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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시인 이사 신발끈을 맬 때마다 혀 소 만월 얼음부처 산산조각 바닥에 대하여 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아침 시각장애인 식물원 도요새 물 먹는 소 유실 통닭 연꽃 구경 헌식대에 누워 나의 수미산 노모의 텔레비전 불국사 막다른 골목 부도밭을 지나며 12월 맹인수녀 노인들의 냉장고 나의 수미산 겨울부채를 부치며 걸인 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 김씨의 저녁 갓난아기를 위한 장례미사 촛불의 그늘 겨울 한강 밤의 십자가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잔치국수 영등포가 있는 골목 연평도 불일폭포 제2부 어린 낙타 국화빵을 굽는 사내 부드러운 칼 나비 가시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살모사 참회 미리 읽어본 아버지의 유서 내 가슴에 마음에 집이 없으면 꽃과 돈 똥 겨울 산길을 걸으며 닭 불면 아버지를 찾아서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내 그림자에게 이별 사랑에게 야간분만 빈손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며 꿈속의 꿈 작은 주먹 벽 입관실에서 눈사람 버려진 골목 무덤을 지키는 개 유기견(遺棄犬) 막장에서 자살하는 이에게 바치는 시 물 위를 걸으며 무릎 해설│김수이 시인의 말 |
鄭浩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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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이 5년 간의 침묵을 깨고 신작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을 창비에서 간행했다. 그간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까지 모두 7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정호승 시인은 명료하면서도 순수한 시세계와 피를 당기는 듯한 음악성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다. 특히 지난 90년대말 창비에서 펴낸 두 권의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는 쉬운 어법 속에 진한 감동을 담아내 독자들의 폭발적인 성원을 받은 바 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30여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 정호승 시인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착하고 맑은 시심(詩心)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낮은 곳에 임한 존재들의 구체적인 삶의 실상을 담아내는 데 몰두한다. 우선 정호승은 가난하고 버려진 사람들의 아픔에 주목한다. 노숙자, 독거노인, 무릎 없는 걸인, 시각장애인, 장례식장의 미화원,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 이 많은 고통받는 이들은 시인 특유의 상상력에 힘입어 따듯하게 위로받는다. 장례식장 미화원 아주머니는 영안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주섬주섬 꽃을 주워먹고(「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외침」) 시각 장애인 식물원에서 한 맹인 소녀는 나무들이 달아준 눈을 얻는다(「시각장애인 식물원」).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추기경 몰래 성당을 빠져나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는 시신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들에게 인사를 받는다(「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 김씨의 저녁」). 이처럼 보통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세상의 고통과 그를 위무하는 손짓을 시인은 자신만의 눈으로 관찰해낸다. 특히 「국화빵을 굽는 사내」에서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이라는 시구는 격조있는 슬픔의 정조를 뛰어난 언어감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정호승은 또한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시인이 지금까지 가족사를 이처럼 뚜렷하게 드러낸 적은 없다. 시인은 아들을 향해 “부디 아버지를 미워하는 일로 너의 일생이/ 응급실 복도에 누워 있지 않기를”(「겨울부채를 부치며」) 바라고 시인의 아버지는 “너는 이제 더이상 시 쓰지 마라(…)그저 물이나 한잔 마시다가/ 너도 너 혼자 어디로 가라”고 말한다. 또한 시인은 팔순 노모의 텔레비전에 비친 아기 거북이를 통해 모성으로의 회귀 욕구를 말하며(「노모의 텔레비전」) 어머니의 냉장고를 통해 곧 닥쳐올 노모의 죽음과 그것을 받아들여만 하는 슬픔을 노래한다(「노인들의 냉장고」). 시인은 가족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다. 이들 시편에서 시적 자아는 ‘참회’를 멈추지 않는 자아이며 이미 참회한 것들을 깨달음의 수준으로 유지하는 자아이다. 시인은 강아지 한마리도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윤동주의 시에 빗대어 꾸짖고(「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나무 한그루 심은 적 없는 자신이 죽어 새가 되어도 나뭇가지에 앉아 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참회」). 또한 시인은 마음에 품는 것마다 다 독이 되는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 더이상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라고(「사랑에게」) 사랑했지만 이제 저세상 사람이 된 여자처럼 자신도 여자가 되기를 기원하기도 한다(「야간분만」). 특히 「부도밭을 지나며」에서 한결같은 진실을 향한 시인의 열망은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람은 죽었거나 살아 있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따뜻해야 하고/ 사람은 잊혀졌거나 잊혀지지 않았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눈물이 글썽해야 한다” 평론가 김수이는 시인이 “인간과 새, 바닥과 산정은 같은 세계”이며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힘은 인간이며 시인의 수고”라는 가슴 뭉클한 진실을 전달해주고 있다고 평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74편 중 25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작이다. 시인은 “지난 5년 동안 시를 못 쓰는 상황에 대해 비참함을 느꼈다”면서 “이번 시집은 그런 위기감과 상실감에 의해 씌어졌다”고 밝혔다. 또한 시인은 “마더 테레사 수녀는 모든 인간에게서 신을 본다고 하셨다”면서 “나는 모든 인간에게서 시를 본다”고 말했다. |