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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르테 運動의 世界化
今日의 文學, 明日의 文學 문예 월평-산문적 월평 無? 文藝 作品과 無? 文藝批評-동무 懷月에게 寫實主義 問題 文藝 時代觀 斷片 辯證的 寫實主義-樣式 問題에 對한 草稿 大衆小說論 단편 서사시의 길로-우리의 시의 양식 문제에 대하여 藝術의 大衆化에 對하야-新年은 이 問題의 解決을 要求文藝 詩評 朝鮮 文學의 現在의 水準 朝鮮 文學의 現 階段 해설 김기진은 엮은이 오태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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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월 형은 이것들을 선전문학으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선전문학도 문학으로서의 요건?소설로서의 요건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는 형에게 문채(文債)에 못 이기어서 이와 같은 소설을 내놓지 않기를 바란다.
---「문예 월평?산문적 월평」중에서 우리는 一九二三年 以後로 나타난 프로레타리아的 作家들의 諸 作品에 잇서서 프로레타리아文學으로서 內容과 題材와 統一 調和된 形式을 가추운 作品을 發見하기에 困難하다. 언제인가도 말한 바와 가티 그들의 創作에는 事件의 按排나 人物의 性格이나 其他의 描寫와 說明이 ?로는 主觀的이요 空想的이오 抽象的이요 非實在的이며 ?로는 그와 反對로 客觀的이요 現實的이요 具體的이요 實在的이며 甚하면 一箇의 作品 中에서 이 相異한 態度와 手法이 混濁되어서 救할 수 업는 不統一 不調和를 보여 왓다. 同時에 그들은 形式의 무엇임을 理解하지 못하얏다. ---「변증적 사실주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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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팔봉 김기진은 1920년대 이래로 창작과 비평을 통해 프로문학을 주창한 근대문학의 선구자다. 1924년 단편소설 <붉은 쥐>를 발표하며 무산계급문학의 창작적 실험의 첫출발을 보였다면, 그보다 한 해 앞서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를 ≪개벽≫에 게재하며 평론가로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표방한 글이다. 김기진은 이 글에서 프롤레타리아문학이, 구시대적이고 “그릇된 미의식 위에 입각한 부르주아의 문학에 대항해서 일어난” ‘오늘의 문학’임을 강조한다. 결국 ‘프롤레타리아의 미학’이 구시대적 부르주아 미학의 거부와 파괴를 거쳐 새로운 건설로서의 미학을 산출해야 하는 당위적 미학임이 주창된다. 한국 평론문학사에서 1920년은 논쟁의 시대로 기록된다. 특히 1926년 발표한 김기진의 <문예 월평?산문적 월평>은 ‘소설의 내용과 형식 논쟁’을 불러일으킨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최서해를 고평하고, 방인근, 조명희, 이기영과 박영희를 비판한다. 특히 박영희의 <철야>에 대해서는 “한 개의 건축”으로서 소설이 아니라, ‘기둥이나 서까래’의 기초도 없이 “붉은 지붕만 입히어 놓은” 비소설적 건축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지옥 순례>에 대해서는 소설의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실패작으로 규정한다. 이 두 작품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작가의 세계관이 작품의 묘사력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엥겔스가 발자크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면서 “세계관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지극히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박영희는 이것을 형식주의적 관점으로 치부하고 김기진의 비평에 반박을 가하며 논쟁을 벌인다. 1920년대 이래로 서사적 개연성과 묘사의 적절성이라는 문학주의적 입장을 강조하긴 하지만 김기진의 문학관은 기본적으로 무산계급 지향적이며 도구적이었다. 1928년 발표한 <문예 시대관 단편?통속소설 소고>에서는 춘원의 소설이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써 이름”이 있으며, “어려운 ‘문자’를 안 쓰고 일반이 말하는 말을 가지고 유창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 통속소설의 무기라고 판단한다. 평이한 문장과 언문일치체가 대중적인 춘원 문체의 핵심이라고 간파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무산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계몽주의적 입장으로 이어지면서 1920년대 후반 ‘대중소설론’을 통해 대중화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팔봉의 문학적 업적이 자리하는 공간은 1920∼1930년대에 해당한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 그는 적극적 친일의 길로 들어선다. 1920년대 프로문학의 선구자로서 새로운 무산계급문학의 주창자에서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친일문학인으로의 변신은 계급적 신념의 기반이 얼마나 나약한 사상누각의 논리에 기대어 있는지를 보여 준다. 조선인의 영혼을 버리고 일본의 지방이자 속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길은 자신의 과거를 땅에 묻고 미래를 저당 잡힌 행위에 해당한다. 역사적 전망이 불투명할 때 식민지 지식인은 어떠한 선택지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되묻는 반면교사에 해당하는 존재가 바로 팔봉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