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에 ‘첫정’과 ‘양은 대야’와 ‘쇠죽’과 ‘늙고 지친 아버지’를 아프게 간직하고 있는 영혼이 있다. 그가 이 사이비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시쓰기로써 자신을 가누고자 할 때 가능한 몸가짐은 어떤 것이겠는가.
신미나의 시집에는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이를 수 있는 어떤 안간힘과 참됨의 기척들이 갈피마다 묻어 있다.
농경적 삶의 배경과 지난 연대의 서정시 쓰기가 달성했던 언어와 미감의 한 진수가 이 젊은 시인 속에 생생히 보전되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나아가 그 섬세함이 늙거나 닫혀 있지 않고, 오늘의 나날을 향해 물오른 채 반짝거리며 살아 있다는 것은 더 갸륵한 일이다.
이제 저마다 새로워서 결국 누구도 새롭지 않은 시대, 열매에 팔린 나머지 아무도 뿌리를 돌아보지 않는 이상한 세계로 우리는 밀려오고 말았다. 응분의 깊이를 지니지 못한 ‘새로움의 흉내’들이 도처에서 진정한 새로움을 대신한다.
그는 옛것이라 버리지 않고, 새것이라 혹하지 않는 채로, 독실하게 견뎌왔다. 손쉬운 양자택일은 정신의 나태함일 뿐 답이 아닌 것이다. 갈등을 자기 안에 품고 진득하게 견디는 일, 그 긴 진통의 자리에 스며 번진 진물 같은 것, 그쪽이 시라면 시의 길일 터이다. 이 지점이 어찌 한국어, 한국시의 고투의 한 현장이 아니겠는가.
‘비린 낮달’의 관능을 한켠에 지닌, 덜 새로워 오히려 새로운 이 시인에 대해 뜨거운 기대를 갖는 까닭이다.
김사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