

넣으려 다짐한 것들은
들어가지 않아서

요즘엔 그래서

서랍에 저를 넣어두고 다니며
서랍만큼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랬더니 모두들
사람 되었다며
칭찬해
줍니다
--- 「서랍」 중에서

심각한 일을 말해도
사람들이 웃었다

(…)

사람들 말이 너무 많아요
하루 정도는 세상의 모든 인간이
입을 열지 못하면 좋겠어요

입을 여는 대신
주변에 있는 문을
열고 닫았으면

문을 열고 닫는 것에
지친 사람들이

그대로 안에 들어가
영영 나오지 않는다면
--- 「명랑」 중에서

퇴근길 열차 안에서 노을을 얼굴에 담은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 같이 빛나는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집의 불을 밝히러 거의 사라진 노을을 데리고 간다
너무 밝은 것은 함께 갈 수 없다

--- 「궤도 연습 3」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여름 샐러드를 먹으면서
흰 눈이 쌓인 운동장을 함께 달리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고, 또 있었더라도
우린 앞으로 잘 달릴 수 있다.
그런 믿음은 이상하게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2021년 여름
강지이


삶의 풍경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감각과 시선은 색다르다. 시인은 “나는수평으로함께잠겨보려고합니다”(「VOID」)라고 말하면서 ‘지금-여기’의 현실 안에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이루어내고자 한다. “상한 우유 냄새”와 “따뜻한 밀가루 냄새”(「여름」)가 공존하던 어느 한 순간의 추억을 단지 재현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면에서 숨 쉬는 존재들을 다시금 불러내어 세계를 탐색해나간다. 시인은 “물처럼 투명히 빛나는 날들이/지속되지 않아도” “발이 들어맞을 수만 있다면//그곳이 어디든 이렇게/서 있을 수 있다”(「설국(雪國)」)는 긍정의 마음으로 내일을 향해 시선을 옮겨간다. “빛나는 물”(「궤도 연습 3」) 위를 “고요하게 헤엄치는 나뭇잎과 나뭇가지”(「수영법」)처럼 뻗어나가는 자유로운 생각들을 펼치며 삶의 변화를 꿈꾸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간다.

삶의 일정한 틀에 갇힌 채 살아가는 시인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이상한 일들이 매번/일어나는”(「명랑」) 현실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수압」)라고 말한다. 때로는 “부당하다 느껴도 아무 항의를 할 수 없고 해도 소용이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초록의 뼈」)다는 비애감에 젖기도 한다. 그렇다고 절망에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성능 상태 60% 미만”인 무력한 상태에서도 시인은 “남아버린 그 거대한/시간들을 나는//지내야 한다//꺼지지 않아야 한다”(「Plastic Home ground」)는 의지를 다진다. 그와 함께 삶을 옭죄는 틀에 틈을 내면서 “오늘은 내가 매번 살아 있고/그것이 이상하다는//생각을 시작/시작//시작한다”(「수압」). ‘시작’이라는 말이 행을 달리하여 세번이나 쓰인 이 독특한 어법을 문학평론가 김태선은 “생각을 시작(始作)하고 시작(試作)하고 시작(詩作)한다”로 해석한다.

시인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물속에서/잃어버린 것을/나무 속에서 찾는 사람”(「설국(雪國)」)이라 했으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은 아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더이상/얽매여 슬퍼하지/않”(「바다비누」)기로 하면서 현재 속에서 “열심히 무엇을 쓰려고”(「비가 지나가면 알림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시집 마지막에 이르러 여백으로 표현된 ‘큰 공간’과 만나게 된다. ‘VOID’는 빈 공간을 뜻하는 건축 용어이다. 그러나 시인이 구성해낸 이 공간은 단순히 텅 비어 있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삶의 본질과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잠재성의 공간이다. 미래를 향해 열린 이 ‘시작’의 공간에서 시인은 “어떻게든,/아무쪼록/잘 살자”(「VOID」)는 간절한 소망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고, 또 있었더라도/우린 앞으로 잘 달릴 수 있다”(시인의 말)는 믿음을 간직한 채 새로운 마음으로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진실한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추천평

일찍이 강지이의 등단작 「수술」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폐허’가 과연 그의 것인가 할 정도로 놀랐고 그 조숙한 ‘아이’의 정체가 내내 궁금했었다. 첫 시집을 일람해보니 알 듯했다. 그는 유년기에 ‘동네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를 친구로 사귄 이래 멈출 수 없는 폐허론자였으리라 추측해본다. 그러나 그가 “보석 안쪽으로 서둘러 사라지는/물고기의 꼬리를 본다”(「Turquoise」)고 독백할 때 그 폐허의 매혹은 우리가 해설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강지이의 시는 설치 작가의 설계도를 방불케 할 정도의 참신한 공간을 무심한 듯, 심드렁하게 구성한다. 관객인 우리는 그가 해석하여 넌지시 제시하는 공간을 따라가면서 그가 설치해둔 ‘벽’과 ‘창’을 통해 처음 보는 ‘여름들’을 만끽한다. 여름이란 무섭게 자라나는 ‘폐허’가 아니던가. 그의 시는 우리 생애의 여름이 우리가 아는 그 성장이 아니라 ‘무성해지는 폐허’는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너무 밝은 것은 함께 갈 수 없다”(「궤도 연습 3」)는 선언이 아름답다. -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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