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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012 눈물단지 013 장님 물고기 014 불탄 집 016 가을비 017 처음 보는 저녁 018 번개에 불이 이는 나무뿌리들 020 사다리를 놓아라 아이들아 022 햇살 깎는 소리 024 봄 빨래 026 불새 027 나는 나무 속에서 다시 추워지고 싶다 028 초저녁 달 029 지붕의 빗소리를 사랑하자 제2부 032 너무도 살고 싶은 033 별 헤는 밤 034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그런 날 035 가을에 고향 산에 올라 036 딸기 그릇 038 도마뱀 042 향기 044 예감은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046 나는 아직 서둘러 갈 곳이 없네 047 붉은 아침 048 오후의 공원 050 먼 냄새 052 외로운 춤 054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055 쌀뜨물 항아리 056 버스가 옛날에 살던 동네를 지나가는 동안 058 풍요로운 가난의 새벽 060 길에 관하여 065 허공이 따뜻하다 제3부 068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한 메모 070 겨울 갈대밭 071 뱀 072 가을밤 073 휴일 오후 식탁에는 074 봄이 와도 늦게 피는 봄꽃 075 창 076 새들이 겨울 창밖으로 날아가네 078 텅 빈 겨울 창문에서 079 공중에 홀린 사람 080 바다 081 구멍 082 빛의 화살―설날 아침 동갑내기 조카와 마당에서 087 찐빵집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 088 신발장 089 달 속에 두고 온 노트 090 불에 타는 은행나무 해설 092 김춘식 허공에 바쳐지는 꽃 |
朴瑩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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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시인의 신작 시집 [불탄 집]이 (주)천년의시작에서 2013년 9월 20일 발간되었다. 박형준 시인은 1966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평론집으로 [침묵의 음], 산문집으로 [저녁의 무늬] [아름다움에 허기지다]가 있으며, 동서문학상, 현대시학 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박형준 시인의 [불탄 집]은 시인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헌사’이면서 동시에 그 이상의 것이다. 즉 이 시집은 “자식과 가족을 짝사랑하여 언제나 가슴에 불을 품고” 살아가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관련된 “재발견된 추억”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재발견된 추억”들은 시인의 눈부신 역동적 상상력을 통해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담백하게 더할 나위 없이 참담한 우리 생의 아픔과 상처 들을 감싼다. 한마디로 박형준 시인의 [불탄 집]은 근래 보기 드문 곡진한 서정과 찬연한 상상력의 결정체다. 시인의 산문 어머니는 ‘불탄 집’이다. 어머니는 평생 심화(心火)를 가슴에 안고 사셨다. 이제 그 집은 불타 사라졌지만 그 심화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속의 불, 어머니의 가슴에 타는 그 불을 누가 꺼뜨릴 수 있었겠나. 내가 시를 쓰는 것은 그런 어머니의 가슴에 팔찌를 하나 놓아 드리는 일이었다. 자식과 가족을 짝사랑하여 언제나 가슴에 불을 품고 사는 여인, 그 여인의 가슴에 시라는 팔찌를 내려놓은 일은 그 불을 다스리고자 하는 일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여자 지귀(地鬼)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시를 쓴다 하여 무슨 왕족이 될 수 있는 것도, 더구나 여자 임금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상력이 한계가 없다 한들 현실의 뿌리까지 바꿔 낼 수 있겠나. 다만 그 뿌리에서 피어난 꽃을 조금은 아름답게 허공에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쉬페르비엘의 시를 일컬어 조르쥬 뿔레는 “보존된 수천의 기억보다 재발견된 추억 하나에 더 많은 기쁨이 있다”라고 평을 내렸다는데, 내가 어머니의 가슴에 놓아 드리려 했던 시라는 팔찌도 그 말과 먼 것 같지는 않다. 내 시의 팔찌는 어머니의 수천의 심화가 하나의 추억으로 재발견되기를, 그리하여 가족과 나를 짝사랑한 그녀의 인생이 조금은 찬란해지기를 바라는 답례품이다. 이제 시라는 팔찌가 된 어머니의 추억은 세상의 만물을 비추어 준다고 시를 쓰는 한은 믿고 또 믿어야만 할밖에 나로서는 도리가 없다. 어쩌다 보니 지난 시집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이번 시집은 또 하필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씌어진 시집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두 시집은 그걸 기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한 팔찌 한 쌍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시집은 지난 시집에 이어 조금은 일찍 내는 시집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가깝고 가장 멀기도 한 여정으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빛도 태양도 더 이상 없을 때에 어머니의 가슴에, 그리고 그녀의 무덤 위에 놓인 그 팔찌가 비추어 주는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그 팔찌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존재 이유를 조금은 확인할 수 있지 않겠나. 아들이 이승에서 고생만 하다가 저승으로 간 어머니에게 주는 답례품이 시라는 팔찌라면―이승에서 수천의 고생의 기억만 가진 그녀의 재발견된 추억 하나―어머니의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그러나 어쩌겠나. 시를 쓰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심화를 아로새길 팔찌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고, 나 또한 내 심화로 불타 버렸을 것이기에, 어머니를 위한 팔찌는 결국은 나를 위한 팔찌이기도 한 셈이다. 이제는 어머니와 나의 심화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심화가 승화된 불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시를 쓰고 싶다.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은 망각의 변방에서 승승장구 돌아올 밝은 시를 쓰는 것은 언제나 나의 꿈이었다. 열렬하게 지귀의 시를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