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타지마할
2. 말 3. 시가 오는 새벽 4. 민지의 꽃 5. 시를 찾아서 6. 애월 7.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8. 놀무갱갱이 9. 雨田 선생 영전에 10.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11. 봄소식 12. 청도를 지나며 13. 갠지스 강 14. 술꾼 15. 씻김 (...) |
정희성의 다른 상품
|
시가 오는 새벽
그대, 알알이 고운 시 이삭 물고 와 잠결에 떨구고 가는 새벽 푸드덕 새 소리에 놀란 나뭇잎 이슬을 털고 빛무리에 싸여 눈뜬 내 이마 서늘하다 --- p.10 |
|
사람들 품속에서 신호음이 울린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리는 저 소리 나는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남의 안주머니에서 들리는 신호음이 이상하게도 나를 불안에 떨게 한다 어머니가 암 수술을 받다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고 부도를 낸 동생의 빚보증 때문에 봉급을 차압해간 대한보증보험의 이진우가 거는 전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잘못하면 이 겨울에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식구들이 거리로 나앉을지도 모르는데 속수무책인 나는 전화기 옆에 있기가 싫어서 한가로운 사람처럼 거리를 쏘다니지만 내 마음과 영혼까지 압류해간 불안한 신호음은 끝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어디로 가야 하나 저승에 가면 거기에도 나를 찾는 전화가 와 있을지 모른다 '여보세요? 정희성씨 거기 와 있나요?' '그런 사람 없다고 해. 오늘 아침에 이승에 갔다고 그래. 이승으로 가서 다시 안 온다고 그래.' ---p. 42-43 |
|
발표 안된 시 두 편만 /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 / 부자로 살고 싶어서 / 발표도 안한다 / 시 두 편 가지고 있는 동안은 / 어느 부자 부럽지 않지만 / 시를 털어버리고 나면 / 거지가 될 게 뻔하니 / 잡지사에서 청탁이 와도 안 주고 /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 p.15 |
|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간행하고 13년 만에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출간한 정희성 시인이 다시 10년 만에 새 시집 『詩를 찾아서』를 간행하였다.
과작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정희성 시인은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에서 “발표 안된 시 두 편만/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뿐만 아니라 모든 말들이 허사를 남발하는 이 시대에 시인이 시 두 편을 가슴에 품고 있고자 하는 것은 시의 청빈정신이다. 시 두 편 이상이 남아 있지 않을 땐 잡지사에서 청탁이 와도 시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까닭을 시인은 “좀 잘 살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은 ?말?이란 시에서 보듯 “세상에 입 가진 자 저마다 떠들어대서” 말을 하지 않고 참는 버릇을 들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은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애마냥 말이라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이 시집은 그러므로 새로 말문을 튼 정희성 시인의 첫시집과도 같다. 시를 30년 넘게 써온 시인이 아직도 언어와 시에 익숙하지 않다는 발언은 닳고 지친 이 세상에 신선한 기쁨을 준다. 시인은 “나는 말하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있고 풍요로운 듯 보이지만 공허한 내용들에 대한 부드럽고 숙연한 어조이다. 시인에겐 시를 찾는다는 것은 새로 말을 배운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여 우리들의 시는 피곤하고 과부하 상태인지 모른다. 시인은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는 이 시대에 말의 순을 다시 키우고 그 의미를 다시 찾는다. 그 과정에서 시인은 ‘사랑’을 발견한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시집의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고은 시인은 <시가 오는 새벽>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하였다. 밤새도록 시의 이삭을 물고 오는 것은 신도 새도 아니다. 바로 시인의 가슴 밑창에 남아 있는 ‘사랑’이다. 이 사랑 앞에서 누구나 처음 말을 배우게 되며 떨림을 갖게 될 것이다. 표제작 <시(詩)를 찾아서>에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이면서 “끝없이 저잣거리 걷고 있을 우바이/그 고운 사람을”일 거라고 한 것도 그 까닭이다. 시인은 방선(放禪)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집 곳곳에 아름다운 순간과 은은한 묘사가 숨어 있다. 그대가 사라진 자리에 섬광처럼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서울역 지하도에서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느끼며, 그대 눈속의 보리암을 보고, 머언 어느 하늘가에서 이렇게 내 마음 출렁이게 하는 정황들은 “채 눈뜨지 못한/솜털 돋은 생명을/가슴속에서 불러내”(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려는 밀어들 때문이다. 이 시집엔 시인의 원(願)이 숨어 있다. “어느 하늘 아래/사무쳐 그리는 이 있음을/기억하소서”(일월(日月)) “불이문(不二門) 저 너머/하늘대는 흰 빨래”(저 너머) 등에는 시인이 시를 찾는 길이 보인다. 때로는 “어둠속에 동그마니 장승이 되어” 때로는 “울 밖에 내다 건 조등(弔燈)” 보며 그리고 갑자기 운주사에 가서 “못난 제 얼굴에도/세차게 비를 뿌려”달라고 기구한다. 자서에서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세상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말과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