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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꽃이 되고 혁명이 된 돌
허공은 힘이 세다 돌 경마장의 얼룩말 꼬리 잡힌 얼룩말 달려라 얼룩말 마장마술 꽃은 피어서 말하고 토마토를 위한 변명 장마 갈등 동물농장 2부 달빛 아래 날을 벼리다 앵무새 빙벽 미투 유투 우분투 미얀마의 아침 바람 칼 말들의 거리 백로 상강 시베리아 횡단열차 시월 3부 쓰다 만 시 꽃자리 나비 소쇄원에서 1 제비꽃 편지 소쇄원에서 2 쓰다 만 시 불꽃 소식 돌려 막기 잔치국수 길 위의 집 설 4부 시마는 힘이 세다 해바라기 한 소식 1 한 소식 2 베리메리크리스마스 재배치 먹을 갈다 11월 봄날은 간다 시월의 하루 시마는 힘이 세다 해설 침묵이 들려주는 말 ―장은영(문학평론가) |
고찬규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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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점으로 박혀 있는 벌레에게 잎사귀는 완벽한 한 세상 한 점, 점은 구멍이 되어 점점 잎사귀는 벌레 속으로 점점 벌레는 잎사귀 속으로 속절없이 녹음 우거지는 한여름 한낮 벌레도 잎사귀도 간데없고 맴맴 허공만 맴맴 ---「허공은 힘이 세다」중에서 다들 말이면 다냐고 할 때 말이면 다라고 했다 누구도 말로는 다 못 한다고 할 때 말로는 뭘 못 해, 라고 했다 그들이 말을 타고 담장을 뛰어넘는 마술을 선보이자 다 같이 오리발을 내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순식간에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늪에 빠진 말은 허우적거리고 ---「마장마술」중에서 꽃은 피어서 말하고 잎은 지면서 말한다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해 왔다 ---「꽃은 피어서 말하고-얼룩말」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지만 어쩌다 거대한 빙벽을 마주하고 섰는가 그리하여, 인디언의 말로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중략) 곰들의 마을 연어들의 고향 다람쥐들의 천국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던 나를 만나 침묵의 노래를 듣는다 흘러내리며 스스로를 껴안으며 더 단단하게 굳어 가는 촛농 같은 빙하를 보며 (중략) 날이 새지 않는 밤새 불을 피우고 춤을 춘다 삶은 우연의 연속인가 선택인가 사위지 않는 불길 앞에서 흘러내리며 껴안으며 굳게 서 있는 빙벽 ---「빙벽-알래스카에서」중에서 어느 날 나팔꽃 덩굴이 가시도 아랑곳없이 장미를 감고 오르더니 꽃을 피운다 철 지난 장미도 나팔꽃 덩굴 따라 키를 늘리며 담벼락 위로 몇 송이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장미 사이에 핀 나팔꽃인지 나팔꽃 사이에 핀 장미꽃인지 누가 누구에게 매달린 것인지 의지하고 있는 것인지 둘은 어떤 사이인지를 생각하며 담장 너머 수척해진 해바라기도 갸웃하는 가을도 끝 무렵 날은 곶감 말리기 좋다는 상강이었다 ---「상강」중에서 대숲을 바라보다가 손가락 마디 사이 반짝이는 반지를 본다 마디가 거두고 있었구나 주름의 다른 이름 늘이거나 늘어나는 공간 버젓이 밖에 숨긴 구분은 어떻게 짓는 것인가 마디마다 주름진 너와 내가 한뿌리 같고도 다른 다르고도 같은 것이라고 여기서 쉬어 간다고 여기서 단단해지려고 주먹을 쥐게 하려고 마디마다 저마다 넘기는 책의 페이지 같은 것 ---「소쇄원에서 1」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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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 93
고찬규 『꽃은 피어서 말하고 잎은 지면서 말한다』 출간 “어디로도 가지 못하던 나를 만나 침묵의 노래를 듣는다 흘러내리며 스스로를 껴안으며 더 단단하게 굳어 가는 촛농 같은 빙하를 보며” 침묵이 들려주는 말에 귀 기울이며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타진하다 199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고찬규 시인의 시집 『꽃은 피어서 말하고 잎은 지면서 말한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93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그동안 ‘소리 없는 소리’를 오래 탐색해 온 고찬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말’과 관련한 탐구와 모색을 더욱 심층적으로 해 나간다. 그의 정제된 언어와 직관은 이번 시집에서도 빛난다. 시인은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지 않는 ‘의미의 바깥’이야말로 시와 노래의 출처라고 믿으며, 말만 풍성한 “말잔치 나라”(「달려라 얼룩말」)에 대한 풍자를 작품 전체에 녹여낸다. 해설을 쓴 장은영 평론가가 지적한 것처럼 “거짓이 커질수록 진실에 대한 바람은 간절해지고, 절망이 깊을수록 흐릿한 희망은 선명해”질 수 있다. “말의 위기가 확실할수록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도 분명해지는 건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시의 역설적 진실”이다. 고찬규는 “‘위대한 모순 어록’은 마크 트웨인의 ‘훌륭한 난센스를 쓰기 위해서는 엄청난 센스가 필요하다’와 같은 문장들로 이뤄져 있다 이런 책이 안 팔린다는 것도 상당한 모순이다”(「토마토를 위한 변명-얼룩말」)라고 말하며 역설의 정신을 일깨운다. 물론 그가 부르짖는 역설의 정신이 도달하려는 종착지는 “부정과 모순을 돌파하는 새로운 말의 창조”이다. 그러므로 시집에 수록된 ‘얼룩말 연작’은 말의 위기와 함께 공동체가 봉착하게 될 난관을 예고하는 한편, 우리가 회복해야 할 ‘말’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인 셈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심장을 향하는 말/촉이 좋은 말/무딘 말/고개 숙인 말/말,/말,/말”(「말들의 거리-얼룩말」) 등 수많은 말 가운데 ‘나’와 ‘너’ 사이에 이음쇠를 만들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하는 말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대나무의 ‘마디’ 같은 것들, 주먹을 쥐게 하고 손가락을 구부리게도 할 수 있는 ‘마디’의 미학이야말로 우리를 연대하게 한다는 점을 주시한다. 시집 첫머리에 실린 ‘시인의 말’도 의미심장하다. 시인는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끝없이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리고 이 ‘기도’란 곧 ‘침묵’이라는 말과 이어지는데, 기도와 침묵이야말로 그가 지향하는 시의 세계라 할 것이다. 이근화 시인이 추천사에서 친히 쓴 것처럼 고찬규는 “자신을 다른 이들과 연결시키는 말, 사람을 살리고 함께 숨 쉬는 말을 찾고”자 한다. 넘치는 말의 폭력으로 삶이 쓰디쓴 계절, 이 시집을 넘기며 “침묵의 진언을 찾는 일”에 기꺼이 동참해 볼 일이다. 시인의 말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가을 고찬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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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씩 고찬규 시인을 만난 것이 벌써 여러 해 되었다. 인정과 선의를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안도감이 시인을 만나면 잔잔히 밀려온다. 근래 시인의 일상과 작품이 자못 궁금했는데 이번 시집에서 조금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벌레와 잎사귀 너머 허공을 보고 있었던 거다(「허공은 힘이 세다」). 돌과 돌이 만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돌」). 그런데 그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리 평온한 것 같지 않다. ‘말[言]’과 ‘말[馬]’ 사이, 그는 세상이 이렇게밖에 굴러가지 않는 것에 대해 치미는 분노와 치욕을 풀어 놓는다. ‘얼룩말’ 시편에 드러나듯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충돌 양상에 그는 얼굴이 붉어졌다, 일그러졌다 한다. 오랜만에 만나서 보여 주었던 미소가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강물에 빠진 토마토를 생각하는 밤에(「토마토를 위한 변명」) 그의 마음도 꽤 뒤척였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쓰다 말고 목울대가 뜨거울 때가 있다”(「미투 유투 우분투」)는 고백에서 보이는 부끄러움은 어른의 것이다. 생각을 이어 가며 정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어른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바로 위기가 아닐까. 그 위기에 맞서 시인은 노래 아닌 노래를, 말 없는 말을 상상한다. 거대한 빙벽을 마주하고 서서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던 나를 만나 침묵의 노래를 듣는다”(「빙벽」)고 했다. 진정 사람을 움직이는 말은 요란하거나 교묘하지 않다. 시인은 고요와 침묵 안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아직 말해지지 않은 새로운 말을 발견하고자 한다. 자신을 다른 이들과 연결시키는 말, 사람을 살리고 함께 숨 쉬는 말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영혼 없이 ‘말’ 달리는 세계에서 침묵의 진언을 찾는 일이 시인의 몫만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이 시기를 함께 건너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이근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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