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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조금씩 지워지는 오늘
겨울이 놓고 간 수선화/ 결/ 전복은 물의 피부를 갖고 있었지/ 김밥/ 불협화음/마지막 몸짓/ 사라진 기억/ 꽃 원피스 꽃잎이 접힐까 봐/ 고장난 풍경이 된 언어들/ 돌아올 수 없는 것들/ 반닫이/ 꿈 발레리나를 죽이다/ 슬픔에 길들다/ 그냥/ 방전/ 친구는 오수 2부 풀 향기의 날숨과 산책자의 들숨 왜 몰랐을까/ 리모델링/ 낡은 잠바/ 지니/ 잃어버린 엄마/ 주인 없는 무덤/ 가로수 길/ 백지웃음/ 동행/ 보이스피싱/ 금자/ 폐역廢驛/ 수조/ 그녀의 우울/ 당신은 그곳에 있습니다/ 백 년 후의 나/ 단팥빵 3부 순간순간 어둠의 틈에 끼는 것을 보았다 북/ 지워지지 않는 하루/ 육십 대의 수다/ 채굴되지 않은 어느 날/ 생각이 방전되다/ 몰디브/ 미션/ 길 위의 기도/ 지워진 얼굴/ 색시비/ 탐색의 시간/ 흑백사진/ 유언장을 품은 당신/ 생강차가 된 종이/ 절반은 사라지고/ 목마른 등/ 이름을 짓다/ 폐기된 하루 4부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다시 새장으로 걸어갑니다 자미원역/ 그리운 망각/ 속 터져/ 이력서에 아직 발이 시리다고 적었다/ 우리들의 백구/ 창문에 가을 하늘 들여놓고/ 독거노인/ 새벽 두께/ 여자의 나이테/ 시한부/ 화살기도/ 돌아오지 않는 시간/ 그때 그 만두는 라디오였네/ 숨비소리/ 네잎클로버 없는 오월/ 호스피스/ 늙지 않는 책상 서랍 해설 _ 현재를 구성한 과거의 시간과 축적된 질서 마경덕(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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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결 속에
몇 겹의 고요가 앉아 있고 조금씩 지워지는 오늘 --- 「결」 중에서 살아있는 너를 손질하며 비릿한 물의 피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다시 돌아가지 못할 고향 칼끝에서 너의 맥박 소리 들려오고 묻어온 물빛마저 거뭇거뭇했지 --- 「전복은 물의 피부를 갖고 있었지」 중에서 숨찬 바람과 줄다리기하던 풋풋한 햇살이 찻잔 속으로 내려앉자 푸릇푸릇한 연두와 새소리가 섞여 가슴에 봄이 들어왔다 --- 「겨울이 놓고 간 수선화」 중에서 내가 머물렀던 곳에 불이 켜지면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다시 새장으로 걸어갑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그곳의 밥을 먹은 탓입니다 --- 「불협화음」 중에서 내가 잃어버린 조각들 네가 언제나 간직해 줘 너는 나니까 --- 「슬픔에 길들다」 중에서 한 줌의 고요가 벽에 걸려 있고 뿌리 없는 고통이 숨결처럼 차오르는 그냥이라는 말 한마디 --- 「그냥」 중에서 봄볕 좋은 산등성이에 온기를 묻던 날 그녀가 남기고 간 웃음이 깃털 같아서 나는 산비둘기처럼 울었다 --- 「잃어버린 엄마」 중에서 내일이면 다시 걸쳐 입어야 할 옷 산산이 부서지는 포말 위로 어디선가 흘러갈 곳을 찾지만 몸의 절반은 사라지고 없었다 --- 「절반은 사라지고」 중에서 가장 높은 것과 가장 낮은 곳을 넘나들며 어떻게 살았는지 나를 보고 있다 --- 「탐색의 시간」 중에서 어루만져 줄 수 없는 가려움이 산다 쓸쓸함이 한 자씩 내려앉아 있어도 늘 꿋꿋하다 --- 「목마른 등」 중에서 안개도 출입증이 있을까 출근 도장을 길 위에 찍는다 --- 「이력서에 아직 발이 시리다고 적었다 」 중에서 오월의 모퉁이는 지워도 지워도 하얀 꽃잎에 물들어 지워지지 않는다 --- 「네잎클로버 없는 오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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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수 없는 것들」은 시간의 비가역성 앞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날의 기억은 현재의 고독과 과거의 상처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우는 밤”이라는 깨달음은 시간의 잔혹함에 대한 시인의 안타까운 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간의 잔혹함은 소외 노인을 다룬 「독거노인」과 「호스피스」 같은 작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경험을 그린 「호스피스」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목격되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살아있는 시간과 죽어있는 시간을 점검한다”는 구절에서는 시인의 예리하고 냉정한 관찰력과 따뜻한 깊은 연민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자미원역」과 「북」에서 시인은 폐허가 된 공간과 변화된 존재를 통해 시간의 흔적을 탐색한다. 폐역이 된 자미원역은 “지금 폐역은 폐업 중이다”라는 간결한 표현을 통해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상징한다. 한편 「북」에서는 “산짐승이었다가” “북이 되어” 우는 존재를 통해 죽음 이후의 변화와 지속을 얘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소멸이 아닌 다른 형태의 존재 가능성을 암시한다. 송영희의 시는 상실과 상처, 결핍과 폐허를 소재로 하면서도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시인의 시선에는 깊은 연민과 이해가 담겨 있다. 「그냥」에서 “그냥”이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뿌리 없는 고통”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이나, 「생각이 방전되다」에서 “그림자가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희미한 위안을 찾으려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삶의 상처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을 탐구한다. 그의 시는 상실과 결핍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 조건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절반은 사라지고』는 현대인의 상실감과 소외감을 진솔하게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시집이다. 송영희의 시는 상처 입은 존재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깊은 성찰을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동시에 선사한다. 송영희 시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전일성全一性을 통해 각별한 자신의 언어를 완성해 간다. 퇴적층의 단면을 통해 흘러간 시대를 유추하듯 절실하고 애절했던 것들이 “기억의 심층”에 쌓여있다. 편입되지 못한 유년의 단편적인 기억이 발화發話되는 그곳에는 기억의 부스러기들, 놓쳐버린 것들이 웅크리고 있다. 정해진 시공간 내에서 ‘인과 관계’로 이어지는 실제 사건들은 ‘상실’과 ‘부재’이다. 시인은 비가역성을 띤 불완전한 두 대상의 공통분모를 찾아 카테고리를 엮어나간다. 불행을 밀어내지 않고 상처와 대면하며 시적 형상성을 획득한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운지, 돌아오지 못하는 존재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멀리 파문을 일으키는지, 시집 『절반은 사라지고』는 소멸되어 가는 진정한 행복과 “인간의 존재가치”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묘사와 진술이 조화를 이루는 송영희 시인의 시편들은 인식적 죽음인 ‘망각’까지도 소통의 범위 안으로 소환하여 존재하게 만든다. 타인을 배려하고 나눔을 좋아하는 시인의 따뜻한 품성은 가난하지만 넉넉한 부모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불편한 심상心象과 마주하며 내성을 쌓아가는 시인은 감동적인 서정적 구조로 독자와 소통한다. 사소한 것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아름답게 반짝이며 “삶의 의미”를 전해준다. 송영희 시인의 첫시집 「절반은 사라지고」는 삶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희로애락’을 통해 잊고 살아가는 “삶의 진정성과 인간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 해설 _마경덕(시인) 시인의 말 시는 따뜻한 밥이다 허기가 질 때마다 맨 먼저 시가 내게 다가왔다 한 그릇의 생각을 껴안고 추운 밤을 보낸 적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